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결사대 600명 활동…미군 사격장 시위…계획서 실행까지

  • 입력 2003년 8월 19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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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훈련 중인 미군의 장갑차에 올라가 구호를 외치고 있는 통일선봉대. -동아일보 자료사진
지난 7일 훈련 중인 미군의 장갑차에 올라가 구호를 외치고 있는 통일선봉대. -동아일보 자료사진
《7일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 통일선봉대(통선대)의 미군 사격장 기습시위는 당일 아침 선배의 모집에 즉석에서 응한 대학 1, 2학년 통선대원들이 구속을 각오하고 행동대로 뛰어든 것으로 밝혀졌다. 더구나 현재 수도권에는 이 같은 통선대원이 600여명이나 조직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19일 “수사가 진전되면서 이 사건의 전모가 점차 밝혀지고 있다”며 “이 사건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통선대 투쟁간부인 김모씨(27·K대 4년)를 구속한 데 이어 같은 혐의로 4, 5명을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범청학련 소속 통선대가 각각 200여명으로 편성된 3개 조직으로 구성됐으며 이들 중 일부는 최근 발생한 ‘서울 주한미군 극동공병단 기습 시위’ 등 주한미군 시설 기습시위 등에 연관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의 수사로 드러나고 있는 이 시위의 전모는 다소 충격적이다.

▽결사대원 모집=김씨 등 통선대 투쟁 간부 5, 6명은 시위 당일 오전 9시경 수도권 통선대 중간 간부회의 지침에 따라 곧바로 통선대원을 상대로 결사대원 모집에 들어갔다.

선발 지침은 ‘투쟁성이 뛰어나고, 전과가 없는 저학년생’.

당시 서울 중앙대에는 통선대원 200여명이 합숙을 하고 있었다. 경찰은 김씨 등 통선대 선배가 개인적 유대관계로 결사대원을 모은 것으로 보고 있다. 모집에는 불과 1∼2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김씨는 후배들에게 “경찰에 붙잡혀 구속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말했으나 이들은 결사대원에 합류할 의사를 밝혔다.

지침대로 이날 검거된 12명 가운데 8명이 1, 2학년생이고 4학년생은 단 한 명뿐이었다. 지난해 2월 한총련의 주한 미상공회의소 점거 시위에 수배를 받아오던 고학년생들이 상당수 참가한 것과 달랐다.

▽치밀한 시나리오=이들은 미리 짜여진 치밀한 시나리오에 따라 빈틈없이 움직였다. 이날 낮 12시경 이동 지시를 받은 이들은 4명씩 3개 조로 택시를 타고 동국대로 이동했다. 이 곳에서 진보 성향의 인터넷 매체인 ‘민중의 소리’ 기자 등 기자 3명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안내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승합차에 올라 미군 사격장으로 향하는 길. 안내자는 12명의 대원에게 임무를 부여했다. ‘성조기 꺼내기’ ‘성조기에 시너 뿌리기’ ‘불 붙이기’ ‘저지하는 사람 막기’ 등 구체적인 임무가 각자에게 배당됐다.

드디어 오후 4시 55분. 이들은 순식간에 미군측의 허를 찔러 계획을 ‘성공리’에 완수했다. 결사대원으로 선발돼 임무를 완수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7시간여에 불과했다.

경찰 관계자는 “시위 충격파가 크고 사격장이라는 위험한 곳임에도 이들이 선배들의 지시에 순순히 따르고 그대로 이행했다는 것은 그만큼 정신무장이 되어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결사(決死)의 결의서=이날 결사대원은 동국대로 이동하기 전 ‘결의서’를 썼다.

“저 미국 놈들이…(중략)…한 몸 바쳐 한반도의 전쟁을 막고 우리 민족의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는 내용의 결의서를 이들은 A4용지 한 장에 함께 작성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결의서가 입수된 것은 2000년 이후 이번이 처음”이라며 “학생운동이 다시 과격해지는 징후가 아닐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들이 도망치지 않고 얼굴도 드러내 검거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인 시위 행태에 주목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추가 수사를 통해 더 많은 내용이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통일선봉대'란▼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 소속 통일선봉대(통선대)는 매년 8월초부터 15일 광복절까지 활동하는 한시적 조직이다.

범청학련은 92년 한반도 평화통일을 목표로 남북 및 재외동포 학생 대표들이 만든 단체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의장이 상근 부의장이다. 최근까지 한총련 의장이 범청학련 의장을 맡았고, 한총련이 범청학련의 핵심 세력이어서 ‘범청학련=한총련’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올해로 16기를 맞는 범청학련 통선대도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로 꾸려진다. 따라서 통선대는 사실상 한총련이 움직이는 조직. 주요 임무는 반전(反戰)투쟁과 전국 주한미군 기지 항의 방문 등이다.

한때 통선대는 폭력 시위의 선봉대가 되기도 했으나 최근 수년간 시위가 과거에 비해 온건해져 경찰과 큰 마찰은 없었다. 올해의 경우 한나라당 지구당의 현판을 떼어 내 물의를 빚기도 했다.

통선대는 크게 중앙통선대와 지역통선대로 나뉜다.

중앙통선대는 전국 대학에서 자원한 학생들을 동군(東軍), 서군(西軍) 등 두 그룹으로 묶어 전국 순례를 벌인다. 지역 총학생회연합(총련) 학생들로 꾸려진 지역 통선대보다는 ‘투쟁성’과 ‘의식성’이 더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공개모집으로 선발돼 ‘반미 자주’ 등을 내용으로 교양교육을 받으며 각종 시위에 동원된다.

올해 중앙통선대는 조직을 하나 더 늘렸다. 수도권에 집중된 주한 미군 기지에 대한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수도권 통선대’를 만든 것. 경찰은 한총련 내 강경파인 경인총련 학생들이 소속된 수도권 통선대가 이번 사격장 시위를 주도했다고 밝혔다.

중앙통선대의 3개 조직 구성원은 각각 200명 안팎. 각 산하 조직은 통상 ‘중대’로 불리며 선전, 투쟁 등 임무에 따라 4개 소대로 나뉘는 등 군사조직의 틀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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