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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2월 9일 15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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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회장단회의를 통해 “합법적 정치자금만을 지원하겠다”고 공식 선언하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쪽은 역시 정치권이었다. 일단 겉으로는 “당연하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재계의 진의를 파악하면서 선거에서의 유불리를 따지느라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이었다.
▽재계 분위기〓선거철이 되면 정보기관의 시선은 재계에 집중된다. ‘어느 기업이 어느 후보에 줄을 섰다’는 내용은 최고위층의 책상에까지 오르는 특급정보로 취급됐다. 97년 대선까지만 해도 기업과 후보 간의 ‘짝짓기’는 비교적 쉽게 파악이 됐다. 대부분 여당 후보에게 줄을 서고, 야당 후보에겐 보험을 들어놓는 정도라는 것이 상식처럼 통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후유증, 97년 정권교체 경험, 정치권의 불투명성 등이 재계의 정치권 기피현상을 심화시키면서, 대선철 정치자금 수수 풍토도 크게 변하고 있다.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요즘은 재계의 움직임이 거의 감지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 재계에는 “모 기업이 여야 유력후보에 100억원씩의 보험금을 제공했다”는 소문이 돌아 해당 기업에 비상이 걸린 적이 있었다. 이 기업은 요로를 통해 소문의 진원지를 추적한 결과 시중의 확인되지 않은 루머를 담고있는 ‘정보지’가 주범이었음을 확인하고 몹시 허탈해했다는 것. 이 기업의 관계자는 “10억∼20억원이라면 모를까 100억∼200억원이 말이 되느냐”며 “회계처리 등 뒷감당을 누가 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소문을 일축했다.
유력 대선예비주자 진영의 한 참모는 “후보가 얼마전 일이 있어 국내 굴지 대기업 총수인 고등학교 선배에게 전화를 했는데 리콜조차 하지 않더라”고 재계의 썰렁한 분위기를 전했다.
▽정치권 반응〓전경련의 ‘정치자금 독립선언’에 대해 여야 모두 일단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 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은 “전경련의 이런 태도가 깨끗한 정치의 구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그동안 역대 선거에서 재계로부터 홀대를 받았다는 점, 비록 여당이긴 하지만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대세론이 만만치 않다는 점 때문에 재계가 야당측에 일방적인 구애(求愛)를 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한나라당 장광근(張光根) 수석부대변인도 “정경유착의 검은 고리와 부패비리를 척결하기 위해서라도 정치자금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권력기관과 정보를 손에 쥔 여당이 정치자금 모금에 있어 프리미엄을 가질 수밖에 없는 정치현실을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후보 확정 이후가 문제〓하지만 재계와 정치권에서는 여야의 후보가 확정되는 ‘5월 이후’엔 또 상황이 변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권의 자금 욕구와 대선 이후를 모색하는 재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과거처럼 거액을 주고받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성의표시’는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기업들이 현재 ‘몸조심’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야의 후보가 확정되지 않았고, 판세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라는 판단에서다.
재계에 정통한 민주당의 한 의원은 “과거에도 전경련이 이와 유사한 얘기를 한 적이 있으나 대선이 가까워지면 그런 결의들이 흔적없이 사라지고, 또 선거가 끝나면 ‘우리 기업이 밀어서 당선됐다’고 생색을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정치권과의 루트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기업총수는 대선예비주자들의 면담요청을 기피하고 있지만 임원급에서는 학연과 지연 등을 동원해 유력 후보들과 ‘핫라인’을 개설해놓고 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 전경련 정치자금 입장 표명에 대한 여야 반응 | ||
|   | 불법 자금 거부 | 특정 후보 선호 |
| 민주당 | 깨끗한 정치 구현에 도움 | 특정 선 긋고 지지하는 것 부적절 |
| 한나라당 | 투명성 공정성 뒷받침 제도 필요 | 친 재벌당 이미지 부각 우려 |
| 자민련 | 선거 공영제 도입 필요 |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정착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