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론자들이 애용하는 사이비 통계
장동혁, “5억9천만분의 1 여섯번 곱해야”
18대 대선 직후 김어준의 ‘K음모론’도
대중 현혹하는, ‘과학’을 가장한 ‘혹세무민’
천광암 논설주간
지난달 16일 발표된 로또 1224회의 1등 당첨자는 12명이었다. 그다음 주는 13명, 또 그다음 주는 10명이었다. 그런데 혹자에 따르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논리다.
먼저 로또에서 가능한 숫자 조합은 약 814만 개다. 따라서 1등에 당첨될 확률은 ‘814만분의 1’이다. 2명이 동시에 1등에 당첨될 확률은 ‘814만분의 1’을 2번 곱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계속 계산해 나가면 12명이 동시에 1등에 당첨될 확률도 나온다. 분모가 ‘8’ 뒤에 ‘0’이 82개나 붙는 수로, 전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의 수보다 850배 많은 수다. 현생 우주에서는 통계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매주 로또 1등 당첨자가 10여 명씩 꼬박꼬박 나오는 이유가 뭘까. 간단하다. 이 계산법이 말도 안 되는 ‘엉터리’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계산법을 보자. ‘나’라는 ‘나무’만 생각하지 말고 수백만 명이 여러 줄(번호 조합)씩 로또를 사는 ‘숲’을 봐야 한다. 1224회의 경우 총 판매 금액은 1211억 원이었다. 1줄에 1000원이니, 줄 수로는 1억2110만 개다. 이는 로또에서 가능한 총 숫자 조합 814만 개의 14.8배나 되는 수다. 814만 개 모든 조합에 대해 그것을 찍은 사람이 평균적으로 15명 정도는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1등 당첨자가 십수 명 나오는 것은 지극히 정상인 것이다.
이제 ‘로또’를 기억하면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9일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을 생각해 보자.
장 대표는 “인천 송도1·2동 관내 사전투표에서 국민의힘 유정복 후보와 민주당 박찬대 후보의 득표수가 완벽하게 일치했다”며 “이런 결과가 나올 확률은 로또 당첨보다 어려운 5억9000만분의 1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광주·전남 통합선거에서는 두 후보의 투표수가 똑같은 지역이 10곳(5쌍)이나 발견됐는데, 이는 확률적으로 5억9000만분의 1을 무려 여섯 번이나 곱해야 가능한 초자연적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5억9000만분의 1에 대한 근거도 전혀 없거니와, 앞서 12명이 로또 1등에 당첨되는 것은 현 우주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계산법과 똑같은 엉터리 계산법이다.
‘쌍둥이 득표’ 현상에 대한 올바른 통계적 이해법은 필즈상 수상자인 허준이 교수의 부친이자 통계학 권위자인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설명한 바 있다.
인천의 행정동을 2개동씩 짝지을 수 있는 조합이 9316가지나 되고, 이 중 1%의 비율로 크기가 비슷하고 정치·사회적 성향이 유사할 수 있기 때문에 ‘쌍둥이 득표’가 나오는 것은 통계적으로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취지다. 또한 광주·전남의 경우 짝지을 수 있는 읍면동 조합이 인천보다 훨씬 많은 7만7028개에 이르기 때문에 ‘쌍둥이 득표’ 발생 확률이 인천보다 높다는 것이다.
다른 예를 보자. ‘쌍둥이 득표’는 국민의힘이 압승한 2022년 지선에서도 있었다. 시도지사 관내 사전투표만 놓고 봐도 충북(노영민-김영환)의 영동군 양산면과 보은군 내북면, 전남(김영록-이정현)의 화순군 동복면과 신안군 장산면에서 각각 두 당 후보의 득표수가 일치했다. 장 대표식 계산법으로 5억9000만분의 1을 두 번 곱한 ‘34경8100조분의 1’ 확률이다. “지구가 생겼다가 멸망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일어나기 힘든 우연한 사건”이 벌어진 셈인데, 2022년 지선도 부정선거 의혹이 있나.
사이비 통계학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가장 애용하는 무기다. 혹세무민을 과학으로 포장할 수 있는 데다, 아무 말을 막 지어내도 그럴듯해서 대중이 쉽게 현혹되기 때문이다. ‘음모론의 대가’인 김어준 씨가 18대 대선 직후 들고 나왔던 ‘K값 음모론’이나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했던 ‘벤퍼드의 법칙 짝퉁판’이 모두 그런 경우다.
장 대표가 사이비 통계를 들고나왔다는 것은 부정선거론에 대한 탐닉이 중증(重症)에 이르렀다는 징표일 가능성이 크다. 9일 올림픽공원 경기장 집회에 참석해서 ‘부정선거 재선거’ 피켓을 든 것도 단순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국민의힘 소장파 의원들의 모임인 대안과미래는 11일 회견에서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의 공정을 지키고자 모인 시민들의 요구를 부정선거 음모론으로 오염시키는 것은 보수정당 대표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될 행위”라고 지적했다. 100% 공감이 가는 말이다.
의원들은 또 이렇게 말했다. “장 대표가 스스로 보수라고 생각한다면 이제 그만 자리에서 물러나시라.” 더더욱 공감이 가는 말이다. 국민의힘이 통째로 부정선거 음모론의 진창으로 빨려 들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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