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국정과제 이렇게 본다]경제-부패방지-안보 진단

  • 입력 2003년 3월 2일 18시 56분


코멘트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제시한 정책과제의 방향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또 어느 정도의 실현가능성이 있는 정책들인가. 노무현 정부의 인수위가 발표한 정책과제를 분야별로 검증해 봤다. 검증작업에는 지난해 12월 21일 본보 사고를 통해 알린 ‘인수위 정책 검증팀’을 중심으로 각 분야 전문가인 10명의 교수가 참여했다. 이번 정책검증을 끝으로 지난해부터 계속해온 ‘대통령직인수위 운영방안’에 대한 제언 및 ‘인수위 정책 검증’ 작업을 마친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

▼경제▼

새 정부가 밝힌 경제정책 방향 중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기업의 불공정경쟁 관행을 없애겠다는 정책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원칙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규제 일몰제 실시, 수도권 집중 억제정책의 완화 등은 기업을 위한 정책이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제도 보완, 증권 집단소송제 및 금융회사 계열분리청구제 도입은 대표적인 재벌개혁 사례다. 다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논의하던 연결납세제 도입 및 법정준조세 정비 등이 최종보고서에 빠져 기업활성화 대책이 축소된 것은 아쉽다.

▼관련기사▼

- [새정부 국정과제…]公共구조조정 得失 따져야

이 밖에도 미진했던 금융 구조조정의 계속 추진을 위해 비상장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 강화, 상시구조조정 체제 정착 등을 도입키로 한 것은 바람직하다. 재정집행에 대한 국민소송제 도입, 재산세·종합토지세 과표현실화, 상속·증여세 강화, 현금영수증카드제도 도입도 제대로 추진될 경우 경제환경을 바꿀 수 있는 정책들이다.

새 정부 경제정책의 또 다른 특징은 성장과 분배의 선(善)순환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성장 정책은 내용이 모호하고 효과가 장기적인 반면, 분배 정책은 내용이 분명하고 효과가 즉각적이라는 것이 부담스럽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분배가 성장을 압도해 국가재정에 부담이 되고, 경제성장을 둔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 점에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위해 ‘정책 시간표’를 정교하게 짤 것을 제안한다.

성장 정책은 가능하면 빠른 시간 내에 도입하고, 분배를 위한 정책은 단기간에 모든 것을 이루겠다는 업적주의를 지양한다는 원칙이 필요하다.

인수위가 제시한 분배와 사회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정책들을 추진하려면 재원이 턱없이 모자라는 점도 문제다(표 참조).

인수위는 올해 경제성장 5% 달성으로 6조원, 탈세방지 노력을 통해 4조원의 추가 세수(稅收)가 예상되는 등 최대 10조2000억원을 더 걷을 수 있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건강보험 확대실시, 의료비 국가부담 증가 등에 따른 사회복지비용이 4조2000억원, 사교육비 지원부담이 1조5600억원 등 올해 국가재정으로 부담해야 할 ‘분배정책 예산’은 11조6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여기에 200조원에 이르는 국가부채의 이자(연 5% 기준)만 10조원에 이르는 등 분배정책 외에도 필수적으로 부담해야할 재정 지출 요인이 산적해 있는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임기 내에 모든 것을 이루겠다는 업적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산과 주변 여건 때문에 못 다한 부분이 있다면 기반을 조성했다는 평가에 만족하고 차기 정부에 주요 과제로 넘기는 여유가 필요하다.

새 정부의 정책과제 가운데 천문학적인 국가채무 문제를 포함해 재정의 건전화를 위한 구체적 대안이 빠져 있는 점은 아쉽다. 사회보험의 대상자 및 급여 확충에 대한 약속은 있지만, 파산상태의 사회보험재정 건전화 및 개혁이 가장 지지부진한 공공부문 개혁 문제에 대한 해법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나성린·한양대 교수·경제학


▼부패방지▼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제시한 국정 방향에는 부정부패 추방을 위한 강한 의지가 들어있다.

노 대통령의 의지는 청와대 안에 권력형 비리와 고위공직자 비리를 상시적으로 감시하기 위한 사정팀을 새로 설치한 것에서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직속 사정팀 운영은 정치적 고려에 따른 것이라는 의혹을 받지 않도록 역할 기능 및 한계를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사정팀이 직접 조사와 수사를 담당한다면, 자칫 기존의 검찰 수사체계와 충돌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한시적 특별검사제의 상설화가 필요하다는 국민적 요구도 수용했다.

그러나 특검제는 원칙적으로 지금과 같이 특정 의혹사건에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록 ‘한시적’이라고 하지만, 상설 특검제는 검찰권과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는 검찰개혁의 하나로 검찰 인사위원회의를 심의기구화하고, 검사동일체의 원칙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국민적 여망이다. 이를 위해 검찰총장이 정치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검찰 인사 및 수사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청와대 사정팀, 특검제 도입은 결국 검찰권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다른 제도를 통하여 해결하려는 것으로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위한 적극적 제도 개선이라 보기 어렵다.

새 정부는 현행 검찰제도의 골격을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 경찰에 일정한 범위의 독자적 수사권을 부여하고 지방경찰제도 추진할 전망이다. 이는 경찰의 사기(士氣)도 높이고, 검찰력의 집중을 위하여 바람직하다. 중앙 통제를 계속하는 허울뿐인 지방경찰이 아닌, 실질적인 지방경찰제도를 도입해야 하지만 지방 경찰과 지방 토착세력과의 유착관계를 근절할 수 있는 대비책도 마련해야 한다.

이 밖에도 새 정부는 감사원 법무부 행정자치부 부패방지위원회 등을 망라한 반부패 총력대응체제를 제시했다. 이들 기관을 포함한 범정부 차원의 반부패 기구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한 체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시민 옴부즈맨제도, 내부자 고발제도 등을 통해 반부패운동에 국민적 동참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또한 새 정부가 내세운 ‘참여정부’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새 정부가 제시한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혁신적 시스템 즉, 청와대 사정팀과 특검제 등은 검찰 등 기존 사정 기구들과 제도적 조응성(照應性)을 확보하는 가운데 정립돼야 한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제도를 체계적·유기적으로 작동시켜 제도의 효율성을 기하는 작업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부패의 근본적 원인은 제도의 탓이 아니라 제도 운용자의 탓이었음을 다시 한번 명심하여야 한다.

권력 심장부로부터 지방관서에 이르기까지 제도운영의 투명성이 담보될 때 법과 원칙이 살아 숨쉬는 사회가 될 수 있다.

성낙인·서울대 교수·헌법학

▼안보▼

노무현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구축과 통일의 과정을 남북한이 주도하는 동시에 미국 일본 중국 등 국제사회의 동의도 얻어내겠다는 북한 핵 해결 3원칙을 밝혔다.

노무현 정부가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북한 주도원칙과 미국의 동의가 양립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미국은 지난 50년간 한반도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쳐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에서는 대북 강경 기류가 형성되고 있고, 한국의 새 정부에서는 한미간의 수평적 외교관계 설정을 요구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양자를 어떻게 병립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북한 핵을 둘러싼 해법을 찾는 데 최대의 관건이 될 것이다.

남북한은 7·4공동성명(72년), 남북기본합의서(91년), 6·15공동선언(2000년) 등의 합의를 이뤄놓고 있다. 세 합의는 공통적으로 합의문 제1항에 ‘자주’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남북한 관계는 자주적 해법의 도출은 고사하고 이미 합의된 사항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반도 문제는 남북한이 당사자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노력 못지않게 국제사회의 도움을 얻어 북한을 설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남북한 관계는 특히 굳건한 한미동맹관계를 기본 축으로 하는 가운데 추진돼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또한 한반도와 중-미 관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노련함이 요구된다.

한미동맹관계도 중요하지만 통일을 달성해 가는 마지막 단계에서 중국이 통일한국을 원하지 않게 되면 통일을 이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새 정부는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북한 핵 해결→남북협력 심화→평화협정 체결이라는 3단계 전략을 제시했다.

그러나 북한 핵 문제의 해결과정은 북한의 핵 포기 선언에 뒤이은 일괄 타결 방식이 될 것이란 전망이 일반적이다. 북한의 핵 개발 포기 선언 및 미국 등 서방의 경제지원이 동시에 이뤄지고, 남북한의 평화협정은 북-미, 북-일 수교협상과 연계돼 해결될 개연성이 높다.

북한은 궁극적으로 북-미수교 경제지원 체제보장 없이는 핵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이 제네바합의의 위반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핵 개발을 시인한 것은 ‘경수로 건설과 중유 제공만으로 핵 카드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메시지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3단계 전략은 실제로는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은 채 병행해서 이뤄질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노무현 정부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의 주요 조건으로 꼽았다. 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동북아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약소국인 한국이 어떠한 전략과 수단을 통해 중심국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보다 깊은 현실적 성찰이 필요하다. 국가 경영에서는 냉엄한 국제현실을 반영하여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냉정하게 구분해야 한다.

안인해·고려대 국제대학원교수·국제정치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