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그룹, 다각화된 사업 포트폴리오
BI 서사, ‘필요에 답하다’로 도출
온드 미디어로 메시지 직접 확산
동원은 새로운 브랜드 아이덴티티(BI)를 ‘필요에 답하다’로 정하고, 각 계열사별로 현장에 이러한 BI를 전파할 브랜드 캠페이너들을 선정하는 등 조직 내재화에 박차를 가했다. 사진은 브랜드 캠페이너들이 직접 참여해 촬영한 유튜브 영상의 한 장면. 동원그룹 제공
1982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참치 캔을 출시한 이후 지금까지 줄곧 시장 1위를 지켜온 동원에 ‘참치’란 존재는 양날의 검이다. 지금의 회사를 ‘국민 브랜드’로서 기틀을 다지게 해준 강력한 자산이지만 동시에 기업의 외연 확장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으로 작용해 왔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쉼 없는 성장을 거듭하며 매출 10조 원 규모로 외형을 키워 왔는데도 대중의 뇌리 속 동원은 참치 회사 이미지가 여전히 강하다. 1969년 한 척의 원양어선으로 시작한 그룹인 만큼 ‘수산업’ ‘식품업’이라는 꼬리표를 완전히 떼지 못한 것이다.
이 같은 딜레마는 2023년 동원그룹이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 인수전에 뛰어들었을 때 단적으로 드러났다. 기존 컨테이너 항만 사업과의 시너지를 기대하며 해운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낙점하고 인수를 시도했지만 시장은 의구심 섞인 반응을 보였다. “새우가 고래를 삼키려 하는 것 아니냐” “식품 기업이 국적 해운사를 운영할 수 있겠냐”는 회의론이 고개를 든 것이다.
하지만 동원그룹의 실제 사업 구조는 단순한 참치 회사와는 거리가 있다. 원양 수산에서 출발한 그룹은 이제 식품 가공(동원F&B)을 넘어 포장재 및 배터리 첨단소재(동원시스템즈), 유통과 무인 스마트 항만(동원로엑스)에 이르기까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며 ‘수산-식품-소재-물류’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구축하고 있다.
동원그룹이 확대된 그룹의 정체성을 기업 내외부에 알리기 위해 활용한 리브랜딩 전략을 다룬 DBR 438호(2026년 4월 1호) 케이스스터디를 요약, 소개한다.
● 참치를 넘어서는 인식 전환 도모
리브랜딩을 위해 동원그룹은 2024년 1월 ‘브랜드 위원회(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고 새로운 브랜드 아이덴티티(BI) 수립 작업에 착수했다. 김남정 회장을 중심으로 주요 계열사 대표와 핵심 운영진 등 총 19명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동원그룹이 앞으로 어떤 회사로 인식되길 원하는지, 그 정체성의 요체를 어떻게 표현할지 논의하는 역할을 맡았다.
TF의 최대 숙제는 기업의 역사, 가치, 사업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를 설명하는 서사정체성(Narrative Identity)을 완성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한 숱한 시행착오 끝에 동원이 도출한 새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바로 ‘필요에 답하다’였다.
이 아이디어는 “동원은 왜 처음 참치 캔을 만들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했다. 1969년 참치 어획을 시작한 것은 자원이 부족했던 시대, 수출을 통해 달러를 벌어야 한다는 시대적 필요에 대한 답이었다. 또한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하기가 어려웠는데 모두가 육지로 향할 때 태평양 바다에서 참치라는 단백질원을 찾아 이를 국내 최초로 가공, 유통한 것도 바로 동원이었다. 사회가 직면한 절실한 필요에 대한 응답이었던 셈이다.
이런 브랜드 서사는 동원의 사업 확장 과정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졌다. 참치 캔 제조에서 축적된 기술은 이차전지 포장재로 연결됐다. 언뜻 무관해 보이지만 이차전지 포장재 사업도 에너지 전환기에 요구되는 안전하고 균일한 소재를 찾는 시대의 필요에 부응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스마트 항만 역시 글로벌 공급망 확보와 해상 물류 경쟁력 강화라는 요구 속에서 진출한 사업 영역이다.
● 브랜드, 스스로 미디어가 되다
겉으로는 평범한 단어의 조합이지만 이 같은 맥락을 오롯이 알고 있는 내부인들에게 ‘필요에 답하다’는 그 의미가 남달랐다.
이렇게 BI를 확정한 동원은 계열사별로 ‘브랜드 캠페이너’를 실무자급에서 한두 명씩 선발한 뒤 새로 정립한 슬로건을 현장에 퍼뜨리는 조직 내재화에 박차를 가했다. 이들은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조직에 빠르게 스며들게 하는 ‘현장 반장’으로서의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
동원은 동시에 기업의 목소리를 외부에 직접 전달하는 ‘온드 미디어(owned media)’ 전략을 본격화했다. 기업 스스로 미디어가 된다는 생각으로, 2013년 이후 다양한 실험을 거듭해온 유튜브 채널 ‘동원TV’를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원래는 예능처럼 트렌드와 재미만 좇았던 채널의 성격을 기업의 오리지널리티를 알리는 데 집중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오로지 동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경쟁력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지난해 5월에는 자체 콘텐츠로 브랜드 캠페인 슬로건과 연계한 ‘세필답사(세상의 필요에 답하는 사람들)’와 ‘필요 충전소’ 등을 선보였다.
● 기업 평판에 긍정적 효과
그룹 리브랜딩 실험 이후 변화의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그룹의 브랜드 서사정체성을 담은 동원TV의 지난해 기준 누적 조회수는 약 1억 회를 기록했고 1년간 200개가 넘는 콘텐츠가 평균 조회수 약 40만 회를 달성했다. 동원에 따르면 숏폼 콘텐츠의 인기가 롱폼 조회로 연결되거나 알고리즘 노출이 증가하는 등 초창기에 이뤄졌던 인위적 유입이 점차 자발적 관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내부 구성원의 사기 진작과 채용 인재 풀 확대 등 질적 평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갤럽 광고 효과 조사에 따르면 캠페인 이후 취업준비생 사이에서 동원그룹에 대한 호감도가 18.0%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해 하반기 채용에서는 총 지원자 수가 전년 대비 70% 이상 증가하는 등 인재 유인책으로도 유용하게 작동하고 있다. 김세훈 동원산업 지주부문 대표는 “온드 미디어 운영과 리브랜딩 캠페인 이후 젊은 세대와의 접점이 늘어나고 있다”며 “앞으로 일관된 커뮤니케이션을 지속하면서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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