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원 내라” 되살아난 월례비…“공사 태업 우려” 하청업체 시름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4월 13일 04시 30분


되살아난 공사장 ‘월례비’… “300만원 내놔라”
하청업체에 공정별 추가금 요구도

6일 세종시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멈춰 서 있다. 세종=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6일 세종시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멈춰 서 있다. 세종=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6일 오전 세종시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타워크레인 두 대가 멈춰 서 있었다. 이 아파트의 골조 공정을 맡은 하청 건설사의 현장소장 김모 씨는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작업을 의도적으로 늦추는 등 태업을 하고 있어 현장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전했다.

이 하청업체가 작업을 맡은 구역에 속한 타워크레인 기사 일부가 올 들어 월례비 300만 원에 더해 작업 건당 10만∼20만 원의 추가금을 요구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김 소장은 “지난해 중순까지 공사를 맡았던 현장은 월례비가 전혀 없었는데 이곳은 월례비는 물론이고 공정별, 팀별 추가금까지 요구하고 있어 하청업체로선 죽을 맛”이라고 하소연했다.

세종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한동안 사라졌던 건설 현장의 월례비가 다시 확산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노조의 금품 수수, 공사 방해, 채용 강요 등 불법 행위에 대한 단속이 사실상 사라진 데다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 노조의 입김이 세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건설사를 상대로 한 하청 노조의 교섭 압박이 집중되는 가운데 월례비 관행까지 다시 고개를 들면서 장기 불황에 시달리는 건설업계가 ‘삼중고’ 위기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되살아난 공사장 월례비
“요구액 높아져 공사 맡아도 적자”
고환율-원자재 가격 상승 이어 노란봉투법 집중 타깃 ‘3중고’
양대노총 “조합원 채용” 압박도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는 지난달부터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월 350만 원의 월례비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인천 일대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받던 월례비 200만∼250만 원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현장소장 전모 씨는 “3개월의 밀당 끝에 합의했다”며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 공정이 늦춰지면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건설 현장의 월례비가 부활하면서 장기 침체에 빠진 건설 경기를 더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가뜩이나 중동 사태 등으로 고환율과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가팔라진 가운데 월례비 등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이 공사비를 더 부채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 건설 하청 노조들은 ‘산업 안전’을 빌미로 교섭 요구를 쏟아내고 있다.

● 월례비 부담에 조합원 채용 압박까지

12일 노동계 등에 따르면 최근 건설 현장에서는 월례비를 올려주지 않거나 공정별 추가금을 주지 않으면 태업을 하는 등 공사를 지연시키겠다는 노조 조합원의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30년 경력을 가진 건설사 현장소장은 “물가 상승 등을 명분으로 월례비에 더해 공정별, 작업별 추가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부쩍 많아졌다”고 했다.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주는 월례비는 임금과 별도로 지급되는 건설 현장 관행으로, 공사비에 반영되지 않아 하청업체가 비용 부담을 떠안는 구조다. 한 하청업계 관계자는 “최근 환율도 뛰고 원자재 값도 올라 공사를 맡아도 수익이 날까 하는 상황이었는데, 월례비 요구 금액도 점점 높아져 적자가 우려된다”고 했다.

양대 노총이 자기 소속 조합원을 채용하라며 경쟁적으로 벌이는 집회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7일 충남 천안시 역세권 개발 현장에서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소속 노조원들이 각각 차량을 동원해 소속 조합원을 채용하고 장비를 사용하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인근 충남 아산 지역에서만 1∼3월 조합원 채용 등을 요구하는 건설 현장 집회가 99건 신청됐다. 현장 관계자는 “한때 잠잠했던 노조의 채용 요구 싸움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인력 운용도 마음대로 못 할 처지”라고 했다.

● 노란봉투법까지 ‘삼중고’에 시름

건설노조의 월례비 및 조합원 채용 요구가 다시 늘어난 것은 불법 행위에 대한 정부의 단속이 사실상 사라진 영향이 크다. 국민의힘 김소희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의 특별단속 기간(2022년 12월∼2023년 8월)에 금품 요구, 채용 강요 등으로 148명이 구속됐다. 하지만 이후 단속 기간(2024년 4월 29일∼10월 31일)에는 9명 구속에 그쳤고, 현 정부 들어서는 이마저도 약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직접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되면서 노조의 영향력이 커졌다. 건설업은 1차 하청을 넘어 2차 하청업체와 3차 개별 기능공 등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여서 노란봉투법의 집중 타깃이 되고 있다.

이미 법 시행 이후 민노총 산하 전국건설노조는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 상위 건설사 100개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다. 이달 8일 현재 노동위원회에 접수된 민간 부문 교섭 요구(215건) 중 건설업이 57.2%(123건)를 차지한다.

노동위원회는 9일 포스코이앤씨에 대해 건설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하라며 대형 건설사로는 처음으로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다만 한국노총 소속 한국타워크레인노조가 중흥건설과 중흥토건을 상대로 낸 교섭 요구는 기각하며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노조는 이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에 재심을 신청할 예정이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경영학과 교수는 “노란봉투법으로 노조 활동 범위가 확대된 상황에서 월례비나 추가 비용 문제를 개별 현장에 맡겨둘 게 아니라 교섭이나 도급 단가 기준을 통해 제도적으로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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