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윤정]유럽까지 번진 무역장벽… 두 번째 시험대 오른 수출

  • 동아일보

장윤정 산업1부 차장
장윤정 산업1부 차장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보호무역은 세계 경제를 망친다”고 비판하던 나라들이 하나둘 태도를 바꾸고 있다. 미국의 고관세 정책을 두고 자유무역의 후퇴라던 목소리는 옅어졌다. 그 대신 자국 산업을 지키겠다는 법과 제도가 빠르게 늘고 있다.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미국이 태도를 바꾸자, 계산기를 두드리던 각국 정부도 유사한 무역장벽을 하나둘 세우고 있는 셈이다. 유럽연합(EU)은 대표 주자다. 이미 일종의 ‘탄소 관세’ 성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1일부터 시행했다. EU 지역에 제품을 수출하는 업체는 생산 과정에서 나온 탄소 배출량을 보고하고,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산업가속화법(IAA)을 내놓으며 ‘메이드 인 유럽(Made in Europe) 우선’ 원칙을 공식화했다. 탈탄소, 공정 경쟁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유럽 시장을 잠식하는 중국산 제품을 견제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문제는 장벽이 한 국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 중국을 겨냥한 규제의 그물망에 한국 기업들이 줄줄이 걸려들고 있다. 탄소 비용 부담은 현실이 됐고, 현지 전기차 조립 라인 확대 압박도 커지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건 돌아가는 분위기다. 유럽 국가들이 유럽을 밀어줘야 한다는 ‘바이 유러피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끼리 뭉치자는 기조가 짙어지고 있다. 실제로 주요 무기 수주전에서 한국 기업들이 막판에 유럽 업체에 밀리는 장면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8조 원 규모의 폴란드 잠수함 수주전에서도 스웨덴 사브가 돌연 한국을 따돌리고 사업권을 채갔다. 현재 진행 중인 캐나다 잠수함 수주전에서도 ‘팀 코리아’는 ‘나토 연합’ 프레임을 등에 업은 독일의 티센크루프 마린 시스템스(TKMS)와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다. 성능이나 가격 경쟁이 아니라 지역적·정치적 이해관계, 한마디로 ‘같은 진영 안에서의 조달’이라는 보이지 않는 기준이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새어 나온다.

한국 제조업은 이 달라진 통상 전장 한복판에 서 있다. 자동차·배터리·철강·기계뿐 아니라 방산까지 주력 산업 대부분이 미국과 유럽 시장에 깊이 연결돼 있다. 기술력, 납기 능력과 같은 과거의 승리 공식은 파기됐다. 결국 기술의 우위를 넘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아예 기술 표준을 주도해 규제의 설계자가 되거나, 핵심 공급망을 쥐고 흔드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현지화도 더 영리해져야 한다. 단순한 생산설비 이전이 아니라 생태계 내부로 들어가 그 나라가 진짜 원하는 것을 줘야 한다.

정부도 이제 단순한 협상가가 아닌, 판 자체를 새로 짜는 설계자로 변해야 한다. 정부-기업 ‘원팀’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미국 관세에 이어 유럽의 장벽이라는 두 번째 시험대를 마주한 2026년은 한국 수출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자유무역 속에 성장해 온 한국 경제는 이제 보호무역의 물살을 거슬러야 한다. 더 이상 기업만의 전장이 아니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만들어낼 전략의 깊이를 시험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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