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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송평인 칼럼]어퍼컷 대 하이킥

입력 2022-02-23 03:00업데이트 2022-02-23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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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는 대선만으로 되지 않아
국회 권력 교체까지 2년 더 남아
탐욕에 야권연대 차버린 국민의힘
할 수 있는 게 없는 현실 깨달을 것
송평인 논설위원
MZ세대 사이에 현타라는 말이 쓰인다. ‘현실 자각 타임’의 터무니없는 축약어다. 어쨌든 그 말은 망상에 빠져 있다가 자신이 처한 현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을 뜻한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대선에서 이긴다면 며칠 안에 현타가 찾아올 것이다.

윤 후보는 한순간도 청와대에서 집무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그것부터가 더불어민주당의 OK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대통령 집무실을 꾸리려면 현재 입주해 있는 외교·통일·여성가족부 중 일부가 어디론가 옮겨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을 바꿔야 한다. 여가부를 폐지하려면 정부조직법을 바꿔야 한다. 모두 민주당이 통과시켜 줘야 한다.

법 개정이 어려우니 외교·통일·여가부를 한쪽으로 밀어버리고 대통령 집무실을 설치할 수도 있겠다. 대통령에 맞는 경호와 보안 시설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보수 작업이 필요하다. 테러 가능성에 대비해 집무실에 방탄유리를 설치하고 긴급 사태에 대비한 지하벙커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현실이 알려지면 멀쩡한 청와대를 놔두고 왜 집무실을 옮기느냐는 소리가 높아질 수 있다. 그래도 윤석열 부부가 강행하려 하면 청와대 터가 나쁘다고 여겨 옮기려는 게 아니냐는 무속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윤 후보는 취임 100일 이내에 대통령 직속 ‘코로나 긴급구조 특별본부’를 설치하고 자영업자 손실보상에 43조 원, 대출 보증기금에 5조 원을 쓰겠다고 공약했다. 재원 조달이 문제인데 그는 국채 발행 없는 세출 구조조정을 언급했지만 현실감 없는 얘기다.

우리나라 예산 규모가 600조 원 정도다. 이 중 반드시 써야 할 고정비를 뺀 재량 사업비는 200조 원 정도다. 재량 사업비도 사회기반시설(SOC) 투자 계획 등에 따라 다 지출이 예정돼 있어 10%를 깎기도 어렵다. 최대 10%를 깎는다고 해봐야 고작 20조 원이다.

병사들에게 월급 200만 원씩 주고, 아이 출산 시 부모에게 월 100만 원씩 1년간 모두 1200만 원을 주고, 노인 기초연금을 월 30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올려주겠다는 공약은 민주당이 받아서 ‘묻고 더블로’ 가버리면 국민의힘보다 더한 민주당의 포퓰리즘에 이용되는 꼴만 되고 만다. 주식양도세 폐지 같은 법 개정이 필요한 공약은 민주당이 반대하니 될 리가 없다.

윤 후보는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수사권을 재조정하겠다고 했으나 민주당이 반대하기 때문에 공허한 약속이다. 그러고 보면 윤 후보가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검찰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비리를 수사하는 것밖에 남지 않는다.

윤 후보가 박근혜 정권에 적용한 직권남용죄의 기준을 문재인 정권에 적용하면 기소될 자들이 수두룩하다. 사실 박근혜 탄핵에 앞장선 윤 후보를 박근혜 지지자들이 지지해준 데는 그가 박근혜를 수사한 그 기준으로 문재인도 수사해달라는 암묵적 기대가 담겨 있다. 윤 후보가 그 기대를 저버리면 국민의힘 내에서 이반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이 기대를 충족시키려 하면 민주당과의 동물적 대결이 불가피하다. 윤석열의 어퍼컷과 이재명의 하이킥은 그런 대결의 예고편이다. 민주당은 민노총 등과 연합해 제2의 광우병 사태, 제2의 촛불시위를 일으킬 수 있고 국회 의석을 바탕으로 제2의 탄핵도 추진할 수 있다. 박근혜 탄핵 과정에서 탄핵소추와 심판이 엄밀함을 잃어버려 여소야대(與小野大)하의 대통령은 언제든지 탄핵 위기에 몰릴 수 있다.

민주주의는 과반(majority)의 지배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50% 이상으로 확인되고 있는 것은 정권교체 의지밖에 없다. 그러나 민주당이 국회의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 후보가 대선에서 이기는 것은 정권교체의 완성이 아니라 정권교체의 시작일 뿐이다. 이번 경우는 정권교체가 정부 권력만이 아니라 국회 권력을 교체해야 완성된다.

야권 전체가 주도면밀하고 단합된 힘으로 헤쳐가야 할 험난한 2년이 남아 있다. 그것을 잊어버리고 오만불손해진 국민의힘이 야권연대를 차버렸다. 권력에의 의지를 넘어 권력에의 탐욕을 날것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국민의힘은 80대가 당권을 쥐건 30대가 당권을 쥐건 세대를 넘어서도 변하는 게 없다. 이따위 정당에 정권을 넘겨주려고 국민들이 애썼나 하는 회의가 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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