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내 일자리 뺏을까? ‘창조적 파괴’가 답하다[딥다이브]

  • 동아일보

컴퓨터 프로그래머, 고객 서비스(CS) 담당자, 데이터 담당자, 시장 애널리스트…. 앤트로픽이 ‘인공지능으로 대체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던 직업들이죠. 미국에선 AI 영향으로 이미 신입 회계사와 컨설턴트 채용이 줄고 있단 소식도 들리는데요.

그래서 이런 질문이 끊이지 않습니다. 인공지능(AI) 기술 혁명은 인간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들까요?

이에 대한 논의는 수도 없지만, 이 개념으로 많은 걸 설명할 수 있겠죠. 창조적 파괴(Creative Distruction). 결론부터 말하자면 AI 같은 기술 혁명은 일자리의 상실과 창출, 두 가지 모두를 가져오고요. 그 역동성 속에서 성장이 싹 틀 겁니다.

이 ‘창조적 파괴’로 2025년 노벨경제학상을 공동수상한 피터 하윗 브라운대 교수가 14일(목요일) ‘2026 동아국제금융포럼’의 기조 강연을 할 예정인데요. 그의 방한을 기념해 ‘창조적 파괴’와 성장으로 가는 길을 들여다보겠습니다. 2021년 출간된 책 ‘창조적 파괴의 힘(필리프 아기옹, 렐린 앙토냉, 시몽 뷔넬 지음)’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AI 기술 혁명이 가져올 ‘창조적 파괴’란 무엇일까. 게티이미지
AI 기술 혁명이 가져올 ‘창조적 파괴’란 무엇일까.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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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을 관통하는 성장의 원리
창조적 파괴.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1942년 저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제시한 개념이죠. 이후 피터 하윗과 필리프 아기옹이 1992년 슘페터의 아이디어를 수학적 모델로 발전시키면서, 관련 후속 연구가 쏟아져 나오게 됐는데요.

기초 개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①기술 혁신이 경제성장의 근본 동력이다. ②새로운 혁신은 기존 혁신을 파괴한다.

1820년대 고압 증기기술의 발전은 오랜 세월 정체돼 있던 인류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시작한 창조적 파괴의 사례였다. 게티이미지
1820년대 고압 증기기술의 발전은 오랜 세월 정체돼 있던 인류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시작한 창조적 파괴의 사례였다. 게티이미지

너무 뻔한 얘기 아니냐고요? 디지털카메라에 밀린 코닥, 아이폰과의 경쟁에서 진 노키아, 온라인 쇼핑에 밀려 문 닫는 대형마트, 넷플릭스로 타격받은 케이블TV, 중국 전기차 공습에 고전하는 독일 자동차 업계 등. 창조적 파괴와 관련지을 만한 사례는 수없이 많죠. 2000년대 IT 혁명을 이미 겪었고, 2020년대 에너지 대전환과 AI 기술 혁명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 입장에선 익숙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요.

슘페터는 1940년대에 이미 이를 간파했다는 점이 놀랍지 않나요? ‘창조적 파괴’는 물레방아와 풍차를 대체한 ‘증기기관 혁명’이 일어난 1820년대 이후 줄곧 반복되어 온 경제성장의 원리입니다. 증기기관·전기·철도·자동차 등, 지난 200여년 간 벌어진 모든 기술 혁명을 관통하는 개념이죠.

이 논리에 따르면 더 많은 창조적 파괴가 일어날수록 경제는 더 빠르게 성장합니다. 즉, 기술혁신으로 새로운 기업이 떠오르고(창조) 도태된 기업이 밀려나는 일(파괴), 두 가지 모두 활발한 게 성장을 위해선 가장 좋은 일이죠.

정말 그럴까요?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위원회가 소개했던 미국의 산업별 그래픽을 한번 보시죠.


ⓐ새로운 일자리가 활발하게 만들어질수록 ⓑ새로운 기업(법인)이 많이 들어올수록 ⓒ새로운 사업체(지점 또는 공장)가 많이 생길수록 ⓓ비효율적 사업체가 많이 퇴출될수록, 그 산업의 노동생산성이 높다는 걸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성장하는 산업은 진입과 퇴출, 모두 활발한 역동성이 특징으로 나타났죠. 반대로 물갈이 없이 현실에 안주하는 ‘고인물’만 가득한 산업은 성장성이 떨어집니다.

파괴의 고통을 줄이려면
요약하자면 ‘기술혁신으로 쓸모없게 되어버린 제품과 기업이 퇴출돼야, 거기 묶였던 자원(노동력과 자본)이 재배치되면서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라는 게 창조적 파괴의 핵심 논리입니다. 경제 성장을 위해선 ‘창조’만이 아니라 ‘파괴’도 필수인 거죠.

혁신은 생산성을 끌어올리기에, 경제 전체로는 ‘혁신으로 사라지는 일자리<새로 생긴 일자리’가 됩니다. 과거 기술 혁명의 역사를 돌이켜봐도, 우려했던 대규모 실업사태가 일어난 적은 없었죠. 피터 하윗 교수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인구의 50%가 농장에서 일했던 15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150년 뒤에는 인구의 1% 정도만 농업을 한다’고 하면 그들이 믿겠는가. 또 이들이 나머지 49%가 무슨 일을 할지 상상할 수 있겠나. 제트기 조종사, 자동차 정비사, 블로거 같은 직업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지금의 AI 혁명 역시 우리가 상상도 못 할 새로운 직업과 기회를 열어줄 날이 오겠죠.

피터 하윗 미국 브라운대 교수는 이민을 통한 인재 유치와 교육,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런 요인들이 혁신을 가속한다는 건 이미 여러 경제학적 연구로 증명돼 있다. 동아일보 DB
피터 하윗 미국 브라운대 교수는 이민을 통한 인재 유치와 교육,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런 요인들이 혁신을 가속한다는 건 이미 여러 경제학적 연구로 증명돼 있다. 동아일보 DB

하지만 이거 어딘가 좀 불편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개인에 초점을 맞추면 낙관적이기가 쉽지 않거든요. 기업 폐쇄로 실업자가 된 사람이 한창 떠오르는 혁신산업에 합류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예컨대 미국 피츠버그는 철강산업이 붕괴한 뒤 ‘생명공학 허브’로 거듭났고, 조선업이 몰락한 스웨덴 말뫼는 이제 친환경 대학도시로 변신한 지 오래인데요. 그렇다고 해서 과거 그 지역에서 일자리를 잃었던 이들의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바로 이 점에서 연구자들이 강조한 게 사회 안전망입니다. 창조적 파괴는 필연적으로 일정 부분 실업의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이들을 보호해 줄 제도를 국가가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그 대표적인 사례가 덴마크의 ‘플렉시큐리티’ 제도인데요. 덴마크는 기업의 직원 해고가 쉬운 대신, 실직자엔 최대 3년간 임금의 90%(현재 상한액 약 월 470만원)를 실업수당으로 지급합니다. 그 결과, 미국과 달리 덴마크에선 직장 폐쇄로 일자리를 잃은 경우에도 노동자의 건강상태나 사망률이 악화하지 않았다고 하죠.

IMF 외환위기의 역설
전기차 시장을 가장 앞서 개척한 테슬라나 AI 업계의 선두주자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 중인 오픈AI와 앤트로픽 같은 기업은 모두 스타트업으로 출발했죠. 대체로 과감한 혁신을 주도하는 건 신규 진입자들입니다. 잃을 게 없기 때문에 더 파격적으로 치고 나올 수 있는 거죠.

이에 비해 대기업일수록 이미 장악한 시장을 파괴할까봐 혁신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고요. 심지어 적극적으로 혁신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정부에 로비해서 규제 문턱을 높여 새로운 기업의 진입을 막는 거죠. 혁신은 뒷전인 채 정치적 연줄에만 신경 쓰는 대기업은 성장의 적입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외채 상환 금모으기 운동’을 벌이는 모습. 동아일보DB
IMF 외환위기 당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외채 상환 금모으기 운동’을 벌이는 모습. 동아일보DB

결국 성장을 위해 정부는 경쟁을 촉진하는 개방적인 경제정책을 펼치는 게 중요한데요. ‘창조적 파괴의 힘’에서 그 대표 모범사례로 꼽은 게 한국입니다. 역설적으로 1997년 외환위기의 충격이 한국이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경제적 도약을 이루게 했다고 보는 거죠.

당시 한국은 IMF 요구로 해외투자자의 지분 투자 한도를 대폭 높이고, 독과점 기업에 대한 규제는 대폭 강화하는 식으로 제도를 바꿔야만 했고요. 그 결과 “재벌 기업과 정부의 야합에 의해 방해받던 ‘비재벌’ 기업의 혁신을 촉진함으로써 재벌의 영향력을 제한하고, 한국을 경쟁에 개방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게 연구자들의 분석입니다. 반강제적으로 이뤄진 경제 개혁이 이후 혁신을 이끈 동력이 됐다는 거죠. IMF 외환위기 당시 우리 국민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생각하면, 왠지 묘한 기분이 드는 해석입니다.

예측 대신 행동하라
‘중국발 공급과잉 충격’은 전 세계적인 화두입니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이후 중국산 값싼 수입품이 각국으로 쏟아져 들어왔고요. 이로 인해 시장을 잃고 밀려나는 제조업 기업이 점점 늘어만 가는데요.

그럼, 자국 기업의 혁신 의욕을 꺾는 중국산 수입품을 밀어내는 게 답일까요? 관세 방어막을 높이 세워서?

프랑스에서 이뤄진 연구 결과는 좀 달랐습니다. 중국발 충격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 자체가 제각각이었거든요. 연구진은 이를 ‘공부를 매우 잘하는 전학생이 새로 온 학급’에 비유해 설명하는데요. 원래 성적이 좋았던 학생이라면 전학생에 자극을 받아서 전보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할 테지만, 그 반대 경우엔 의욕만 떨어져서 공부를 손 놓게 됩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생산성 상위 10%였던 프랑스 기업은 중국산이 밀고 들어오자, 혁신의 속도를 오히려 더 높였고요. 이와 달리 하위 10% 기업은 더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1958년 탄생한 미국 DARPA는 인터넷부터 자율주행까지, 세상을 바꿀 기술을 탄생시킨 연구개발 기관으로, 국가가 혁신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다. DARPA 제공
1958년 탄생한 미국 DARPA는 인터넷부터 자율주행까지, 세상을 바꿀 기술을 탄생시킨 연구개발 기관으로, 국가가 혁신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다. DARPA 제공

무엇보다 관세 장벽은 중국의 보복 조치를 불러와서 수출을 가로막을 테니, 성장엔 부정적이고요. 또 관세 장벽이 있으면 국내 기업이 굳이 국내 시장을 지키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게 되니 혁신이 줄어드는 부작용을 초래합니다. 필리프 아기옹 콜레드 주 프랑스 교수가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 직후 기자회견에서 최근의 탈세계화 추세를 두고 “이제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 같다”고 걱정했던 이유이죠.

그럼, 중국산 수입품이 국내 시장을 휘젓도록 그냥 두고 보란 말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이들이 제시하는 해법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정부가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겁니다. 기업의 연구개발을 촉진하는 세액공제나 보조금, 금융지원은 물론이고요. 1958년 스푸트니크 쇼크로 탄생한 미국 국방부 산하 DARPA(국방고등연구계획국)처럼 국가가 직접 예산을 들여 기초연구에 투자할 필요성도 강조합니다. 물론 상당한 예산이 드는 일이긴 한데요. 이로 인해 생산성이 높아지고 가계 소비가 늘어나는 효과가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겁니다.

‘창조적 파괴의 힘’에서 저자들은 이렇게 강조하죠. “자본주의는 혈기왕성한 말과 같아서 제어 불가능할 정도로 날뛸 수도 있다. 하지만 고삐를 단단히 조이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달릴 수 있다.” 어쩐지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성채(Citadelle)’ 속 유명한 구절이 떠오르는군요. “미래에 대한 당신의 임무는 예측하는 게 아니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By.딥다이브

2026 동아국제금융포럼 5월 14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
(등록 및 안내: 동아인사이트 홈페이지 www.dongainsight.com)

*이 기사는 5월 1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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