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적된 데이터로… 테슬라 자율주행, 인파 가득 연무장길도 척척

  • 동아일보

[위기의 자율주행, 흘러가는 골든타임]〈상〉더 벌어지는 자율주행 기술격차
행인 시선-손짓까지 읽어 주행 판단… “사람보다 훨씬 매끄럽게 운행” 평가
美-中, 최소한의 규제로 데이터 쌓아… 무인 로보택시까지 일상속 자리잡아
상위 15개사중 합작 포함 韓기업 2곳

13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동 연무장길 이면도로. 감독형 자율주행 시스템 FSD를 켠 테슬라 모델X가 보행자 인파 사이를 서행하며 빠져나가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3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동 연무장길 이면도로. 감독형 자율주행 시스템 FSD를 켠 테슬라 모델X가 보행자 인파 사이를 서행하며 빠져나가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3일 오후 3시 30분 서울 성동구 성수동 연무장길. 플래그십 스토어들이 즐비해 수백 명의 인파가 몰리는 ‘힙한’ 거리지만 차량 두 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비좁았다. 차량과 보행자가 아슬아슬하게 뒤섞여 베테랑 운전자도 진땀을 빼는 이 ‘마의 구간’을 테슬라는 감독형 자율주행 시스템 FSD(Full Self-Driving)만으로 유유히 빠져나갔다.

사거리에서 불쑥 끼어드는 보행자, 길가에 멈춘 화물차,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좁은 틈을 파고드는 배달 오토바이까지 변수가 끊이지 않았지만 주행은 부드러웠다. 8대 카메라의 시각 정보만으로 정차한 트럭이 방향지시등을 켜자 곧장 속도를 줄여 양보했고, 급정거한 택시를 발견하자 스스로 차선을 바꿔 회피했다. 행인의 시선과 손짓까지 읽어 주행 여부를 판단하는 인지력에 함께 탄 기자의 입에서도 “사람이 직접 모는 것보다 훨씬 매끄럽다”는 평가가 나왔다.

● 사람의 인지력 뛰어넘은 AI

차량 계기판에는 카메라 정보만으로 복잡한 골목길 환경과 보행자를 실시간 인식한 화면이 표시됐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차량 계기판에는 카메라 정보만으로 복잡한 골목길 환경과 보행자를 실시간 인식한 화면이 표시됐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 같은 부드러운 주행력은 AI가 상황 인지에서부터 판단과 차량 제어까지 운전의 전 과정을 통째로 처리하는 자율주행 기술 덕분이다. 그리고 그를 뒷받침한 것은 테슬라가 쌓아 올린 100억 마일(약 160억 km)의 주행 데이터다.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올해 초 “완전 무인 자율주행에는 약 100억 마일의 훈련 데이터가 필요하다”며 기술 완성의 분기점으로 ‘100억 마일’을 지목했는데, 테슬라는 판매된 차량들이 실제 도로를 누비며 수집하는 천문학적인 데이터에 힘입어 최근 이 고비조차 예상보다 더 빠르게 넘어섰다.

테슬라 FSD는 자율주행 선진국들이 자랑하는 생태계의 일부일 뿐이다. 이미 미국과 중국에서는 운전자 없는 무인 로보택시마저 일상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구글 자회사 웨이모는 3월 기준 상업용 로보택시로 누적 3억 km를 돌파했다. 이들이 질주하는 사이 한국 기업들 전체의 누적 자율주행 거리는 1300만 km 안팎에 머물고 있다.

해외 선도 기업과의 기술 격차는 글로벌 평가 지표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이드하우스 인사이트의 ‘2025 자율주행 리더보드’를 보면 상위 15개 기업 중 순수 한국 기업은 7위에 오른 스타트업 ‘오토노머스에이투지’가 유일하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합작법인 모셔널(12위)을 더해도 두 곳뿐이다. 반면 상위 그룹은 구글 웨이모와 중국 바이두 등 미중 기업들이 사실상 독차지하고 있다.

● 규제, 투자전쟁 속 밀린 K자율주행

격차의 근본 원인으로는 데이터 확보를 둘러싼 ‘기울어진 운동장’이 꼽힌다. 미중 기업들은 현지에서 금지한 것만 빼면 다 허용되는 방식의 ‘네거티브 규제’, 즉 최소한의 규제 속에 자율주행 데이터를 쌓고 있다. 게다가 테슬라는 ‘사용자 동의’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안전기준 면제 조항(연 5만 대)을 발판 삼아, 한국 도로에서도 자사 차량 4200여 대로 도심 골목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하고 영상 원본까지 제약 없이 미국 본사로 보내 AI 고도화에 활용한다. 반면 국내 기업은 개인정보보호법에 묶여 행인의 얼굴이나 번호판 등을 일일이 모자이크 처리(비식별화)해야 한다. AI의 학습 효율을 결정짓는 ‘생생한 원본 데이터’를 정작 국내 업체들은 손에 쥐지 못하는 역차별 구조다.

‘투자 격차’도 빼놓을 수 없는 벽이다. 글로벌 투자금이 미국, 중국 자율주행 생태계로 집중되고 있는 것.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에 따르면 올해 1∼4월 집계된 글로벌 자율주행 펀드 투자액(약 34조7000억 원) 가운데 82.4%가 미국, 9.0%가 중국에 쏠렸다. 한국에 돌아온 투자금 비중은 0.7%에 그친다.

테슬라와 구글 웨이모가 조 단위 뭉칫돈을 쏟아붓는 동안, 국내 선두 자율주행 스타트업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의 누적 투자액은 1225억 원에 머물러 있다. 현대자동차도 예산을 완성차, 하이브리드 등 여러 분야에 나눠 써야 하는 탓에 빅테크와의 ‘쩐의 전쟁’이 버겁기는 마찬가지다. 현대차가 올해 제네시스 G90에 레벨 2+ 자율주행 기능(HDA)을 탑재하고 정부도 광주에 자율차 200대를 투입해 데이터 확보에 나섰지만, 벌어진 격차를 단숨에 좁히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기태 KAIST 조천식모빌리티대학원 교수도 “광주 전역에 자율주행차 200대를 굴린다 해도 단기간에 1300만∼2000만 km 이상의 데이터를 쌓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전 세계를 무대로 데이터를 빨아들이는 테슬라에 맞서려면 좁은 국토 여건상 광주 같은 특정 지역에만 머물 게 아니라 시범지구를 대대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율주행 스타트업을 10년간 이끈 한 업체 대표는 “기술 격차는 결국 천문학적 자본과 컴퓨팅 인프라에서 비롯되는 만큼, 규제를 모두 풀어도 단숨에 테슬라를 따라잡기는 어렵다”며 “국가 차원의 전폭적 자본 지원과 컨트롤타워 구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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