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서 교수 생활하며 中日 동료 등에게
한국과 다른 역사-정치인식 들을 때 있어
타문화와 타국 시각 경험으로 접하게 되면
원칙에 기반 대화, 조정하는 법 배우게 돼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1990년대 미국에서 공부할 때, 박사과정 학생 대여섯 명이 한 연구실을 썼다. 박사과정 3년 차에 아내가 아이를 가졌는데 입덧이 매우 심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같은 연구실의 미국인 여학생이 김치를 만들어 봤다며 아내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입덧으로 김치는 더욱 먹을 수 없을 때였는데, 그 학생은 미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그런가 오해해 우리를 위해 한국 음식을 만들어 본 것이다. 맛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제법 김치 맛이 나는 김치였고, 아내 대신 내가 잘 먹었다.
김치를 만들어 준 것도 고마웠지만, 그가 김치를 만들 수 있었던 배경이 놀라웠다. 그의 부모가 국제기구에서 일했기에 어린 시절 한국에서 산 적이 있었고, 그의 어머니는 그때 김치 만드는 법을 배워 미국에 돌아온 뒤에도 가끔 김치를 만드셨다고 한다. 친구는 어머니에게 김치 레시피를 물어보고 그대로 만들어 본 것이다. 당시 가난했던 한국에 살면서도 한국을 무시하지 않고 한국인이 즐겨 먹는 김치 만드는 법을 배웠다는 친구의 어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박사과정 중에도 늘 웃는 얼굴이던 그가 어느 날 화가 난 표정으로 탄식하는 것을 봤다. 그의 손에 들린 신문에는 이스라엘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는 테러범들에게 분노하며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을 안타까워했다. 그때까지는 몰랐는데 그는 유대인이었다.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불쌍한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나는, 그 일을 계기로 ‘테러에 희생당한 무고한 시민’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그가 내게 좋은 친구였기에 나는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시각에서도 그들 사이의 갈등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그 연구실에는 오스트리아에서 온 남학생도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정말 진지하고도 침통한 얼굴로 보스니아 전쟁(1992∼1995년)에서 받은 충격에 대해 이야기해 적잖이 놀랐다. 나 역시 그 참혹한 전쟁 소식을 접하고 있었지만, 내게는 먼 나라 일에 불과했다. 본국인 오스트리아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전쟁에 그는 왜 그토록 힘들어했을까?
그는 학창 시절 내내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초토화됐던 유럽에서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고, 그럴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유럽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이 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만 있었을 뿐 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나였는데, 그때 처음으로 “동아시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하는 걱정을 해 봤다.
지금 재직 중인 대학의 유럽인 동료 교수들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의 학창 시절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유럽”이 얼마나 강조됐는지에 대해서다. 프랑스인 교수는 어린 시절 독일 학교를 방문한 경험을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한국인으로 일본에 살면서 일본인 친구와 미디어, 그리고 중국인 동료 교수와 학생들로부터 한국에서 한국인이 늘 듣는 이야기와는 다른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어떨 때는 이해가 되고, 어떨 때는 당혹스럽고 안타깝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겠지만, 그들 사이에서 어떤 판단을 하려면 우선 그들이 하는 모든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어야 한다. 한중일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끼리만 이야기하고 우리끼리만 분노하면 갈등의 골만 깊어질 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와 이를 둘러싼 중일 대립, 이란의 반(反)정부 시위 무력 진압과 미국의 공격 임박설 등으로 전 세계에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미래 세대에게는 “갈등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인권과 민주주의, 자유와 법의 지배” 등 미래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원칙에 기반해 대화하고 조정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유럽에서 그랬듯이, 한중일 청년들에게도 더 많은 교류의 장이 열리기를 바란다.
며칠 뒤면 삼일절이다. 한중일 청년이 우정과 신뢰를 쌓고 조심스럽지만 솔직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이 공동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면 1919년 기미독립선언서에서 우리 조상들이 열망했던 것처럼 그들이 주역이 된 미래의 한중일은 지금보다 훨씬 평화로운 공동번영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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