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北京)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망명을 신청한 북한 노동당 黃長燁(황장엽)비서와 미국중앙정보국(CIA)관계자들간의 면담은 망명직후 지난 12일 오후 4시(현지시간)부터 35분간 진행됐다.
면담은 황비서가 머물고 있는 한국대사관 영사부내에서 이뤄졌다.
이 면담에서 미정보관계자들은 많은 질문을 하지않고 황비서가 자발적으로 진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면담에는 미국측 CIA관계자들 외에 한국 정보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면담시 황비서는 냉정 침착했으나 매우 슬프고 착잡한 표정이었으며 질문에는 막힘없이 대답했다고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전했다.
다음은 면담록에 나타난 CIA관계자들과 황비서간의 일문일답 요지다.
―망명을 결행한 동기는….
『金日成(김일성) 사후 金正日(김정일)은 주체사상을 왜곡해 실행해 왔다. 그의 사고에는 단순한 군사독재적 전제정치를 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으며 인민의 행복따위는 조금도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다. 나는 이같은 모순을 몇번이나 주변에 말했으나 모두 동감은 하면서도 김정일을 두려워해 함께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망명경위는 무엇인가.
『측근들과 은밀히 협의한 끝에 망명을 결심했다. 내가 조국을 떠나는 것으로 인민이 현재 국가체제의 모순을 깨닫도록 할 뿐 아니라 서방선진국들이 이같은 비참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국에는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들이 있다. 결코 조국을 버릴 생각도 없거니와 배반할 생각도 없다.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라를 구하려는 일념으로 떠난 것이다. 북한안에서는 이미 개혁이나 혁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황비서는 『신변위험을 느꼈거나 권력투쟁에 지쳐 망명한 것이 아니며 일본과의 쌀원조협상에 실패, 돌아갈 수 없게 돼 망명을 결심한 것도 아니다』고 강조한 뒤 망명을 통해 북한주민들의 눈을 뜨게 하고 체제붕괴의 도화선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 망명은 측근들과만 상의, 결심한 것인가.
『아니다. 실제로 많은 상의를 거쳐 결심했다. 나에 뒤이어 망명을 결의할 사람들이 있다』
(황비서는 그 수를 5∼7명정도라고 말하고 지위는 고위급 간부 등이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서방이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한다고 보나.
『서방나라들이 현재 북한의 체제유지를 도와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역사의 필연(必然)에 반하는 것으로 결국은 헛수고에 그칠 것이다. 무의미하게 약을 주는 것은 병을 악화시킬 뿐이다. 큰 수술로 환자를 치료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정보는 알고 있는 한 모두 제공하겠다』
(황비서는 「북한의 체제를 붕괴시켜야 한다는 의미냐」고 되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망명지로 어디를 희망하나.
『한국으로 가기를 희망하지만 일시적으로 미국에 가도 좋다. 다만 미국은 어디까지나 거쳐가는 곳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조국(북한)을 구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싶다』
소식통은 황비서의 진술내용에 대해 『망명이 단독으로 이뤄진 돌발적인 행동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주도면밀하게 준비돼온 것이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북경〓황의봉·동경〓윤상참·이동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