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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귓병의 고통 시달렸던 스메타나[클래식의 품격/나성인의 같이 들으실래요]

나성인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입력 2022-03-01 03:00업데이트 2022-03-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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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인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베토벤이 귓병과 싸워가며 숱한 명곡들을 탄생시킨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보헤미아 국민음악의 선구자인 스메타나 역시 같은 운명에 시달렸던 것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스메타나는 50세에 심한 열병을 앓은 뒤 급속히 청력을 잃어버렸다. 20년 동안 서서히 청력을 잃었던 베토벤과 달리 그에게 대비할 여유도 없었다. 더구나 그의 귀에는 바이올린의 높은 e음과 흡사한 이명이 쉴 새 없이 들렸다. 급기야 스메타나는 오페라 대본가에게 너무 많은 앙상블 장면을 넣지 말아달라고, 더 이상 집중할 수가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맥주양조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사실 독일어만을 사용하는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거의 자기 나라인 체코를 잊고 살아왔다. 그러나 민중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낭만주의와 제 뿌리와 고유의 목소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민족주의의 세례를 받은 뒤 그는 거듭났다. 당시 사용 인구가 불과 1000만여 명에 불과한 체코어는 결코 유럽의 주요 언어가 아니며 배우기 까다로운 언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팔려간 신부’, ‘리부셰’, ‘달리보르’ 등 체코어 오페라를 여덟 편이나 작곡했다. 이러한 노력은 나중에 드보르자크의 ‘루살카’, 야나체크의 ‘예누파’ 등으로 이어졌다.

스메타나는 귓병에도 불구하고 생애 마지막 10여 년간 ‘투쟁’을 계속했다. 이 투쟁은 특히 만년의 걸작인 현악 사중주 1번 ‘나의 생애에서’에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첫 악장에서는 낭만주의를 접하고 음악에 사명을 느끼게 된 청년 스메타나의 감흥을, 두 번째 악장에서는 슬라브의 민속음악 폴카 스타일을 통해 행복했던 유년과 민족에 대한 사랑을 그려낸다. 낭만주의와 민족주의. 둘은 사실 스메타나 음악 인생을 집약할 수 있는 주제다.

깊고 내면적인 노래 악장으로 유명한 세 번째 악장을 지나면 가장 극적이고 충격적인 마지막 악장이 이어진다. 스메타나의 음악적 여정을 그리다가, 갑작스럽게 ‘귓병’이라는 재앙을 맞닥뜨리게 된다. 제1 바이올린의 높은 e음이 그동안의 음악을 모두 가로막고, 생동하던 춤곡에 찬물을 끼얹는다. 스메타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그 이명이다. 이후 곡은 체념한 채 고요히, 자그마한 희망의 암시만을 남겨둔 채 사그라진다.

고통스러운 운명을 미화나 과장 없이 가혹하리만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바로 그 때문에 놀라운 극적 효과를 얻게 된다. 그 e음을 들으며 듣는 이의 가슴도 함께 무너진다. 연주자나 듣는 자 모두 작곡가의 고통에 동참하게 된다. 운명에 무너져도 삶은 여전히 가치가 있다. 예술가는 자기 고통을 재료 삼아 그렇게 고백한다. 이 고백이야말로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위안이다.


나성인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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