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공개 재판 모습. 군중을 모아 놓고 재판관이 형량을 선고하면 피고인은 항소는커녕 항의도 하지 못한 채 정치범수용소나 교화소로 끌려간다. 사진 출처 데일리NK
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시국이 이 모양인지라 올해는 신년 특별사면이 사라졌다. 내심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큰 불운이 아닐 수 없다.
북한에도 특별사면 제도가 있다. 이를 대사령(大赦令)이라고 부른다. 다만 북한 대사령은 새해를 맞아 하지는 않고, 최대 명절로 꼽는 김일성 김정일 생일이나 광복절, 정권 수립일 등에 발표한다.
그런데 북한 대사령의 비밀을 알고 나면 경악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북한에서 특별사면 기준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교화소에서 사면받고 나온 사람도 자신이 왜 풀려났는지 잘 모른다.
전거리교화소에 6년 동안 수감된 탈북민 권효진 씨는 교화소에서 두 번째로 높은 ‘죄수 간부’인 ‘총지령공’을 지내면서 대사령의 두 가지 비밀을 알게 됐다.
첫 번째 비밀은 대사령이 죄인들에게 주는 혜택이라기보다는 교화소 간부들에게 주는 특혜 성격이 더 크다는 것이다.
북한 대사령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政令)으로 발표되지만 이는 형식에 불과하다. 대사령은 사회안전성이 김정은에게 “장군님의 위대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올해 태양절에 30만 일(日)을 빼서 혜택을 주려고 합니다”는 식의 제안서를 올리고 이를 비준받으면 집행한다. 5나 10으로 끝나는 정주년(整週年·꺾어지는 해)에는 대사령 사면일이 평년의 두 배쯤으로 늘어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제안서가 몇 명을 사면시킨다는 것이 아니라 몇만 일을 빼겠다고 돼 있다는 것이다. 승인이 떨어지면 전국 교화소들에 수감자 수에 비례하는 일수(日數)가 할당된다.
가령 전거리교화소가 1만 일 사면 권한을 받았다고 하자. 이를 기초로 간부들이 일수를 배분한다. 보통 7명의 주요 간부가 직급에 따라 사면일을 나눠 가진다. 교화소장, 부소장, 당 비서가 1000일씩 가지는 경우 보위지도원, 보안과장, 간부지도원, 후방과장은 500일씩 가진다.
이렇게 나눠 받은 사면권은 각자 알아서 사용한다. 교화소장은 특정인에게 몰아줘서 3년 형기를 단축시켜 줄 수도 있고, 다섯 명에게 감형 200일씩을 나눠줄 수도 있다. 간부들은 뇌물과 특정인과의 관계 등에 의해 사면을 해줄 사람을 선택한다.
간부들이 나눠 갖고도 남는 일수는 다시 도강죄(渡江罪) 몇 %, 인신매매죄 몇 %, 사회불량자 몇 % 하는 식으로 할당한다. 죄수들은 교화 생활을 잘하면 사면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지만, 실은 바깥에 있는 가족의 뇌물 액수에 사면이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북한 대사령의 두 번째 비밀은 더 끔찍하다.
교화소 죄수들은 사회안전성에 소속된 ‘노예’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죽어 가며 생산한 식량이나 석탄 등으로 사회안전성과 평양의 지배계층이 먹고산다.
갑자기 대사령이 떨어져 많은 죄수가 석방된다는 것은 노예 수가 줄어든다는 의미이고, 이들이 만들어 내던 생산물도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사령으로 죄인 수천 명이 줄어들면 사회안전성은 즉각 이만큼을 충원하려 한다. 그래서 대사령과 비슷한 시기에 각 안전부에 죄수 수를 할당하는 비밀 지시를 내려보낸다.
그러다 보니 대사령이 예고된 해엔 단순 범죄를 저질러도 중형을 받아 교화소를 가게 된다. 북한의 대다수 죄인은 자기 형량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모른다. 일반인은 법조문을 볼 수 없고 변호사도 없으며 법정 다툼도 불가능하다. 판사가 판결하는 대로 형기가 결정된다.
그런데 같은 액수를 훔친 도둑이라고 해도 어떤 해엔 3개월 노동단련형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대사령이 있는 해에 걸리면 3년 형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에선 내부적으로 이 시스템을 교화 정책이라고 부른다. 교화 정책의 중요한 목표는 죄인, 즉 노예 숫자를 일정하게 맞추는 것이다. 그래야 교화소 생산량이 들쑥날쑥하지 않게 맞춰지고, 평양 지배계층이 뜨뜻한 집에서 배급을 받으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김일성 때부터 3대째 이어지고 있고 김정은도 당연한 듯 활용한다. 자신을 지키는 사냥개라고 할 수 있는 보위성과 안전성에 충분한 인센티브를 줄 돈이 없으니 대사령이라는 제도로 수감자들의 운명과 복역 날짜를 활용해 먹고살 수 있게 허락한 것이다.
올해는 광복 및 노동당 창건 80주년이다. 이를 계기로 대규모 대사령이 떨어질 가능성도 높다. 북한 사람들에겐 2025년이 그 어느 해보다 조심스럽게 살아야 하는 위험한 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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