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간판이 미래를 보장한다?… AI 시대, 흔들리는 대학의 아성[맹성현의 AI시대 생존 가이드]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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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흔드는 대학의 존재 이유
대학 졸업장 가치 시험에 빠트린 AI… 강의실보다 강한 24시간 개인 교사
리포트 시험 AI로, 학점 신뢰 깨져… 대학교육 기술 속도 따라가지 못해
인재 못 길러내니 기업은 경력 선호… AI 시대 대학교육 목표 재설계해야
맹성현 태재대 부총장·KAIST 명예교수 《채용 플랫폼 진학사 캐치가 발표한 ‘2026 채용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2025년 국내 대기업의 정규직 신입 채용 공고는 전년 대비 43% 줄었다. 한국은행의 분석에서는 챗GPT 등장 이후 3년간 사라진 청년 일자리 약 21만 개의 대부분이 인공지능(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발생했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신입 채용 공고는 2023년 이후 35% 감소했고, 대졸 청년 실업률이 전체 실업률을 웃도는 보기 드문 역전 현상까지 나타났다.》
흔히 경기 탓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경기가 회복돼도 되돌아오지 않을 사회 전반의 변화가 있다. 자료 조사, 보고서 초안 작성, 기초 코딩처럼 대졸 신입사원이 맡아 온 업무를 AI가 이미 사람보다 빠르고 값싸게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영역에서는 더 높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좋은 대학에 가면 미래가 보장된다’는 우리 사회의 오랜 믿음을 무너뜨리고 있고, 그 믿음을 떠받쳐 온 대학이라는 제도 역시 몇 가지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
첫 번째 균열은 ‘지식 전수 독점’의 종말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대학은 본래 소수의 교수가 다수의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고, 그 희소성과 전문성이 대학의 권위와 직결됐다. 그런데 AI는 세계 최고 수준의 개인 교사를 언제 어디서나 학생 각자의 수준과 속도에 맞춰 거의 무료로 제공할 수 있다. 개인별 대화형 교육의 깊이는 끝이 안 보일 정도다. 100명을 한 강의실에 앉혀 놓고 평균 수준에 맞춰 진행하는 단방향 강의는 이제 교육적으로 열등한 방법이 됐다.
그래도 대학은 학생의 배움 수준을 평가하고 능력을 증명하는 인증기관 역할도 하지 않는가. 여기에 두 번째 균열이 있다. 과제와 리포트, 문제 풀이형 시험을 통한 평가는 AI 앞에서 빛을 잃었다. 언제 어디서나 AI를 사용하는 학생들 간의 본질적 능력 차이를 측정하기 어려워 교수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더 뼈아픈 것이 있다. 학점이 증명하던 능력, 즉 습득한 지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 실력을 통해 훌륭한 보고서를 쓰고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AI로 인해 헐값이 돼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한 조사에서는 비판적 사고와 소통 능력을 중시하는 기업의 채용에서 졸업 성적은 만점이었으나 실무 경험이 없는 졸업생이 채용 후보 중 꼴찌로 밀렸다는 사례도 있다. 성적표가 보여주는 가치가 무너진 것이다. 수능 점수에서 대학 간판으로, 또 첫 직장으로 이어지는 굳건한 사슬 위에 사회 전체가 서 있는 한국에서는 이 균열의 충격이 어느 나라보다도 크다.
세 번째 균열은 AI의 능력이 정형화된 지적 업무의 상당 부분에서 대학 졸업자들을 능가하고 있다는 현실에서 온다. 4년 대학 교육을 받은 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안정된 직업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젊은이들은 시간과 돈을 대학에 투자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대학이 여전히 스무 살 무렵 한 번 채우면 평생 쓰는 지식 탱크 모델을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물어야 한다. 대학이 가르치는 속도가 세상이 변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4년 단위 학위, 학기 단위 커리큘럼, 수년이 걸리는 학과 신설 인가 등 대학의 시계는 기술의 반감기나 ‘AI 네이티브 시대’를 맞이하는 젊은이들의 빠른 변화와 어긋난 지 오래다.
네 번째 균열은 기업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기업에서 신입사원이 맡는 업무는 사실 월급을 받으며 듣는 수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문가는 통상 신입 시절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길러지는데, AI가 신입의 일을 대체하면서 채용은 경력직 수시 채용 중심으로 재편됐다. 직장마다 경력을 요구하는데 경력을 쌓을 첫 직장이 사라진 모순의 회로에 청년들이 갇힌 것이다. 그런데 이는 기업에도 부메랑이 된다. 지금 주니어를 뽑지 않은 조직에는 10년 뒤 기업의 허리가 될 중견 간부가 없다. 대학이 기초를 닦으면 기업이 완성한다는 오랜 분업 구조가 소리 없이 무너지고 있는데, 대학은 여전히 그 구조를 전제로 학생을 내보내고 있다.
마지막 균열은 AI가 대학 교육의 본질에 미치는 영향으로, 가장 심각하다. 스스로 묻고 따져 보기 전에 답부터 받아 드는 습관, 즉 생각을 AI에 맡기는 ‘인지의 외주화’가 대학 4년 동안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인간의 생존과 관련된 판단력과 논리적 사고력마저 형성하지 못한 채 졸업하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외뇌(外腦)를 가진 인간을 교육한다는 것은 방법론의 문제인 동시에 대학 교육의 목표 자체를 바꿔야 하는 문명론적 이슈다.
다섯 개의 균열이 가리키는 질문은 ‘대학이 어떻게 살아남느냐’로 귀결된다. 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는 먼저 AI 시대에 인간의 일은 무엇이고 어떤 일이 새로 생겨나는가를 물어야 한다. 인간의 정체성이 앞으로 어떻게 형성될 것인가에 관한 질문이다. 그 답 위에서 비로소 대학은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하는 곳인지 다시 설계할 수 있다. 이제 지식을 전수하고 졸업장을 주는 곳이라는 대학의 의미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균열을 직시하는 것, 그것이 재건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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