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새로운 인생 전성기를 맞은 서용빈 LG 전력 강화 코디네이터 겸 총괄.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이헌재 스포츠부장 소년등과(少年登科). 어린 나이에 큰 성취를 한다는 뜻이다. 좋은 말이지만 너무 이른 성취는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경계의 의미도 담고 있다. 오죽하면 송나라 학자 정이가 소년등과를 인생의 세 가지 불행 중 하나로 꼽았을까.
프로야구 LG 트윈스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던 서용빈(55)도 그랬다. 그는 대학을 갓 졸업한 신인이던 1994년 인생의 정점에 섰다. 그를 포함해 김재현, 유지현까지 ‘신인 3인방’이 맹활약한 LG는 그해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LG의 ‘신바람 야구’는 그 무렵 생긴 말이다.
처음 정상에 오를 때만 해도 금방 또 우승할 줄 알았다. 하지만 우승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선수 생활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지 못했다.
지도자가 돼서는 더 심했다. 2000년대 들어 LG는 긴 암흑기를 겪었다. 우승은커녕 포스트시즌에도 진출하지 못하는 해가 이어졌다. 20대에 딱 한 번 짧은 영광을 맛본 후 30, 40대는 방황과 절망 속에서 보냈다.
운이 다시 트이기 시작한 건 50대가 돼서였다. 2021년 KT 위즈 2군 감독이던 그는 그해 팀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했다. 그리고 친정팀 LG의 전력 강화 코디네이터 겸 총괄을 맡고 있던 지난해 다시 한번 우승했다. LG 소속으로 정상에 오른 건 31년 만이었다. 서용빈은 “우승을 확정 짓는 순간 너무 가슴이 벅차올라 혼자 ‘우와’ 하고 함성을 질렀다”며 “그날 밤 편의점에서 안주와 맥주를 사와 혼자만의 ‘우승 파티’를 했다. 예전의 힘들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고 했다.
50세를 전후해 그의 인생은 훨씬 다채로워졌다. 뒤늦게 다시 배우기 시작하면서다. 평생을 야구장에서 살던 그는 2018년 한국체육대 대학원에 입학해 석사 학위를 땄다. 2022년부터는 같은 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낮에는 야구단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이중생활이다. 서용빈은 “다시 배우기 시작한 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의 폭이 넓어졌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새삼 깨달은 것도 큰 수확”이라고 했다.
단국대 야구부 시절 그의 활동 공간은 대부분 야구장이었다. 밥도 학생식당이 아닌 숙소에서 먹었다. 서용빈은 “당시만 해도 수업도 제대로 듣지 않을 때다. 캠퍼스의 낭만이란 건 전혀 없었다”며 “오히려 요즘 학생식당을 이용하고, 동료들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한다. 그때 못 즐겼던 생활을 이제야 만끽하고 있다”고 했다.
오랜 현장 생활을 거쳐 그는 현재 프런트로 제2의 야구 인생을 살고 있다. 그라운드가 아닌 사무실로 무대를 바꾼 그는 ‘회사 생활’도 즐기고 있다. 서용빈은 “직원들과 함께 밥 먹고 생활하고 대화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고 신기하다”면서 “예전의 나라면 전혀 알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경험하고 있다. 빨리 적응하려 노력 중”이라며 웃었다. 그는 “학교와 회사를 다니면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운동을 하는 후배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낀다”며 “어느 자리에 있든 나만의 역할을 잘 해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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