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훈상]박근혜는 하지 않았던 윤석열식 ‘옥중 정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4일 23시 15분


박훈상 정치부 차장
박훈상 정치부 차장
‘옥중 정치’를 시작한 윤석열 대통령을 보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떠올랐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구속 수감된 후 정치인들의 접견을 거부했다. 당시 변호사였던 국민의힘 유영하 의원과의 접견을 제외하면 가족도, 친박(친박근혜)계 정치인도 만나지 않았다. 정치권에선 박 전 대통령과의 접견이 불발되자 유 의원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뒷말까지 나왔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된 현직 대통령이었다. 박 전 대통령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거다. 그렇지만 속으로 꾹 눌렀다고 한다. 유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접견 거부 원칙을 세운 이유 중 하나로 “말은 전달되는 과정에서 본래 뜻과 다르게 첨삭되거나 과장될 수 있다. 그로 인해 분란이 생길 수 있어 그냥 가만히 계셨던 것”이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윤 대통령이 구속 수감 후 보여준 모습과도 달랐다. 2017년 5월 첫 재판을 받기 위해 수갑을 찬 양손을 모은 채 호송차에서 내렸을 때 세간의 시선은 박 전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인 올림머리에 쏠렸다. 박 전 대통령은 구치소에서 파는 머리핀으로 직접 올림머리를 했다. 전문 미용사의 손길이 닿지 않아 헝클어진 모습이었다. 재킷 왼쪽에는 재임 중 달았던 브로치 대신 수인번호 ‘503’이 적힌 배지를 달았다.

반면 윤 대통령은 지난달 누군가 손질해 준 특유의 가르마 스타일로 헌법재판소에 등장했다. 수인번호 ‘0010번’이 적힌 배지도 없었고 수갑도 차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을 미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수감된 윤 대통령과 상황도 다르다. 2017년 10월 ‘정치 보복’ 재판이라고 주장하며 재판 보이콧을 선언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유효하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과 지금 윤 대통령의 ‘옥중 정치’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윤 대통령은 3일 국민의힘 권영세-권성동 ‘투 톱’과 나경원 의원을 접견했다. 나 의원은 당 지도부가 아닌데도 윤 대통령이 직접 요청해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이 정치인 접견을 거부한 것과 달리 윤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접견을 요구하고 나선 모습이다. 정통 보수 당원에게 인기가 많은 나 의원의 입을 빌리고 싶었던 것 아닐까. 나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을 독일 나치에 빗댄 윤 대통령의 발언과 함께 “이번 계엄을 통해 민주당이 마음대로 국정을 사실상 마비시킨 여러 행태에 대해 국민이 알게 된 것은 다행”이라는 대통령의 심정을 전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대통령실 고위 참모진을 만나서는 “대통령실이 국정의 중심”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당시 한남동 관저 앞에 집결했던 국민의힘 의원들이 윤 대통령과 접견하려고 줄을 섰다는 말도 나온다. 누구부터 만날지 선택권을 쥔 윤 대통령이 여당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후 민주당에 정권을 내준 트라우마를 가진 국민의힘 의원들을 인질로 삼은 것 같다. 여당 내부에서도 “중도층과 결별하고, 내 손만 잡으라는 비겁한 대통령”이란 비판이 나온다. ‘계엄은 계몽령’식의 궤변을 내뱉는 대통령과 변호인을 보고 있자니 박 전 대통령은 윤석열식 옥중 정치를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박근혜#윤석열#옥중#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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