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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완전해지는 사랑이란[클래식의 품격/인아영의 책갈피]

인아영 문학평론가
입력 2022-02-22 03:00업데이트 2022-02-22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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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아영 문학평론가
“이 소설은 우선 대단히 재미있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두고 심사평에서 소설가 오정희가 한 말이다. 당돌하고 유머러스한 열두 살 소녀 진희의 이야기를 읽어본 독자라면 이 찬사에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 소설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은 자기 자신에게 거리를 둠으로써 냉정해지려는 진희의 안간힘이다. “내가 내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진희의 객관적인 자기 통찰은 사랑에 대한 뜨거운 갈구에서 나온다. 사랑받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태연한 태도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줄 사람이 있을 리 없다는 불신에서 나오고, 이 불신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싶다는 욕구에서 뻗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고안해낸 수단이 모든 감정에 거리를 두려는 “극기 훈련”이다. 심지어 어머니가 실성하여 자신을 나무에 묶어둔 채 버렸으며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집요하게 알아두려고 할 만큼 모든 감정을 통제하려 안간힘을 쓴다.

그녀가 도달하려는 경지는 타인에게 지거나 굴복당하는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타인에게 사랑에 빠지지 않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제발 누구라도 다정한 말투로 말을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그녀는 이 사실을 스스로 명백하게 알고 있다. “고통받지 않으려고 주변적인 고통을 견뎌왔으며 사랑하지 않으려고 내게 오는 사랑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데에 정열을 다 바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세계를 통찰하고 있다는 강한 믿음도 가닿을 수 없는 사각지대가 있다. 그것은 타인이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신보다 더 절박한 위치에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타인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타인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차단한 그녀에게 타인에 대한 연민은 자기혐오를 이기지 못한다.

“일찍부터 삶을 알게 된 만큼 삶에서 빨리 밑지기 시작했다”는 인식, 엄청난 점수 차로 져 있는 상태에서 세상과 관계 맺기 시작했다는 억울함, “세계에 속하지 못한 것은 나뿐”이라는 외로움. 세상이 자신을 속일 수 없도록 안간힘을 쓰는 그녀는 역설적으로 속지 않으려는 안간힘으로 인해 누군가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관해서만큼은 철저하게 속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결정적인 무지는 어쩌면 삼십대 중반이 된 이후에도 여전하다. “키스를 하면서도 나는 눈을 감는 법이 없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어 그것을 제공하기 위해서 언제나 나는 눈을 뜨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열두 살 때 이미 간파했듯 “미운 정이 더해져 고운 정과 함께 감정의 양면을 모두 갖춰야만 완전해지는 게 사랑”이라면 그것은 객관적인 자기 통찰 바깥으로 발을 디뎌야 만날 수 있는 무언가인지도 모른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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