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인물찾기 A to Z]“票되면 십고초려라도…”

  • 입력 2005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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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이 새 인물 찾기에 부산하다. 무엇보다 16개 시도지사 후보는 개별 인물의 경쟁력이 선거의 판세를 가를 정도로 결정적이기 때문. 나아가 지방선거는 2007년 차기 대선의 전초전인 동시에 각 정당이 누구를 영입하느냐가 당의 이미지와 직결되기 때문에 각 당은 당운을 걸고 인물 찾기에 나서고 있다. 》

① 물색과 눈독

최근 각 정당이 눈독을 들이는 인재의 공통점은 ‘드러낼 만한 실적을 갖춘 40, 50대 전문가’이다. 전문가 영역은 기존의 변호사, 교수 집단 등에서 과학자, 예술인 등으로 확대됐다. 또 장애인이나 사회운동가 같은 소외집단을 대변하는 인물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는 추세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연거푸 쓴맛을 봤던 한나라당이 가장 먼저 뛰고 있다. 김형오(金炯旿)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외부인사영입추진위를 이미 구성했다. 분야별로 인물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주요 영입대상은 다른 정당이 손을 대기 전에 ‘입도선매’한다는 복안이다.


한나라당은 취약 분야인 문화예술계와 사회단체, 노동계 쪽에서 중도 보수 성향의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최근 연령별, 성별, 직능별, 지역별로 당내 인물을 분류한 결과 이 분야가 취약하다는 결론이 나온 데 따른 것. ‘변호사와 교수 정당’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특정 분야의 인사가 많아 이 분야에 대한 매력이 줄었다.

다만 재산이 너무 많은 재력가는 꺼리고 있다. ‘재벌 옹호 정당’ ‘웰빙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낮은 지지도 때문에 당장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 하지만 정기국회가 끝나는 대로 정부와 당 주변의 인재 풀을 십분 활용해 새 인물 영입에 나설 계획.

민주당은 한화갑(韓和甲) 대표가 전략 거점인 광주 전남지역의 거물급 인사를 끌어들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 또 당 외곽기관인 국가전략연구소에서 40대 전문가 영입에 주력하는 역할분담 체제를 이미 갖췄다.

민주노동당은 ‘투사형’ 일색에서 벗어나 대중적 저변을 더욱 확대하겠다는 생각이다. 당의 노선에 충실하면서도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문화예술계 쪽 인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양성 평등 구현 차원에서 남성보다는 여성을 선호하는 편이다.

②은밀한 ‘작업’

아직 구체적인 영입 ‘작업’에 나선 것은 아니지만 열린우리당은 ‘스타급 최고경영자(CEO)’에 관심이 많다.

의원들 사이에서는 김정태(金正泰) 전 국민은행장과 모 대기업의 L 부회장 같은 인물을 데려와야 한다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오가고 있다. 김 전 행장은 광주시장 후보로, L 부회장은 부산시장 후보로 각각 거론된다.

여기에는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이 최근 청계천 복원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본인의 출마 부인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CEO 출신인 진대제(陳大濟) 정보통신부 장관을 서울시장이나 경기지사 후보로 ‘차출’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영입 작업에서 여당의 최대 무기는 대통령과 요직 제공. 내년 지방선거 인물 영입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연말 개각에서 어떻게 판을 짜는지가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또 낙선 시 요직 보장은 영입 작업에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운동권 출신이면서도 전문가 그룹에 진입해 있는 이정우(李政祐) 변호사 같은 인물을 영입 모델케이스로 삼자는 얘기도 나온다.

김형오 위원장을 비롯한 한나라당 영입 위원들은 당 출입기자 등에게 “누구 좋은 사람 없느냐”고 물으며 넌지시 특정인에 대한 인물평을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와 함께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물론 이명박 서울시장 등 당내 대선주자들은 당 영입추진위의 활동과 별개로 다양한 인물을 은밀하게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의 경우 당 총재의 ‘삼고초려’와 함께 집권 가능성이 영입 작업에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최근 한화갑 대표가 직접 나서 광주 출신인 김동신(金東信) 전 국방장관 영입에 성공하면서 예비역 장성 10여 명의 대거 입당을 기대하고 했다. 민주당은 김 전 장관에게 당 사무총장과 광주시당 위원장을 맡기기로 했다.

젊은 전문가로는 유전공학계의 기대주로 꼽히는 40대 과학자인 박홍석(朴洪石)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을 8월 당 과학기술특별위원장으로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沈相정) 원내부대표는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게 검증된 인사라면 대중성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며 “연예인이나 영화계 인사라도 민노당이 가는 방향에 진심으로 동참하는 분이라면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미 지난해 총선 때 ‘민노당 지지’를 선언한 영화감독 박찬욱 봉준호 씨와 배우 문소리, 오지혜 씨도 관심 대상이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새 인물 영입의 빛과 그림자▼

정치권이 새 인물을 찾는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다.

열린우리당은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배아 줄기세포 복제로 세계적 과학자의 반열에 오른 서울대 황우석(黃禹錫) 교수를 간판스타로 영입하기 위해 애썼다. 당시 당 의장이던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은 물론 황 교수와 친분이 있는 인사들이 총동원됐으나 황 교수가 끝까지 고사하는 바람에 성사되지 못했다.

2000년 창당 때 새천년민주당의 외부 인사 영입작업은 무려 2만여 명에 이르는 사회 각계 인사들의 명단과 간단한 이력을 만드는 작업으로 시작됐다. 당시 이를 주도했던 K 전 의원은 “강금실(康錦實) 전 법무부 장관도 명단에 들어 있었으나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할 때 강 전 장관이 입각해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걸 보면서 사람을 평가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털어놨다.

영입 또는 인물 재배치로 당내 갈등이 벌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나라당 강재섭(姜在涉·대구 서) 원내대표가 “10·26 국회의원 재선거에 대구 동을 후보를 안 낼 수도 있다”고 말한 데 대해 당내에서는 이 지역에 공천설이 나도는 유승민(劉承旼) 대표비서실장에 대한 견제 심리가 발동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강 원내대표 측은 “말도 안 된다. 지역화합 차원에서 한 얘기였다”고 밝혔다.

민주당 역시 경기 부천 원미갑에 ‘젊은 피’인 40대 초반의 조용익(趙甬翼) 변호사를 공천했으나 안동선(安東善) 전 의원을 미는 당내 일부 인사가 반발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현재 원내수석부대표로 활약하고 있는 판사 출신인 나경원(羅卿瑗) 의원을 영입 성공의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이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열린우리당에서는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출신인 이계안(李啓安) 의원을 성공작으로 꼽는다. 386 의원들조차 “기업에서 오래 활동한 때문인지 당의 조직생활에도 모범을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 대학 교수나 변호사 출신 의원들에 대해선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이 나온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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