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 취임식날 보신각종을 울리고 남산 봉수대에 불을 붙인다는 소식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다. 두 행사의 의미가 도무지 취임식 성격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보신각종은 섣달 그믐에 울리는 ‘제야의 종’으로 잘 알려져있다. 한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는 뜻에서 서울시장과 시민대표들이 함께 종을 33번친다. 이밖에는 3.1절이나 광복절 등 특정 국경일에만 타종한다.
문헌에 따르면 임금의 즉위식에도 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1395년(조선 태조4년) 처음 주조된 후 서울 성문을 열 때 33번, 닫을 때 28번씩 쳤다는 기록만 있다.
5년전 이맘 때, 김영삼(金泳三)대통령 취임식에도 보신각종을 울릴 계획이었다. 군사정권을 종식하고 문민정부의 탄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는 발상이었지만 “제야와 국경일에만 치는 종을 함부로 칠 수는 없다”는 여론에 밀려 무산됐다.
남산의 봉화는 ‘통신시설이 없던 시절의 신호수단’이었다. 그 중에서도 외침을 알리는 것이 주용도였다. 다섯개의 연대(煙臺) 중 하나만 피우면 ‘무사하다’, 두개 피우면 ‘적이 나타났다’, 세개 피우면 ‘국경을 넘었다’는 식이었다. 3.1운동 때 거사를 알리기 위해 사용했다는 말도 있다.
총무처의 한 관계자는 “전례(前例)야 새로 만들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본래 ‘레이저 쇼’를 생각했는데 시설 대여료만 1억원이 넘어 대안으로 두 이벤트를 기획했다는 뒷얘기도 털어놓았다.
그러나 문화재는 저마다 고유의 의미가 있는 법. 돈이 없으면 행사를 안하면 그만이지 엉뚱한 행사로 문화재의 의미를 곡해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더구나 ‘문화 대통령’을 자임하는 대통령의 취임식날 말이다.
송인수<정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