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슈]北전투기 NLL 왜 침범했나

  • 입력 2003년 2월 20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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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 당국은 20일 미그 19기로 보이는 북한 전투기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사건과 관련, 가용한 모든 첩보와 정보를 수집해 즉각 침범 의도의 분석에 착수했다. 군 당국은 “정확한 침범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선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며 “현재로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군 내부에선 이번 침범이 다분히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도발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그 근거로 북한 전투기의 NLL 침범 당시 비행 속도가 시속 900㎞에 육박했고 육지와 해상 경계선을 따라 일정 항로를 유지했다는 것. 만약 조종사의 계기 오판독 등에 의한 실수라면 상식적으로 이 같은 비행 경로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또 81년 이후 북한 전투기가 NLL 이남 13㎞ 상공까지 깊숙이 내려온 전례가 없다는 것도 의도적 침범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보고 있다. 합참측은 “북한 전투기들은 NLL 북쪽 10㎞ 정도까지는 자주 비행하지만 NLL에 근접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또 우리 공군 전투기가 30㎞ 지점까지 접근하자마자 북한 전투기가 기수를 북쪽으로 되돌린 점으로 미뤄 볼 때 북한 전투기 조종사들이 귀순을 시도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들은 이번 침범이 3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한미 양국군의 연합훈련에 대한 일종의 ‘무력 경고’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최근 한미 양국군의 연합전시증원연습(RSOI)과 독수리 훈련계획을 ‘선제공격 시도’라고 비난하며 강력 대처의 뜻을 밝혔었다.

또 최근 북한이 판문점 대표부 대변인 명의의 담화에서 ‘정전협정 의무 이행’ 포기를 언급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당시 담화에서 “북핵 사태와 관련, 미국이 대북 제재를 가할 경우 정전협정 의무 이행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었다.

이 같은 발언이 ‘허풍’이 아니라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점을 한미 양국에 보이기 위해 ‘NLL 침범’이라는 무력 제스처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군 당국은 일단 레이더 항적을 근거로 북한의 미그 19기 1대가 단독으로 NLL을 침범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2대의 항공기가 편대 비행을 할 경우 레이더상에 1개의 점으로 표시될 수 있어 정확한 침범 대수를 파악하는 것이 구체적인 침범 의도를 분석하는 데 결정적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침범 상황〓북한 전투기가 NLL쪽으로 접근해 오는 것이 우리 군의 레이더에 처음 포착된 것은 이날 오전 9시54분경이었다.

북한 전투기는 연평도 북쪽의 북한 상공을 한차례 선회한 뒤 갑자기 남서, 남동, 남서 방향의 지그재그 형태로 육지와 해상 경계선을 따라 시속 800∼900㎞로 남하해 오전 10시3분경 NLL을 넘어 순식간에 NLL 남쪽 13㎞까지 들어왔다.

북한 전투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우리 공군은 서해 상공에서 초계임무를 수행 중이던 F-5E 전투기 2대를 현장에 투입했다. 레이더로 북한 전투기의 항적을 파악한 지 4분 뒤인 9시58분경이었고, NLL 침범 5분전이었다. 또 육지 상공에서 임무수행 중이던 2대를 추가로 투입됐고, 인천의 대공미사일 부대는 즉각 전투대기 태세에 돌입했다. 북한전투기가 NLL을 넘은 시각인 10시3분에는 수원비행장에서 대기 중이던 2대를 더 출동시켰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우리 전투기와 북한 전투기의 최근접 거리는 30㎞ 정도로 좁혀졌다. 그러자 북한 전투기는 곧바로 기수를 돌려 북쪽으로 돌아갔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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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무력충돌 "일촉즉발"▼

북한 항공기 NLL 침범 일지
△1975년 2월26일
선박 및 함정 10척과 미그기 침범
△1975년 3월24일
미그기 30대 백령도 주변 상공 침범
△1975년 6월9일
미그 21기 2대 백령도 상공 침범
△1976년 1월23일
미그기 2대 백령도 상공 침범
△1981년 8월12일
미그 21기 1대 백령도 상공 침범
▽1983년 1월31일
IL-28(수송기) 백령도 상공 침범

20일 미그 19기로 추정되는 북한 전투기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자 우리 군은 공군 전투기를 비상 출격시키는 한편 즉각적인 대공미사일 발사 태세에 돌입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통상 북한의 공군기가 NLL을 침범할 경우 우리 군은 3단계의 위기조치 순서에 따라 대응에 나선다. 1단계는 ‘공군의 눈’ 역할을 하는 레이더 감시 시스템의 적기 포착. 현재 우리 공군은 전국 20여개의 레이더기지를 통해 북한 전역의 비행 전력을 감시하고 있다.

이 모든 감시정보가 집결되는 곳은 오산의 중앙방공관제소(MTCR). MTCR는 북한 항공기의 NLL 침범 가능성이 농후할 경우 그 비행경로에 대한 본격적인 추적 감시를 벌인다.

2단계로는 서해 상공을 24시간 초계비행 중인 공군 전투기에 즉각 출동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현장으로 이동한 전투기들은 NLL을 침범한 북한 항공기에 경고 메시지를 통해 북쪽으로 되돌아갈 것을 경고한다.

이와 함께 한반도 중부 및 동해 지역을 초계비행 중이던 전투기들도 추가로 출동, 전력 지원에 나선다.

3단계는 지상 전력의 전투태세 돌입. 북한 전투기가 지속적으로 NLL 남하를 시도하는 등 도발 징후가 높아질 경우 지상에 대기 중이던 5분대기조 공군 전투기가 비상 출격하고 인천지역에 배치된 나이키 대공미사일도 즉각 발사 태세에 돌입한다.

이와 함께 해당 지역의 육군과 해군 전력도 비상태세에 돌입한다. 이후에도 북한 전투기가 계속 남하하면 선제공격 등을 통해 격퇴에 나선다.

이 같은 위기조치는 길어야 10분 내외에서 진행된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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