[시론]김광웅/‘이분법’ 버리고 화해의 길을

  • 입력 2003년 10월 14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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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이 난기류를 타고 있다. 국민소환제도가 없는데도 실정(失政) 때문에 대통령이 스스로 재신임을 받겠다고 하고, 물러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재신임의 헌법적·법적 근거를 두고 논란이 많다. 국민투표 문제도 그렇거니와 재신임 절차에 관해서도 여야의 합의를 얻기가 쉽지 않다. 물론 대통령으로서는 그동안 쌓인 국정운영의 문제에다 대통령 주변의 부정과 부패까지 드러나기 시작하자 이를 만회하고 정국의 주도권을 잡을 전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재신임’ 정국해법 될 수 없어▼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재신임을 받아도 현재의 어지러운 정국은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재신임이 정국의 해법이 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재신임의 명분과 방법론에 관한 대통령의 주장도 너무 일관성이 없다. 대통령이 국정운영에서 실패한 주원인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을 적대적으로 대한 데에 있다. 이적행위를 한 송두율교수까지 포용하려 하면서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의 모순된 논리로 인해 정책이 표류했고, 정치적 수사의 미숙함으로 불신을 자초했다. 설상가상으로 결코 호의적일 수 없는 정치구도가 불화를 가중시켰다.

문제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과 상황 인식에 있다. 현세는 어지러운 것이 본질이다. 야당정치인 언론인 지식인들이 ‘흔들지’ 않아도 나라를 이끌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현대가 혼돈과 복잡성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망을 걸고 싶다. 길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주변의 병든 사람, 시대상황이나 정부 역할을 잘못 인식하는 사람들을 물리친다면 기회는 열린다. 정책기조, 개혁방법, 인물들을 바꾸어 ‘그 밥에 그 나물’이 아닌 다른 나물을 섞으면 좀 나아질 것이다.

신세계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했던 국민은 말한다. 대통령이 진정 마음을 비웠다면 자신을 포함한 구(舊)정치를 버려야 한다고. 그 방법은 국민투표까지 갈 것도 없이 검찰로 하여금 대통령과 그 주변의 부정과 비리부터 파헤치도록 하면 된다. 그러면 재신임을 위해 힘들고 구차한 법개정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화해의 길을 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것은 대통령이 자신의 편견을 버리는 일이다. 지금은 이분법이 성립될 수 없는 시기다. 개혁의 주체(대통령과 여당)는 빛이고 객체(야당)는 어둠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상대성을 인정하지 않는 고전물리학과 달리, 현대 양자물리학에서는 상대성과 이중성을 인정한다. 빛은 입자일 수도 있고 파동일 수도 있다. 모든 사물에는 이런 이중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대통령은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고 정국도 안정시킬 수 있다. 대통령 혼자의 입장만 생각하는, 고전물리학 같은 구시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국정은 표류할 수밖에 없다.

현대 양자물리학의 기초를 세운 에어빈 슈뢰딩거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20세 초 빛 에너지는 불연속적이라는 양자 가설을 놓고 서로 다른 이론을 펴면서 논쟁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두 사람의 이론은 ‘하나’라는 것이 드러났다. 하이젠베르크는 이를 행렬역학으로 풀었고, 슈뢰딩거는 파동방정식을 도입해 해결하려 했던 것이나, 두 이론은 결국 동일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증명됐다.

▼치우치지 말고 보편자 역할을▼

지금 여야는 제각기 다른 주장을 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나라와 백성을 위한다는 점에서는 결국 하나다. 여야와 정부, 그리고 언론이 손잡고 대타협과 화합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21세기 패러다임에도 맞는다. ‘열은 양쪽의 온도가 같아질 때까지 온도가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흐른다’는 열형평 이론처럼 대통령은 한쪽에 치우지지 말고 보편자적 역할을 하면 된다.

‘자연인’으로서의 노무현 대통령은 기성정치에 처절한 반감이 있을지라도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노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햄릿은 말한다. “호레이쇼여, 하늘과 땅에는 당신의 철학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있다네.”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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