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윤완준]계엄 뒤 1년간 알게 된 더 충격적인 일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2월 2일 23시 18분


윤완준 논설위원
윤완준 논설위원
1년 전 12월 3일 밤을 뒤흔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은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을 무너뜨렸다. 기관총으로 무장한 채 국회에 난입한 군인들은 모골이 송연하게 했다. ‘총을 쏴서라도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했다는 대통령, 헌법 기관인 중앙선관위 직원들을 체포하겠다며 케이블 타이에 야구방망이까지 준비했다는 군은 눈과 귀를 의심케 했다.

12·3 한참 전부터 망가진 국정

1년이 지난 지금, 더 충격적인 사실들이 베일을 벗고 있다. 특검 수사로 드러난 행적들만 보더라도 계엄에 이르기까지 2년 7개월 동안 윤석열 정부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사적 이익에 복무하는 기관을 방불케 할 만큼 구석구석 망가지고 있었다.

대통령은 국가안보를 위해서만 군을 통수할 수 있다. 하지만 계엄 전까지 수차례 삼청동의 은밀한 안가에 군 수뇌부를 불러 소폭을 말아 먹으며 윤 전 대통령이 쏟아낸 비상대권 주장은 그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 주장은 심지어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을 ‘총으로 쏴 죽이겠다’는 극단적 적의와 함께 등장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자신을 비판하는 여야 대표 등을 처리하려면 군이 나서야 한다는 취지였다는 게 특검 수사 결과다. 계엄을 ‘정적’ 제거의 구실로, 군을 그 도구로 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후 충암파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불안정한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고 메모장에 적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이 거꾸로 대통령 개인을 위해 나라의 안보를 흔들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역시 충암파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 앞에서 삼청동 안가에 모인 군 수뇌부가 ‘대통령께 충성을 다하는 군인들’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군부를 자신의 파벌로 만들어 사익을 추구한 윤 전 대통령은 국가 지도자를 ‘정치 군벌의 우두머리’쯤으로 전락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다.

외교도 윤 전 대통령의 왜곡된 인식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그는 계엄 한 달 전 “비상대권으로 나라를 정상화시키면 주요 우방국들도 지지할 것”이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계엄 직후 당장 미국부터 계엄을 불법이라 비판했다. 윤 전 대통령은 한덕수 전 총리 재판에선 계엄 직전 참석한 남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대해 ‘좌파들이 오는 곳이어서 더 중요한 외교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한 국가라도 더 우군으로 만들어야 할 판에 그 황당한 인식이 놀랍기만 하다. ‘더 중요한 외교’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가 임기 내내 강조한 한미 동맹이라면 계엄 망상을 가졌을 때부터 이미 망치기 시작한 셈이다.

무엇보다 국정에 관여할 아무런 권한도 없는 김 여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국정 곳곳을 사유화하고 있었다. 자신의 검찰 수사를 앞둔 시점에 민정수석과 통화하고, 법무부 장관에겐 자신의 수사 진행 상황을 물었다. 누가 대통령이고 영부인인지 헷갈릴 정도가 아니라 영부인이 대통령 위에 앉은 듯 대통령도 하면 안 되는 일을 저지르고 있었다.

2년 7개월 파탄 폭로한 계엄의 역설

계엄 전 대통령실은 국정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하자 임기 후반기 쇄신과 개각을 거론하고 있었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으로 그 분칠의 가면을 벗어던지지 않았다면, 임기 내내 꼬리를 물었던 대통령 부부의 권력 사유화가 여전히 국민 몰래 국정 곳곳을 갉아먹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계엄은 국정을 파탄 직전까지 몰고 간 폐해가 곪고 곪아 터진 결과인 동시에, 역설적으로 덮고 또 덮으려 했던 그 어두운 진실을 스스로 세상에 폭로하는 시작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2년 7개월 동안 비판엔 귀를 닫으면서 비판자를 무력화시키려는 사욕에 권력이라는 공공재를 동원했다. 감시하고 견제하는 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그런 유혹에 빠질 수 있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지금 권력자들부터 새기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불법 계엄#군 통수권#정치 군벌#국정 파탄#권력 사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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