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반도체 신화는 기업의 끈질긴 의지, 우호적인 국제 환경,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의 합작품이었다. 기술 개발에 매달린 삼성은 반도체 진출 선언을 한 그해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 번째 64K D램 개발에 성공했고, 이후 잇달아 ‘세계 최초’ 수식어를 달며 성장 가도를 달렸다. 1980년대 세계 최강이었던 일본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한국에 시장 확대의 기회로 작용했다. 정부도 반도체 육성 장기계획, 삼성 기흥캠퍼스 공장부지 지원 등으로 뒷받침했다.
‘도쿄 선언’ 40년이 지난 현재 한국 반도체가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위기는 갈수록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고 글로벌 수요 부진에 따른 ‘반도체 한파’도 길어지고 있다. D램을 비롯한 메모리 시장에서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격차는 줄어들고 있다. 경기에 민감한 메모리반도체 편중에서 탈피해 설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스템 등의 전반적인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과제도 있다. 소재나 부품, 장비 국산화에도 힘을 써야 한다. ‘챗GPT’로 시작되는 인공지능(AI) 시장의 가파른 성장에 따른 반도체 수요 증가의 기회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는 기업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세계화가 새로운 변곡점을 맞은 지금 각국은 수출 규제, 보조금, 세액공제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전략사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한국도 연구개발(R&D), 투자, 인재 확보 등 전 분야에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최근 들어 한국 경제가 위기라지만 맨땅에서 시작하던 과거에 비할 바는 아니다. 40년 전 뿌렸던 씨앗이 ‘반도체 신화’의 꽃을 피웠듯이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서 다시 한번 한국 경제가 ‘퀀텀 점프’하는 기적을 일궈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