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검찰…전현직 검사들 "능력부재가 더 심각"

  • 입력 2000년 11월 15일 18시 57분


검찰이 위기상황을 맞았다. 옷로비 의혹사건과 한빛은행 및 신용보증기금 사건,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 수사 결과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팽배하다.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과 신승남(愼承男)대검 차장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일선 검사들은 “이러다 검찰이 망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걱정한다. 일부에서는 검찰의 실상과 수사내용이 잘못 알려져 불필요한 오해를 받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현역 검사들의 고민과 검찰 출신 인사들의 걱정 등 검찰 안팎의 생생한 목소리를 그대로 전한다.

▽대검 부장출신 A변호사〓지금 검찰의 위기는 한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검찰 간부들 상당수가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검찰 상층부에서는 일만 터지면 뼈를 깎는 자성을 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달라진 것이 뭐냐. 하도 여러 번 뼈를 깎아서 뼈가 없어졌는지는 모르겠다. 검찰 위기에 대한 해결책은 없어 보인다.

▽B지청장(수도권)〓검사들은 무기력 상태다. 사건처리가 제대로 안된다. 탄핵소추든 뭐든 검찰 수뇌부가 책임지고 퇴진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러면 검찰이 너무 흔들린다. 지난해도 격랑에 휩쓸려 진통을 겪었는데 올해 또 그러면 검찰 조직은 결딴난다.

▽C부장검사(서울지검 산하 지청)〓우리 수뇌부에 불만이 많다. 검찰도 최악의 상황이다. 그러나 검찰 수뇌부가 탄핵소추를 당해야 할 정확한 책임과 명분은 없는 것 아니냐.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드러나지는 않았지 않느냐. 이런 식으로 한다면 공직사회가 어떻게 유지되겠느냐. 이러다 나라가 망한다.

▽D변호사(서울지검 특수부 출신)〓검찰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인사의 실패에서 비롯됐다.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 중에 옛날에 특수부에 있던 사람이 있나 찾아봐라. 거의 없다. 검사라고 다 똑같은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언론에서는 수사의지가 없다고 비난하지만 수사의지와는 별개로 수사능력이 더 문제될 수도 있다. 지금 검찰의 중요한 자리에는 제대로 일할만한 검사가 별로 없다. 정권이 바뀌고 중요보직을 논공행상으로 나눠먹다 보니까 경험없는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일이 안된다.

▽E검사(대검)〓지금은 지난해 김태정(金泰政)전 총장 때와는 다르다. 김 전총장은 마치 잘못된 과거 관행에서 자신은 떨어져 산 것처럼 행동해 조직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한몸 희생한다는 당당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 일선 검사들이 들고일어난 적이 있다. 인사상 불만이나 철학이 달라 검찰 조직운용에 비판적인 검사들도 있겠지만 나를 포함한 일반적인 의견은 총장 차장이 사퇴할 정도로 책임질 일은 없었다고 본다. 100% 양보해서 설사 허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물러나야 할 상황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조직이 흔들리면 안된다. 설사 물러난다고 해도 대안이 뭐냐. 새로 된 사람은 인기에 영합해야 하나.

▽F검사(대검)〓검찰에 대해서는 미래에 대한 대비가 없다는 것과 사분오열돼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다. 몇몇 검사들이 전화로 불만을 털어놓으며 ‘지난번 집단행동과 정반대의 집단행동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주로 인사불만이 많고 일부에서는 ‘실제로 선거사범 처리가 우리의 견해와는 다르게 처리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사와 관련해 전혀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주요 자리에 이유없이 발탁되고 전문가가 한직에 발령나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G검사(다른 기관 파견검사)〓검찰 수뇌부가 굳이 책임을 져야 한다면 조직이 이처럼 비난받도록 방치한 점에 대한 것, 즉 조직운영상의 책임이다. 그러나 편파수사나 여권과의 영합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치권이 없는 사실을 가지고 공격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면 조직이 흔들린다.

▽H검사(서울지검 특수부)〓탄핵소추 발의는 정치놀음에 불과하다. 야당이 너무 한다. 지난 번 총선 때 개인적으로 야당 후보를 찍었지만 후회한다. 야당이 정권 창출을 위해 검찰 흔들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I검사(서울지검)〓수뇌부가 퇴진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검찰청법을 개정한다고 하는데 그럴 필요 없다. 일방적인 상명하달식 구조가 바뀌면 된다. 그러기 위해 탄핵안이 가결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여러 검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외부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검찰을 만들기 위해 내부 구조 개편 방안을 내놓을 것이다.

▽J부장검사(대구지검)〓지방의 검찰 분위기는 안정적이다.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다. 다만 걱정은 많이 한다. 탄핵안이 가결되면 수뇌부 공백 등 타격이 클 것이다. 수뇌부가 퇴진할 경우 검찰 조직 보호에 도움이 되기 보다 손실이 더 클 것이다.

<신석호·이명건기자>kyle@donga.com

▼'탄핵표결 불참'에 자민련 시큰둥…속타는 민주당▼

민주당 정균환(鄭均桓)총무와 한나라당 정창화(鄭昌和)총무는 15일회담에서 국회정상화 합의와 함께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과 신승남(愼承男)차장 탄핵소추안 15일 보고, 17일 표결’ 원칙을 재확인했다.

이에 따라 이날 저녁 국회 본회의에서 이만섭(李萬燮)국회의장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서명으로 검찰수뇌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제출됐음을 보고했다. 국회법은 탄핵소추안이 보고될 경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표결처리토록 하고 있다. 따라서 17일 본회의에서 여야의 ‘한 판’ 표대결이 불가피해졌다.

민주당은 자민련의 협조를 얻어 본회의에 불참함으로써 의결정족수 미달로 표결자체를 무산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민주당 서영훈(徐英勳)대표와 정균환총무 등은 표결 무산을 위해 자민련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하며 협조를 구해왔다.

하지만 이날 자민련 의원총회는 민주당이 낙관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자민련 의총에선 ‘가결’ ‘부결’ ‘자유투표’ 등 다양한 방안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으나 민주당의 표결 불참에 동조하는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변웅전(邊雄田)대변인은 “당 분위기가 강경 쪽으로 쏠리고 있다”고 전하며 발언 의원들의 이름은 밝히지 않은 채 발언록을 소개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은 의원들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의총에서 ‘검찰권 공백 초래’를 이유로 탄핵안 부결 입장을 밝힌 의원은 함석재(咸錫宰) 김학원(金學元)의원 등 소수에 불과했다. 강창희(姜昌熙) 이재선(李在善) 이완구(李完九) 정진석(鄭鎭碩) 조희욱(曺喜旭)의원 등 4, 5명은 “당론 결정이 어려운 만큼 자유투표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