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3일 오후 6시 5분 현재,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중단되자 주민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현장을 관리하던 주민센터 공무원이 나눠준 대기표를 유권자가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이번 주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투표용지가 없어 난리가 난 그 현장 중 한 곳인 잠실7동 제2투표소가 마련된 아파트 경로당 앞에 제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5분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기자들은 속속 도착하는데 정작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문제제기를 하는 유권자들과 주민센터 공무원들과의 언성이 높아지지만 책임있는 조치를 취하거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현장에서 가장 가슴 아프게 들린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윤어게인을 외치는 사람들이 부정선거 얘기를 해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내가 투표용지가 없어서 투표를 못 하는 걸 직접 겪고 나니, 부정선거 주장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신문사에 있으면 선거관리위원회와 관련된 취재를 참 많이 하게 됩니다. 투표와 개표는 물론이고 선거 D-100일, 투표용지 인쇄, 기표소 관리 요원 교육까지 모든 과정이 다 뉴스입니다. 선관위가 일을 잘해서가 아닙니다. 선거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화면을 보면서, 아직 투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유권자들의 모습에는 그만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습니다.
민주주의의 보루로 불리던 선관위는 언제부터 이렇게 흔들리기 시작한 걸까요.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궁금해서 옛날 사진들을 찾아봤습니다.
투표용지 앞에서 누군가 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표정이 자못 심각합니다. 선관위는 심판이었습니다. 서슬 퍼런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도 말입니다.
〈7대 대통령선거〉 서울 종로구 개표장에서 접히지 않은 공화당 박 후보의 무더기표 64장이 발견돼 야당 참관인들이 선관위원장석에 몰려가 옥신각신 시비를 벌였다. (동아일보 1971년 4월 28일 자) 선관위는 권력으로 가는 문을 지키는 문지기이기도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당선을 확인하는 당선증을 김종필씨가 대리 수령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6대 대통령선거〉 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부터 대통령 당선 통지서를 받는 김종필 당의장. (동아일보, 1967년 5월 6일) 유권자에게 다가갈 선거벽보가 규정에 맞는지 살피는 일도 선관위의 몫이었습니다.
10대 국회의원선거〉 선거공보 벽보 작성에 바쁜 선관위. 수원·화성선관위. (동아일보 1978년 11월 29일자) 전국에서 올라오는 개표 결과를 일일이 손으로 적어 넣던 고단한 시간도 있었습니다.
〈13대 국회의원선거〉 분주한 중앙선관위. 관계자들이 각 지역 선거구에서 속속 들어오는 개표 결과를 상황판에 적어 넣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동아일보 1988년 4월 27일자) 비디오카메라를 이용해 불법 선거 현장을 단속하기도 했습니다. 사진에는 없지만 아마 그 과정에서 선거운동원들과 많은 마찰을 빚는 힘든 시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시·도의회의원선거〉 ‘향응 증거’. 서울시 선관위 기동단속반원들이 6일 오전 7시부터 비디오카메라 등 단속장비를 휴대하고 불법·타락 선거운동 예상 지역에서 단속 활동에 들어갔다. (동아일보 1991년 6월 6일자, 홍석희 기자) 꽹과리를 치며 분위기를 띄우는 것조차 위법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책임지고 관리했던 것도 선관위의 몫이었습니다.
〈14대 국회의원선거〉 11일 오후 민주당 연설회장인 동대문구 답십리국교에서 풍물패 놀이를 하자 선관위 직원이 위법이라며 이를 제지하고 있다. (동아일보, 1992년 3월 11일) 선거가 점점 중요해지면서 예산도 늘었나 봅니다. 첨단 비행선을 띄운 홍보가 시작됩니다.
공명선거 홍보 비행선. 중앙선관위는 27일 서울 상공에 유권자들의 공명선거 의지를 다짐하는 홍보용 비행선을 띄웠다. (동아일보 1992년 11월 28일자, 김동주 기자)
당연한 실무 교육마저 뉴스가 되었습니다. 선관위의 활동 하나하나가 신문과 방송의 주요 소재가 되어 유권자인 국민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선관위원장의 대국민담화는 생방송으로 전해지는 관행까지 생겼습니다. 그렇게 선관위의 존재감은 국민의 머릿속에 강하게 새겨졌습니다.
〈6·4 지방선거〉 지방선거 투개표 교육. 서울 성북구 선거관리위원회가 1일 각 투표구 정·부위원장들을 구의회 강당에 모아 6·4 지방선거 투개표가 차질 없이 이뤄지도록 교육을 실시했다. (동아일보 1998년 6월 2일자, 김동철 기자) 홍보가 더욱 화려해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입니다.
〈축구장서 10·26 재선 투표 홍보〉 경기 부천시 원미갑 지역 선거관리위원회가 16일 프로축구 경기가 열린 부천종합운동장을 찾아 투표 참여 캠페인을 벌였다. (동아일보 2005년 10월 17일자, 김동주 기자) 기표소로 가는 화살표 디자인까지 더 눈에 띄게 바꿨습니다.
〈대선 200일 앞〉 투표소 용품 디자인도 멋지게.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상황팀 직원들이 새 투표소 사무용품 디자인을 점검·토의하고 있다. (동아일보, 2007년 6월 1일, 이훈구 기자) 직원들이 직접 거리로 나서는 투표 독려 캠페인도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습니다.
서울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28일 서울 청계천로 광통교 부근 청계천 징검다리에서 6·4 지방선거 투표 참여를 홍보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2014년 5월 28일, 신원건 기자) 그동안 신문과 방송이 선관위의 활동을 자주 보도하고 국민들이 그토록 관심과 응원을 보낸 것은, 하늘에 띄운 비행선이나 거리의 캠페인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잘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잘해 달라”는 국민과 유권자의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이번 일을 두고 선관위가 꼭 필요한 조직이냐는 물음까지 나옵니다.
우리가 이 조직을 오래 신뢰해 온 것은, 불법 선거운동을 단죄하고 무더기표를 가려내고, 밤새 들어오는 개표 결과를 한 자 한 자 손으로 적어 넣던 그 모습 때문이었을 겁니다. 앞으로 선거관리위원회의 활동은 어떤 모습으로 기록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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