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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장택동]500년 만의 유럽 가뭄

입력 2022-08-15 03:00업데이트 2022-08-15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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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중부 오베르뉴의 고지대에서 만들어지는 살레(Salers) 치즈는 2000년의 역사와 엄격한 품질 관리로 정평이 나 있다. 치즈의 원료가 되는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들이 영양분의 4분의 3 이상을 이 지역의 풀을 먹어서 섭취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정품으로 인정된다. 그런데 살레 치즈 제조업자들이 최근 생산을 중단했다. 비가 오지 않아 소들에게 먹일 풀이 자라지 않아서다.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역이 50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에 신음하고 있다.

▷“사과가 가지에 매달린 채 구워지고 있다.” CNN이 전한 영국 과수 농가의 모습이다. 유럽가뭄관측소가 홈페이지에 올린 가뭄지도를 보면 독일 스페인 영국 프랑스 등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많다. 농작물이 스트레스를 받아 작황이 우려되는 ‘비상’ 상황이라는 의미다. 땅에 수분이 부족한 수준을 뜻하는 주황색 지역까지 합치면 유럽 전체의 64%에 해당한다. 올해 유럽의 곡물 생산량은 최근 5년 평균에 비해 8∼9% 줄 것으로 전망된다.

▷‘서유럽 내륙 운송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독일의 라인강은 바지선 운항이 어려운 수준으로 수위가 내려갔다. 프랑스의 루아르강, 이탈리아의 포강 등 유럽의 주요 하천들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영국 남부에는 거의 5개월간 비가 내리지 않았고, 스페인의 저수량은 평년의 40% 수준이다. 영국 당국은 머리를 매일 감지 말자고 시민들에게 권고했고, 네덜란드 정부도 샤워 시간을 5분 이내로 줄여달라고 호소하는 지경이 됐다.

▷가뭄은 유럽의 에너지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유럽에서 생산되는 수력발전 에너지는 올해 1월에 비해 7월에는 20% 줄어들었다. 또 원자로를 식힐 냉각수가 충분하지 않아 원전 발전량도 12% 감소했다.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제한하면서 타격을 받고 있는 유럽으로선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스페인에서 공공기관 등의 에어컨 설정 온도를 27도로 제한하는 법안이 통과되는 등 유럽 각국은 허리띠를 졸라 매고 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최대한 에너지를 비축해 두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6월부터 40도를 넘나드는 폭염으로 피해가 속출했다. 영국 가디언은 “기후변화로 인해 2, 3년마다 서유럽에 극심한 더위가 찾아올 것”이라며 이런 기후가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럽 외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가뭄, 홍수 등 기상이변이 벌어지면서 올 상반기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가 약 4300명에 달했다. “우리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집단행동을 할지, 아니면 집단자살을 할지 선택해야 한다”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섬뜩한 경고가 수사(修辭)로만 들리지 않는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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