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효종/청와대가 '오버'하고 있다

  • 입력 2003년 7월 24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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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브리핑’이란 청와대 소식지는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국민에게 직접 알리겠다는 취지로 발간돼 최근 100호를 맞이했다. ‘청와대 브리핑’은 노 대통령이 취임 초 힘주어 말한 ‘오보와의 전쟁’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확실히 오보는 보도 매체의 부끄러움이다. 문제는 신문과 방송이 아무리 정확한 보도를 목표로 해도 오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소식지, 언론과 일대일 舌戰 ▼

이 점은 존 롤스가 말한 ‘불완전 절차적 정의’를 상기시킨다. 형사재판은 피고의 유무죄를 가려 죄인을 벌하고 무고한 사람을 석방하겠다는 사법적 정의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아무리 유능한 판사라도 오판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오판이 있다고 해서 재판제도의 무용론을 주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문이나 방송이 아무리 노력해도 사실관계와 다른 오보가 나올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오보가 나올 때마다 ‘악의적 오보’니 ‘음모론’이니 하며 매도하는 것은 과잉반응이다. 어차피 민주주의 제도는 모두 ‘불완전 절차적 정의’일 뿐이다. 상대적 다수결 제도에 의해 대선이나 총선에서 뽑힌 대표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민의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오보는 최소화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순수하게 ‘오보와의 전쟁’을 목표로 한 것이라면, ‘청와대 브리핑’은 반론 소식지로서 나름대로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 브리핑’에서 생경스러운 코너는 주로 메이저 신문들의 입장과 견해에 대한 비판문의 성격을 갖고 있는 미디어 비평이다. 신문의 논조가 이런데 청와대의 입장에서 보면 틀렸다는 식의 비평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이처럼 청와대가 신문과 일대일로 마주해 설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곱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청와대가 ‘오버’ 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정부의 권력이란 아무리 선의의 목적을 갖고 있다고 해도 비판의 대상이다. 그것은 독점권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한번 결정하면 구속력 있는 법과 정책이 될 정도로 막강하다. 더구나 한국 사회에서 삼권분립은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고, 또 특유의 가부장적 정치문화 때문에 정부의 권력은 적절한 견제를 받지 않는다. 소수정권이라도 거의 항상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참여정부에서는 책임총리제를 하겠다고 호언했지만, 지금의 총리가 과거 ‘일인지하’의 대독총리나 의전총리와 다른 점이 있는가. 이번 농림부 장관의 임명에서도 대통령의 목소리만 들릴 뿐, 제청권을 가진 총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처럼 청와대의 권한이 크니, 책임도 크다. 따라서 비판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민주사회에서 정치권력이 비판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권력의 금도이며 노블레스 오블리주일 터이다. 지금 노무현 정부는 메이저신문의 비판적 논조로 말미암아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또 신문 사설은 비판을 위한 비판, 혹은 존 스튜어트 밀이 말한 ‘악마의 대변자 역’에 불과하다며 짜증을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신문만 안 보면 세상이 잘 돌아가고 있다”든지 “보도내용이 많이 부풀려져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일까.

하지만 우리가 참여정부에 기대한 것에는 특별한 무엇이 있었다. 낡은 정치를 청산하겠다는 기치를 내걸었고, 참여민주주의와 토론민주주의를 제창했다. ‘토론공화국’을 선포했기에 방송사마다 수많은 토론 코너가 신설 운영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비판 수용’은 권력의 의무 ▼

참여정부는 ‘토론공화국’에서 용비어천가만 울려 퍼지기를 원치는 않을 것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올 때, 대통령의 코드와는 다른 코드의 말들이 부담 없이 설왕설래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토론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청와대 브리핑’은 ‘토론공화국’의 정신에 맞게 보다 대범하고 보다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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