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영화와 가장 인연이 많은 국가 수장은 미국대통령이라 할만하다. 실제 백악관 주인이 영화와 수다한 인연이 많을 뿐더러 미국은 대통령을 영화소재로 가장 많이 애용하는 나라다.
영화칼럼니스트 이경기씨는 『가장 많이 영화화된 대통령은 링컨』이라고 밝힌다. 그는 오페라 「극장」에서 숨졌는데 그를 소재로 94년 기준 1백37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영화 속에 자주 나오는 그의 명언은 『말을 물가에 데리고 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말에게 물을 먹일 수는 없습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36년작 「대통령의 비밀」이 그 것. 야망을 위해 스스로 죽은 것처럼 가장하는 변호사가 나온다.
공화당 닉슨대통령은 73년 「미국영화협회 영화상」 시상식장에서 1백40여편의 존 포드 감독 작품을 모두 관람한 영화광으로 소개돼 기립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그가 재선을 위해 민주당 선거 전략을 도청한 후 워터게이트로 하야하자 그에 대한 할리우드의 평가는 부정적으로 돌아섰다.
앤서니 홉킨스 주연의 「닉슨」과 앨런 파쿨라 감독의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파쿨라감독 작품은 국내에 「대통령의 음모」라는 제목의 비디오로 나왔다.
재선에 실패한 민주당 카터 대통령이 퇴임 후 공개한 일기장에는 이 영화를 본 소감이 적혀있다. 『동시대에 같은 위치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동정심을 느꼈다』는 것. 카터를 누르고 배우 출신 레이건이 당선됐다. 그러나 리얼리즘 정치 영화에 단골 출연했던 프랑스 원로배우 이브 몽탕(작고)은 『그가 직업을 바꾼 것은 3류 배우였기 때문』이라고 달갑잖게 여겼다.
빌 클린턴은 얼떨결에 영화에 출연했다. 최근 워너 브러더스사가 만든 「콘택트」에 그의 기자회견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 클린턴 대통령은 『외계에서 미국으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우리는 그것을 해독 중이다』고 발표한다.
그러나 이는 그의 실제 인터뷰를 교묘하게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해 차용한 것. 클린턴 대통령은 영화제작사에 유감의 뜻을 전했지만 상영을 막지는 않았다. 그가 할리우드 영화인들로 부터 적지않은 헌금을 받는 등 사이가 좋을 뿐더러 워너 브러더스는 CNN을 소유한 타임워너그룹의 일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유력한 분석이다.
클린턴이 젊었다는 점, 혼외정사 문제가 있다는 점이 영화속 대통령의 모습으로 종종 옮겨진 것도 재미있다. 그가 대통령직에 시퍼렇게 앉아있는데도 개봉된 「에어포스 원」 「인디펜던스 데이」에선 직접 무기를 손에 쥐는 박력있는 대통령이, 「앱솔루트 파워」 「머더 1600」에선 여자를 탐해 물의를 일으키는 대통령이 나온다.
<권기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