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칼럼]위험에 처한 국가, 그리고 교육개혁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1일 23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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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희망을 제시 못 하면 사회는 허물어져
진정한 교육개혁엔 긴 호흡의 장기 계획 필요
공교육 살리기 위해 평가와 시험방법 혁신해야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우리나라는 위험에 처해 있다. 무역과 산업 그리고 과학기술 혁신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우리 경쟁력은 이제 많은 국가에 추월당하고 있다. 여러 원인 중 가장 기본적인 이슈는 교육이다. 지난날의 교육시스템이 이룬 성과에 대해 우리는 상당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지만, 현재는 그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한 세대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나고 있다. 교육 성과는 추락하고 있으며, 이제 교육은 오히려 국가의 미래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다.” 교육개혁을 강력히 주장하는 이 글은 오늘의 대한민국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미국 레이건 대통령 행정부가 1983년에 펴낸 보고서 ‘위험에 처한 국가(A Nation At Risk)’의 서문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40여 년 전 미국 사회의 모습을 뚜렷하게 알 수는 없지만, 국가 융성과 쇠락의 근본 원인을 교육에서 찾는 일은 참으로 정확한 접근이다. 상기 보고서에서는 수월성에 가치를 두지 않고 형평성과 보편성을 좇는 교육시스템을 미국의 근본 문제로 적시했는데, 상당히 비장한 자세다. 만일 미국에 적대적이거나 경쟁적인 다른 나라가 이런 교육제도를 심어 놓았다면, 이는 전쟁을 통해서라도 분쇄해야 한다며 강경하게 주장하고 있다. 무분별한 교육으로 국가가 사실상 일방적으로 무장해제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의 치열했던 냉전 상황이 반영된 것이겠지만, 여하튼 예나 지금이나 모든 면에서 대단히 여건이 좋은 미국이 스스로를 “위험에 처한 국가”라고까지 선언하며 교육개혁에 나선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 작업은 미국 현대교육사에 한 획을 그은 의미 있는 일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런 개혁이 있었고 또 계속되었기에 오늘까지도 미국은 세계를 이끌어 가는 초강대국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는 것으로 믿어진다. 교육은 모든 것의 근본이다. 교육이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면 사회는 생기를 잃고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대한민국이야말로 “위험에 처한 국가”다. 지난 반세기 동안에 이룩한 우리 사회의 기적적인 발전에 있어 교육의 힘이 밑바탕이었음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래에 대해서는 누구에게 물어도 걱정이 많다. 교육 덕분에 융성했던 대한민국이 교육 때문에 쇠락하는 듯싶다. 우리는 기계적인 점수로만 학생을 평가하는 경쟁적인 교육에 너무 깊이 빠져버렸다. 근본적으로 사교육(私敎育)이 더욱 성과를 낼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되었다. 초등학생들이 스승의 날 쓰는 감사 편지도 이제는 학교가 아니라 학원 선생님께 보낼 정도로 공교육은 빈사(瀕死) 상태다.

국민들은 사교육비로 매년 30조 원 가까이 지출하고 있으며, 이는 저출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은 철저히 무장해제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교육시스템을 대한민국에 심어 놓은 것이 다른 나라라면, 우리 역시 전쟁을 통해서라도 이를 분쇄해야 할 것이다. 40여 년 전의 미국처럼 선전포고에 나서는 결연함이 우리도 필요하다. 확실한 개혁을 통해 미래의 대한민국이 교육 때문에 추락할 것이라는 걱정은 그야말로 기우(杞憂)가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교육개혁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으며, 이는 윤석열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근본적인 전환으로 공교육이 다시 회복되고 여기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길 기대한다. 최근에는 ‘수능 킬러문항’ 이슈 외에 학교폭력이 문제가 되면서 학교폭력예방법을 개정했고, 교사의 극단적 선택 이후에는 ‘교권보호 4법’을 만들었다. 이처럼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이를 처리하는 업무도 물론 중요하지만, 진정한 교육개혁을 위해서는 훨씬 긴 호흡의 장기적 계획이 필요하다.

경쟁이 있는 사회에서 평가를 잘 받는 일은 동서고금 어느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한 일이며, 학생들은 당연히 시험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진력한다. 시험은 교육을 지배하는 존재다. 그러면 우리 학생들 대부분에게 18세까지의 초중등교육이란 무엇일까? 이는 오로지 그 정점에 있는 수능을 위한 준비 기간인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단 하루에 치르는 오지선다형 수능을 잘 보기 위해서는 주입과 암기를 통한 선행학습으로 끝없이 반복 훈련하는 사교육이 훨씬 효율적이다. 우리는 공교육을 살려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학생 평가와 시험 방법을 혁신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처한 위험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교육개혁#공교육 살리기#위험에 처한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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