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 시간) 저녁 미국 뉴욕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은 주황빛과 파란빛 불빛들이 여기 저기서 번쩍였습니다. 바로 이날 뉴욕을 대표하는 미국 프로농구협회(NBA) 농구팀, 뉴욕 닉스(New York Knicks)의 경기가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이죠. 뉴욕 닉스의 로고를 이루고 있는 상징색이 바로 주황과 파랑인데, 이날 뉴욕의 고층 건물 중에 LED 외장재로 빛을 낼 수 있는 기능을 가진 빌딩들은 모두 이 색깔로 불을 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온 도시에 주황과 파란빛이 가득했습니다.
뉴욕 닉스가 NBA 파이널 2차전에서 승리한 5일(현지 시간) 저녁 미국 뉴욕 맨해튼의 모습. 뉴욕=임우선 특파원
●53년 만에 코앞 다가온 NBA 우승에 난리 난 뉴욕
요즘 툭하면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이 이 색깔로 빛나고 있는 건 뉴요커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뉴욕 닉스가 27년 만에 NBA 결승전에 진출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안 그래도 스포츠에 열광하는 문화를 가진 나라인데, 그것도 대중적 인기가 매우 높은 농구에서, 무려 30여년 만에 뉴욕이 결승에 진출했으니 시민들의 흥분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특히 뉴요커들의 농구 사랑은 유독 남달라서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맨해튼에서도 어딜 가도 여기저기서 농구 코트를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게임을 하는 주민들(?)의 실력도 남달라서 이게 동네 경기인지, 선수들의 플레이인지 눈을 의심케 할 때도 많죠. 그만큼 농구 팬들이 많은 지역이다 보니 요즘 거리에서는 경기 날이 아니어도 닉스 티셔츠를 입거나 모자를 쓰고 다니는 뉴요커들이 흔히 보입니다. 응원 룩이 불티나게 팔리다 보니 일부 매장에서는 닉스 로고 모자 등이 아예 품절됐다고 하더군요.
닉스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시민들의 등판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이름은 ‘11번 브런슨(BRUNSON)’입니다. 닉스의 주장인 제일런 브런슨은 자타공인 뉴욕 닉스의 ‘원톱’ 플레이어로, 우승을 갈망하는 뉴요커들로부터 엄청난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뉴욕 닉스의 간판 스타 제일런 브런슨. 역시나 농구 선수로, 유망주였으나 슈퍼스타급은 아니었던 아버지 릭 브런슨으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고 최정상 선수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릭 브런슨은 현재 닉스의 코치다. 뉴욕의 열기는 뉴욕 닉스가 NBA 파이널 진출이 확정됐을 때 이미 뜨거웠지만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더욱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NBA 파이널은 7번의 경기 중에 4번을 이기는 쪽이 우승을 거머쥐게 되는데, 앞서 3일과 5일 있었던 두 번의 경기에서 이미 두 번 다 닉스가 이겼기 때문이죠. 딱 두 번만 더 이기면 1973년 이후 53년 만에 정말로 NBA 우승의 영광을 안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 뉴요커들에게 NBA 우승의 꿈은 코 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5일(현지 시간) 열린 NBA 파이널 2차 전에서 브런슨이 마지막 슛을 넣는 장면. 이날 브런슨의 슛으로 104점 동점이었던 닉스는 1점을 더 얻어 105 대 104로 승리했다. NBA 파이널은 동부와 서부, 각각의 토너먼트에서 챔피언이 된 1등 팀끼리 맞붙는데, 올해 동부 챔피언은 뉴욕 닉스이고 뉴욕과 맞붙고 있는 서부 챔피언은 텍사스주의 샌안토니오 스퍼스입니다.
파이널을 결정짓는 7번의 경기가 어느 팀 쪽 지역에서 열리는지도 중요한데, 두 팀 중 정규 시즌 성적이 더 좋았던 팀 지역에서 먼저 경기를 시작해 ‘2-2-1-1-1’ 방식으로 번갈아 홈 코트를 배정합니다.
그래서 지난 두 번의 1, 2차전 경기는 정규 성적이 더 좋았던 스퍼스의 텍사스주 홈코트에 닉스가 원정을 가서 경기를 했고요. 이번 주 8일과 10일에 열리는 3, 4차전은 드디어 바로 이곳 뉴욕에서 펼쳐질 예정입니다.
●뉴욕 경기 직관 티켓 값 1억 원까지 치솟아
뉴욕 닉스의 홈코트는 맨해튼 한 가운데에 자리한 메디슨 스퀘어 가든(MSG)입니다. ‘농구의 성지’라는 별명도 갖고 있는 MSG는 이름에 ‘가든’이 들어가지만 정원은 전혀 없고 전형적인 대규모 실내 경기장입니다. 이 곳은 시즌별로 농구(뉴욕 닉스)와 아이스하키(뉴욕 레인저스)가 번갈아 진행되고, 경기가 없는 시즌에는 대규모 콘서트나 집회 장소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가장 중요한 마지막 주말 선거 유세를 벌인 곳도 바로 이 곳 MSG였고, 최근에는 ‘팝의 여제’로 불리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결혼식도 이 곳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에서+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중 하나가+수십 년 만의 결승 진출에 성공해+가장 상징적인 경기장에서 축제 같은 경기를 하게 될 경우’ 그 티켓 값은 얼마일까요.
궁금해서 8일 MSG에서 열리는 티켓 가격을 찾아봤습니다. 그랬더니 ‘베스트 프라이스(?!)’라는 마크가 붙은 가장 싼 표가 약 1만 달러(약 1560만 원), 가장 비싼 표가 6만3000달러(약 9820만 원)였습니다. 한화로 환산하면 둘이 가서 볼 경우 그 비용이 가장 싼 게 3000만 원, 가장 비싼 게 2억 원 정도 하는 건데요. 저게 실화겠냐 하시겠지만 연 소득이 수백, 수천억 원인 이들이 적지 않은 뉴욕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한 가격입니다. 평소에도 뉴욕 닉스 경기는 가장 싼 티켓도 장당 100만 원을 넘나들 정도로 야구나 다른 경기에 비해 비싼 편인데, 이번 파이널 경기는 미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비싼 티켓 가격으로 기록될 전망이라고 하네요.
동시에 이번 경기는 뉴욕 ‘비즈니스 접대’의 최고봉을 보여줄 행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닉스 경기는 저렇게 일반 판매를 통해 표를 팔기도 하지만 MSG에는 기업이나 부호들이 개인적으로 계약해 사용하는 별도의 ‘스위트’ 또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MSG 스위트는 유리로 된 박스석과 달리 경기장 내부에 따로 마련된 방을 의미합니다. 경기장 입장시 별도 출입구를 통해 들어가는데, 방 안에는 각종 주류와 음료를 겸비한 개별 바가 있고, 뷔페식 음식도 따로 차려집니다. 방 안은 유명 선수의 저지 등 소유주가 수집한 스포츠 기념품으로 꾸며져 주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위트의 비용은 크기와 계약 기간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학교 교실 3분의 1정도 크기의 스위트의 경우 1년 임대료가 약 10억 원 정도에 별도의 사용료가 또 수억 원대라고 하더군요. 경기는 스위트 안의 모니터로도 볼 수 있지만 문을 열고 나가면 해당 스위트에 배정된 경기장 좌석과 곧바로 연결되기에 언제든지 방과 경기장을 오가며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이런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스위트는 사적 공간에서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며 긴 시간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뉴욕 비즈니스 교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1년 내내 중요한 비즈니스 파트너나 지인들을 초청해 농구나 하키 경기 등을 관람시켜 주고, 이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선물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죠. 아마 이번 주 스위트 소유주들이 초대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세계에서 가장 소중하고, 또 중요한 인물들일 것입니다.
참고로 똑같은 NBA 파이널 경기라고 해도 텍사스에서 열릴 닉스의 5차전 경기 가격은 뉴욕에 비하면 ‘파격 세일’ 수준입니다. 가장 저렴한(?) 표가 약 2000달러, 가장 비싼 표가 약 2만 달러 수준으로, 그만큼 이 지역엔 뉴욕 같은 가격을 감당할 수요가 많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미국인들조차 ‘뉴욕은 뉴욕이지, 미국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뉴욕이 ‘별세상’인 이유입니다.
●‘내가 빠질 수 없지’ 트럼프 등극 예정 한편, 이번 주 뉴욕에서 열리는 닉스 경기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직관’이 예정돼 있어 더 큰 화제가 될 전망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 퀸즈에서 태어나 70년 이상을 뉴욕에서 산 정통 ‘뉴요커’입니다. 비록 2019년 주 거주지를 플로리다주의 마러라고로 옮기긴 했지만, 그의 정신적 정체성은 여전히 뉴요커인 것 같습니다. (대선 때 통상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투표 직전 주 주말 유세를ㅡ경합주도 아니고 어차피 진보 우위 지역이라 전략적으로 크게 중요치 않은ㅡ뉴욕에서 한 것만 봐도 고향에서 인정받고파 하는 그의 열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NBA 토너먼트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나는 여전히 닉스 팬이고 경기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닉스는 오랫동안 고전했는데 지금 정말 잘하고 있다”고 팬심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또 닉스의 파이널 진출이 결정된 뒤에는 닉스의 구단주이자, MSG의 소유주이자, 자신의 정치적 후원자인 제임스 돌란 회장이 자신을 초청했다며 “경기를 보러 갈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직관’ 확정 발언은 5일에 나왔는데 “(돌란의 초청에 대한) 답은 ‘예스’다. 초청받았으니 갈 것”이라며 “다음 주 열리는 경기 중 최소 한 경기를 현장에서 볼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열리는 3차전 관람을 우선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는데, 내키면 10일 열리는 4차전까지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두 경기 모두 갈 수도 있다”고 여지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NBA에 따르면 현직 대통령이 파이널을 직접 관람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하네요.
이와 관련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한 발언이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이번 경기 티켓 값이 너무 비싸다는 지적에 대해 “(비싸면) TV로 볼 수 있다. TV로 보는 건 어느 정도 공짜”라며 “인생이 그런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죠. 실제 아무리 팬이어도 경기 직관을 꿈꾸기 어려운 대부분의 뉴요커들은 집에서 TV 중계를 보거나, 길거리 응원전에 참여하거나, 아니면 뉴욕시 전역의 펍과 레스토랑 등에 마련될 ‘중계 파티(watch party)’를 통해 응원에 나설 듯 합니다.
5일(현지 시간) 거리 응원에 나선 뉴요커들. 열기만은 경기장 내부 못지 않다. 아마 이날 NBA 중계 카메라는 경기 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코트를 가득 메운 뉴욕과 미국의 소위 ‘핵인싸’들을 잡느라 무척이나 바쁠 것 같습니다. MSG의 경기장 바로 옆 코트 사이드 좌석은 평소에도 미국의 유명 인사들이 끊임없이 중계 화면에 잡히는 일종의 사회적 마케팅의 명소로 꼽히기 때문이죠. 평소 이 곳에 자주 등장하는 스타로는 뉴욕 출신 닉스 팬으로 잘 알려진 영화배우 티모시 살라메와 벤 스틸러,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 등이 있습니다. 이번 주 MSG는 미국의 정치와 문화, 비즈니스 최고들이 한 자리에 결집된 강렬한 현장이 될 것입니다.
뉴욕 닉스 홈코트인 MSG에 툭하면 출몰하는 열혈 닉스 팬으로 유명한 영화배우 티모시 살라메(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