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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광화문에서/박희창]쌀 풍년에 우는 농심, 과거 해법으론 답 없어

입력 2022-05-26 03:00업데이트 2022-05-2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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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창 경제부 기자
모내기가 다 끝나지도 않았지만 벼를 심는 농민들은 벌써부터 올가을 추수가 걱정이다. 전남 강진군에서 쌀농사를 짓는 손모 씨(73)는 “농사가 형편없어져 버렸다”고 했다. 쌀값이 지금처럼 낮으면 손해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미 수지가 맞지 않아 13만2000m²(약 4만 평) 땅의 농사일을 다른 사람 손을 빌리지 않고 아들과 단둘이 하고 있다.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올해 들어 쌀값은 가파르게 떨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산지 쌀값은 이달 15일 기준으로 한 포대(20kg)에 4만6538원으로 조사됐다. 1년 전보다 16.7% 내린 수준으로, 2018년 9월 이후 가장 낮다. 지난해 12월과 비교하면 10.2% 내렸다. 산지 쌀값은 지난달에도 전년 대비 14.3% 하락했다. 쌀값이 두 달 연속 10% 넘는 하락세를 보인 것은 4년 10개월 만에 처음이다.

쌀 자체가 많아진 탓이다. 지난해 쌀 생산량은 388만 t으로 1년 전보다 10.7% 증가했다. 벼 재배 면적이 2001년 이후 처음으로 전년보다 늘었다. 2020년 쌀 가격이 오름세를 보인 데다 논에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심으면 보조금을 주는 ‘논 타 작물 재배 지원 사업’이 끝나면서 농민들이 벼를 더 심었다. 날씨까지 뒷받침돼 작황도 좋았다. 지난해 수확한 쌀의 수요량은 361만 t으로 추정된다. 공급이 27만 t 더 많은 셈이다.

문제는 공급 과잉이 올해만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벼 재배 면적이 증가세를 보이긴 했지만 최근 20년 새 벼 재배 면적은 연평균 1.9% 감소했다. 반면 쌀 소비량은 같은 기간 연평균 2.2% 줄었다. 벼 재배 면적이 줄어드는 속도보다 쌀 소비량이 더 빠르게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30년 전의 절반 수준인 56.9kg이었다.

쌀값과 달리 최근 전 세계 곡물 가격은 급등세다. 세계적인 곡창지대로 꼽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으로 작물 재배에 어려움을 겪었고 그 여파로 주요 농산물 수출국이 수출 제한이나 금지를 선언한 영향이 컸다. 이에 따라 세계화로 빛이 바랬던 식량 안보는 다시 각국의 주요 정책 목표로 떠올랐다. 2015년 100%가 넘었던 한국의 쌀 자급률은 2020년 92.8%로 하락하면서 일각에선 쌀 안보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자급률이 100%가 안 되는데도 쌀은 공급 과잉 상태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따라 매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쌀 40만8700t이 있기 때문이다. 이 양만 해도 국내 연간 쌀 소비량의 10%에 육박하는 규모라고 한다. 단순화하면 쌀 자급률이 93%만 돼도 3%만큼 공급이 더 많다.

구조적 공급 과잉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앞으로 쌀 외에 식량 안보 측면에서 중요한 밀, 콩 등을 재배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2011년에도 정부는 벼가 아닌 다른 작물을 심으면 보조금을 주는 사업을 벌였다. 이후에도 벼 재배 면적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이어졌다. 10년 동안 해도 안 된 이유부터 짚어보는 게 바람직한 정책의 출발점이다.

박희창 경제부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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