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국회, 언제 「인양」 하나

  • 입력 1998년 6월 27일 20시 10분


15대 후반기 국회 원구성이 한 달 가까이 지연되면서 국회운영에 편법을 동원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당장 26일 북한 잠수정 침투사건을 다루기 위해 열린 국회 국방간담회는 정상적인 상임위 전체회의의 모양새를 갖추지 못한 채 비정상적으로 진행됐다.

원구성이 되지 않음에 따라 이날 회의는 사안의 중대성에도 불구하고 ‘비공식간담회’라는 형식으로 열렸고 회의장에는 위원장의 의사봉과 소속 의원들의 명패가 없는 것은 물론 속기록 작성도 이뤄지지 않았다. 단지 의원들의 편의를 위해 회의장을 사용하는 것만 허용됐다.

임시로 회의 사회를 맡은 김영구(金榮龜)전 국방위원장은 위원장 명패도 없는 위원장석에 앉은 뒤 회의 개회를 선언하기 위해 의사봉을 찾다가 의사봉이 제자리에 놓여있지 않자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회의에 참석한 의원들도 의석에 의원 명패가 놓여있지 않자 어느 자리에 앉아야할지 당혹스러워하다가 멋쩍은 표정으로 적당히 자리를 잡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처럼 원구성 실패로 인해 국회의 각종 대내외적인 활동이 국회법상의 절차나 형식을 갖추지 못하게 되면서 29일 정부의 대북정책 문제점을 다루기 위해 열릴 예정인 통일외교통상간담회 역시 국방위 간담회의 재판이 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국회 사무처의 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아무리 중요한 현안이 발생하더라도 국회법에 정해져 있는 어떠한 형태의 지원도 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또 외국정부나 의회의 VIP인사가 국회를 방문하더라도 국회의장이 존재하지 않아 누가 어느 장소에서 외빈을 영접해야 하느냐는 의전상의 문제도 생겨나고 있다.

실제로 다음달 5일 호주 하원의 해리 젠킨스부의장과 의원 7명이 국회를 공식방문할 예정이지만 국회 사무처는 이 때까지도 원구성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들에 대한 의전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회 사무처는 임시방편으로 전반기 국회 부의장을 지낸 한나라당 오세응(吳世應)의원이 전직국회부의장 자격으로 이들을 영접토록 잠정결정했지만 호주 하원측에 우리 국회의 사정을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등 외교적인 실례를 해야 할 판이다.

이뿐만 아니라 의원들의 상임위 활동을 위해 배정된 예산집행도 결재권자인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이 선출돼있지 않아 완전히 정지된 상태다.

또 상임위가 구성되지 않은 관계로 장기적으로 특정관심분야의 의정활동을 추진해온 일부 의원들은 해당 정부부처에 기초적인 자료협조요청조차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조속히 원구성을 한다는데만 원칙적으로 합의했을뿐 국회정상화를 위한 ‘뾰족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여야 3당총무회담은 29일의 국민회의 총무경선이 실시될 때까지 중단돼 있는데다 후반기국회 상임위의 골격을 짤 3당 수석부총무간의 국회법개정협상도 다음달초로 미뤄져있다.

또 여야간의 의견차가 현격해 협상타결 전망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물론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국회의장은 야당이 차지하는 대신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처리에 야당이 적극협조’하는 이른바 ‘빅딜’에 의견을 접근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국민회의와 자민련간의 의견조율과 한나라당의 당론변경이 쉽지 않은 상태여서 이같은 방식의 협상타결도 속단하기 어렵다.

〈김정훈기자〉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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