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수송환 북측 요구 쉬쉬하다 들통…정부 北눈치만 보나

  • 입력 2000년 8월 24일 19시 10분


9월2일로 예정된 비전향장기수 63명의 북송과 관련해 논란이 되고 있는 비전향장기수 가족 및 전향장기수의 송환문제가 더욱 꼬이고 있다.

북측이 23일 “6·15공동선언의 남북합의에 따라 가족과 전향자는 송환할 수 없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반박하는 전화통지문을 보내왔으나 정부가 이를 감추려다 들통이 났기 때문.

▽북측 입장〓북측이 남측에 보낸 전통문의 내용은 “북으로 오기를 희망하는 모든 비전향장기수들과 그 가족들도 앞으로 다 송환돼야 한다”는 것. 전향장기수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다.

그러나 24일 오전 북측 중앙방송의 보도는 훨씬 강경한 어조다. 이 방송은 “(북측이 남측에) 정순덕 정순택을 비롯한 모든 비전향장기수들과 그 가족이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 다 송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정순덕 정순택씨는 이미 전향서를 냈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전향장기수로 분리해 이번 송환대상에서 제외한 인물. 따라서 북측의 이 같은 주장은 우리 정부의 방침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정부 당국자는 “중앙방송의 보도내용과 실제 전통문의 내용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남측 여론을 떠보고 앞으로의 협상에 활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남측의 ‘거짓말’〓통일부 당국자는 23일 북측 전통문에 대해 “장기수 가족과 전향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밝혔으나 24일 북측 중앙방송이 그 내용을 공개하는 바람에 만 하루만에 ‘거짓말’이 들통났다.

이 당국자는 24일 “협의중인 남북문제를 공개한 적이 없는 데다 엠바고(보도자제요청)를 전제로 발표하려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았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다른 당국자도 “은폐하려고 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며 “북측의 주장을 계기로 장기수가족과 전향자 송환문제를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와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통일부 안팎에서 “남북문제에서 북은 늘 떳떳하고 남은 항상 북의 눈치만 보는 것 같은 모습이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걱정”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비전향장기수 가족 및 전향장기수의 북송과 관련한 남북한의 엇갈린 발언
발언자일시내 용

통일부당국자
22일 오전‘6·15공동선언’의 합의에 따라 비전향 장기수의 가족은 송환대상에 포함되지 않고 국내법질서 유지를 위해 전향자도 송환 않는다

북한적십자회
23일 낮모든 비전향 장기수들과 그 가족들도 앞으로 다 송환되어야 한다고 인정하면서 우선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모두 받기로 했다

통일부당국자
23일 오후북측이 비전향장기수 가족과 전향장기수에 대해서는 언급 없었다

중앙방송
24일 오전북으로 오기를 희망하는 정순덕 정순택을 비롯한 모든 비전향장기수들과 그 가족들이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 다 송환돼야 한다

통일부당국자
24일 오후북측 전통문을 제대로 못 봤고 협의중인 사항을 밝힐 수 없었다. 전통문 내용은 북측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