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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송평인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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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7~2024-07-27
칼럼97%
문학/출판3%
  • [송평인 칼럼]대통령이 국방장관에게 뭔가 지시했다고 한들

    국방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 각 군 참모총장과 국방부 검찰단장을 지휘·감독한다. 채 상병 사건에서 이종섭 국방장관(이하 모두 당시 직급)은 해병대 참모총장 격인 김계환 사령관에게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의 직무상 상관은 김 사령관이다. 박 단장은 군 사법경찰관이다. 군 사법경찰관은 직무상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박 단장의 직무는 수사 및 그와 연계된 이첩 등의 업무다. 군 사법경찰관은 유감스럽지만 군 검사와 달리 상관 명령의 적법성과 정당성에 대해 이견이 있을 때도 이의 제기를 할 권한이 없다. 박 단장은 김 사령관이 이첩 보류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김 사령관은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청문회에 계속 빠지고 있으나 민주당은 그의 불출석만은 문제 삼지 않는다. 다만 부사령관을 포함해 주변인들은 모두 김 사령관이 이첩 보류 지시를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박 단장이 지시를 어기고 이첩을 강행하는 바람에 항명이 되면서 사건은 국방부 검찰단으로 넘어갔다. 이후에는 이 장관의 직접 지휘·감독하에 있는 국방부 검찰단장이 박 단장이 수사한 내용에서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몇몇에 대한 혐의 적용만 빼고 그대로 경찰에 이첩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청원 청문회’는 국회 권한을 남용한 청문회이지만 소득도 없지 않았다.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밝혔다. 하나는 박 단장의 수사보고서에 이미 여단장이 사단장의 지시를 어겨 수색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 사단장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는 일단 배제하고 봐야 하는데도 그러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박 단장의 수사보고서에 초급장교와 부사관에게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는 내용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상관의 지시를 따르는 것 외에는 어떤 권한도 없었기 때문에 경찰 수사에서 무혐의 처리됐다. 박 단장의 수사보고서는 액면으로도 앞뒤가 안 맞았다. 전화번호 ‘02-800-7070’으로 이 장관에게 전화한 사람이 누구라는 걸 다 알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다. 단지 이 장관이 말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 장관에게 전화로 뭔가를 지시했다고 해도 여기서는 문제 될 것이 없다. 대통령은 장관에게 지시할 수 있다. 주요한 국정은 다 대통령이 장관에게 지시해서 이뤄진다. 다만 그 지시가 부당하다면 장관은 거부할 수 있다. 아니 거부해야 한다. 그러나 장관이 수긍하고 부처에 지시했다면 그 지시는 장관의 지시가 된다. 장관은 책임지라고 있는 자리다. 장관이 책임지기 싫으면 장관 자리를 그만두면 된다. 그것이 장관이 장관 아닌 다른 공무원과 다른 점이다. 19세기 프랑스에 책임지지 않는다는 조건이라면 장관 자리를 맡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철학자 키르케고르가 조롱한 바 있다. 이 장관의 지시는 경찰 수사 결과와 일치하지 않았어도 적법했지만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온 덕분에 정당성까지 얻었다. 장관과 대통령 사이에 있었던 일은 더 따져 볼 필요도 없다. 대통령은 애초에 아무런 지시를 하지 않았어야 한다. 어차피 정식 수사는 경찰에서 하게 돼 있으니 장관이 결제까지 한 박 단장의 보고서는 일단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였다. 임 사단장은 자신의 지시와 다른 지시를 여단장과 대대장이 해서 넘어갔을 뿐 자신의 지시를 따랐다가 사고가 일어났다면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대통령은 군 복무도 안 해본 사람이 어림잡아 알은체하다가 혼이 났다. 대통령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지금 논란이 되는 대부분의 사건은 ‘김건희 특혜 조사’를 포함해 대통령 쪽이 불필요한 고집을 부려 빚어졌다. 김 여사는 일반인보다 가혹하게 범죄 혐의를 적용받아서도 안 되지만 대통령 부인이라고 쉽게 범죄 혐의를 빠져나가서도 안 된다. 일반인이 주가조작에 계좌가 연루됐다면 4년 가까이 지나 검찰청사 밖에서 조사받을 수 있겠나. 다만 채 상병 사건은 이 정도로 끝내야 한다. 임 사단장 구명 시도가 있었고 거기에 ‘김건희 커넥션’이 있었다면 그것은 따로 수사해도 된다(물론 나 같으면 민주당 쪽의 수상한 변호사가 만들어내는 의혹은 더 철저히 검증하겠다). 채 상병 사건은 ‘김건희 커넥션’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통령과 장관 사이가 단절돼 있어 수사 외압으로 처벌할 수 없다. 공수처는 질질 끌면서 언론플레이나 하지 말고 신속히 수사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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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검사 탄핵서 드러난 ‘이재명 유일 체제’의 봉건성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는 정치학자인 최장집 교수가 1987년 정치적 민주화 이후 경제적 사회적 민주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 위해 쓴 말이다. 한국 정치학계에서 보기 드문 적절한 개념화이긴 하지만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 같은 착각도 없지 않다. 정치적 민주화가 1987년으로 끝난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정치는 한번에 영구히 민주화되지 않는다. 정치는 전진할 수 있듯이 퇴행할 수도 있다. 헤겔적 의미의 자유의 확산으로서의 역사가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끝나지 않고 독재자가 된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퇴행하고 있듯이, 또 심지어 민주주의의 모범 국가였던 미국에서조차 도널드 트럼프에 의해 퇴행하고 있듯이, 한국의 정치도 그렇다는 걸 이재명 대표의 더불어민주당이 보여주고 있다. 자신을 수사하는 검사들을 탄핵한다는 정치를 보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검찰 수사가 지나치다는 것과 검찰 수사가 조작됐다는 것은 다르다. 검찰의 수사나 혐의 적용이 지나칠 때가 있다. 윤석열 한동훈 때 국정농단 수사가 그랬다. 중앙수사부를 폐지하고 외과수술식 수사를 지향해 가던 검찰이 윤석열 한동훈 때 옛날 식으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해서 검찰이 조작이나 하는 집단이라는 건 아니다. 대체로 검찰은 수사기관이 조작한 증거를 거르든가, 미처 거르지 못하든가 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 조작하는 집단은 아니었기에 민주화 이후 득세할 수 있었다. 검찰 수사를 조작으로 걸고넘어지는 못된 버릇은 문재인 정권 때 한명숙에게서 시작됐다. 다만 그때도 검사 탄핵은 언급하지 않았다. 조작이라고 주장해 법원에서 증거력을 다투는 것이 부릴 수 있는 최대한의 억지였다. 검사 탄핵 추진은 억지의 최대치를 넘어 사악함을 드러낸 것이다. 이 대표 수사 검사들에 대한 탄핵 소추가 헌법재판소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없다. 그럼에도 탄핵 소추를 추진하는 것은 탄핵을 다투고자 함이 아니라 이 대표를 건드리면 검사든 판사든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이라는 걸 민주당 의원들도 잘 알고 있다. 검사 탄핵 소추는 개탄스러운 일이지만 검사의 직무가 정지된다고 해서 재판이 중단되지는 않는다. 판사 탄핵은 다르다. 판사가 탄핵되면 판사 교체 등으로 재판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재판이 지연되면 이 대표는 주요 혐의에 대한 유무죄 확정 판단을 받지 않고 대선에 도전할 수 있다. 대통령을 포함해 정부 공직자는 탄핵 소추됐다가 헌재에서 기각 결정을 받고 돌아오면 그만이지만 판사 탄핵으로 재판이 지연되면 회복할 수 없는 부정의가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대표의 대장동 의혹은 검찰이 발동을 건 것이 아니라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상대 후보 측이 제보하면서 불거졌다. 백현동 등 나머지 개발 의혹은 유사 사건으로 따라 나왔다. 선거법상 허위 사실 유포 의혹은 대선 토론에서 액면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수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짓말 좀 했다고 대선 출마를 막는 건 지나치지만 그로부터 파생된 위증 교사 의혹은 다르다. 쌍방울 대북송금 연루 의혹도 검찰이 그림을 그리고 접근한 게 아니다. 이재명 변호인들이 받는 수임료의 실상을 확인하다가 우연히 발견했을 뿐이다. 이 대표에 대한 법인카드 불법 사용 수사는 분명 지나치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했던가. 법인카드 불법 사용 수사는 이 대표 부인 선에서 그치는 것이 적절하다. 다만 지나치다고 하는 건 자제하라는 뜻이지 조작됐다는 뜻은 아니다. 법인카드 불법 사용도 증거는 명백해 보인다. 이 대표와 배후의 원탁회의 세력은 이른바 ‘촛불’ 혁명의 완수를 위해 민주당에서 ‘이재명 유일(唯一) 체제’를 확립했다. 국민의힘 대표 후보자들이 ‘김건희 문자’를 놓고 다투는 모습은 졸렬하기 짝이 없지만 위험하지는 않다. 유일 체제는 위험하다. 유일 지도자는 잘못을 저지를 수 없다. 잘못이 있다면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쪽에 있어야 한다. 검·판사 탄핵은 유일 체제의 논리적 귀결이다. 탄핵 제도는 도둑이 들고 설치라고 있는 몽둥이가 아니다. 헌법 교과서에는 헌법 수호를 위한 저항권의 발동은 정당하다고 쓰여 있다. 도둑이 몽둥이를 들고 설치는 걸 국회도 정부도 법원도 막지 못하면 국민이 힘으로 끌어내려야 한다. 2027년이면 민주화 40주년이 된다. 그 전에 또 한 번의 정치적 민주화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4-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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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채 상병 사건의 小小大大

    지난주 국회 법사위 채 상병 관련 청문회에서 정청래 위원장의 무례한 위원회 운영을 보는 것은 심히 불편했다. 그러나 유재은 국방부 법무비서관의 증언 등은 ‘이첩 방해’가 아니라 ‘무단 이첩’의 프레임에서 이 사건을 볼 필요가 있음을 새삼 확인시켜 줬다. 해병대 수사단은 군인 사망 사건에 수사권이 없다. 수사권 없는 수사가 독립적인 행정행위인지는 나중에 생각하자. 일단 수사권 없는 수사의 이첩까지 굳이 독립적인 행정행위로 볼 이유는 없다. 이첩 자체는 상관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일반적인 행정행위다. 상관이 이첩 보류를 지시했는데도 이첩을 했으면 항명이라고 본다. 경찰로서는 무단 이첩된 기록을 접수할 의무가 없고 국방부는 회수할 권리가 있다. 두 다른 기관이 관련돼 있기 때문에 조율은 대통령실이 할 수 있다. 임기훈 당시 대통령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은 관련 증언을 거부하긴 했지만 해병대 수사단의 이첩은 무단 이첩이니 접수하지 말라고 경찰에 지시하고 접수 거부된 이첩 서류를 회수해 가라고 국방부에 지시했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다고 본다. 그러나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의 본류는 이첩이 아니라 수사다. 수사에 외압이 있었느냐다. 다만 수사권 없는 수사를 독립적인 행정행위로 봐야 할지, 독립적이라면 어느 정도나 독립적으로 봐야 할지 먼저 결정해야 한다. 수사권 있는 수사에서 외부 개입으로 결과가 바뀌었다면 법으로 처벌 가능한 외압이다. 수사권 없는 수사도 독립적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수사권 있는 수사만큼은 아니다. 비슷하게 독립적이라면 수사권이 있거나 없거나 차이가 없어진다. 수사는 수사인 이상 권한이 있건 없건 외부 개입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대통령-국방부 장관-해병대 사령관으로 이어지는 지시에 의해 수사 결과가 바뀌었다면 비판받아야 한다. 다만 규범적으로 옳지 않다고 해서 다 법으로 처벌할 수준은 아니다. 수사권 없는 수사는 사실행위에 가깝고 수사권 있는 수사가 법적인 의미를 지닌 수사이기 때문이다. 수사권 없는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는 수사권 있는 수사기관의 수사에 선입견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단정적이어서는 안 된다. 박정훈 전 수사단장의 수사 결과는 과도하게 단정적이었다. 게다가 수사 결과를 상관에게 보고하기도 전에 채 상병 유족에게 알리고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모든 책임자의 처벌을 약속했다. 수사권이 있어도 지킬 수 없는 약속을 수사권 없는 사람이 했다. 정의감에 넘쳐서 그랬다고 볼 수도 있지만 개정된 군사법원법의 취지를 준수하지 않으면서 행동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고는 약속한 대로의 이첩이 어려워질 것 같자 무단으로 이첩을 강행했다. 소소대대(小小大大), 작은 건 작다 하고 큰 건 크다고 해야 한다. 채 상병 사건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수사 중인 외압 의혹은 법적으로 별 의미가 없는 수사에의 개입을 다루는 부수적인 사건이고 경찰이 수사 중인 과실치사 의혹이 본래의 큰 사건이다. 청문회에서 지휘와 지도를 구분한 임 전 사단장의 변명은 형식논리적이다. 대민(對民) 작전에서 배속 부대는 공식 지휘 계통이 어떻든 배속한 부대 지휘관의 지휘보다 원대(原隊) 지휘관의 지도에 더 영향을 받기 쉽다. 경찰에서 임 전 사단장에 대한 과실치사 혐의가 인정된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잘못된 것으로 판정난 개입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 공수처는 불소추 특권이 있는 대통령에 대해 기소 의견을 낼 수 없다. 그러나 국방부 장관이나 해병대 사령관에 대해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 의견을 낸다면 대통령의 혐의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굳이 특검 없이도 더불어민주당은 탄핵 소추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서일필(鼠一匹·쥐 한 마리)로 태산을 울리는 게 된다. 수사기관은 큰 것도 크고 작은 것도 크다고 하기 쉽다. ‘검사 윤석열’은 온갖 것을 다 농단으로 규정하고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지만 법원에서 거의 다 무죄가 났다. 수사권 없는 수사에의 개입이 비록 서일필이 아니라 묘일필(猫一匹·고양이 한 마리) 정도는 된다 하더라도 그 정도로 나라를 흔드는 것은 비례가 크게 어긋난다. 윤 대통령에게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면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것은 나라를 다시 한번 퇴행시키는 게 된다. 지금 수사를 하는 쪽이나 지켜보는 쪽에 필요한 것은 기본적인 비례감의 회복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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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82세 바이든-78세 트럼프 메모장 하나 들고 90분 토론

    미국 대선에서 최초의 TV 토론은 1960년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 사이에 열렸다. 케네디가 젊음으로 어필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케네디 43세, 닉슨 47세로 두 사람의 나이 차는 그리 많지 않았다. 40대 후보 간에 시작된 대선 TV 토론이 어느새 80세 안팎의 후보들 간 토론이 됐다. ▷올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가 될 것이 확실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나이는 82세, 공화당 후보가 될 것이 확실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나이는 78세다. 두 사람이 사흘 뒤인 27일 첫 TV 토론을 벌인다. CNN방송이 진행하는 토론에서는 메모장과 펜, 물 한 병이 주어진다. 90분간의 토론 중간에 광고 시간이 두 번 있으나 그때도 캠프 관계자와 접촉할 수 없다. 둘의 국정 이해도나 순발력을 적나라하게 비교해 볼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바이든과 트럼프를 빼면 미국 대선에서 최고령 후보는 1984년 재선에 도전한 당시 73세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다. 상대편 민주당 후보는 56세의 월터 먼데일이었다. 두 사람이 TV 토론에서 나이를 두고 나눈 유명한 얘기가 있다. 먼데일이 “대통령의 나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공격적으로 파고들었다. 레이건은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문제 삼지 않겠다”며 거꾸로 된 듯한 대답을 했다. 먼데일이 무슨 말이냐고 묻자 레이건은 “당신이 젊고 경험이 없는 걸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특유의 유머 감각을 발휘한 역공을 펼쳤다. 미국 전체의 TV 앞이 웃음바다가 됐고 먼데일은 패배했다. ▷젊음만이 매력이 아니라 노련함도 매력이라고 호소할 수 있는 것도 평균 기대수명보다 적을 때 얘기다. 바이든과 트럼프는 둘 다 오늘날 미국의 평균 기대수명인 77세를 넘겼다. 평균 기대수명을 넘긴 후보들이 기억력 하나만 갖고 토론을 벌이게 되는 상황이 흥미롭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개 석상에서 자신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모르는 듯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최근 한 유세 현장에서는 30초 넘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역대 TV 토론이 모두 달랑 메모장 하나 갖고 했지만 이번에 이 사실이 더 주목받는 것은 두 사람이 빚을지 모르는 실수 때문이다. ▷두 사람은 여전히 국정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대중의 환호를 불러일으키는 뛰어난 연설가다. 그러나 프롬프트 의존도도 높다. 할 말을 잊는 불상사는 없길 바란다. 이들에게 통계 수치의 정확성을 따지는 건 젊은 후보들이나 하는 유치한 것일 수 있다. 주로 식견을 다투는 토론이 되겠지만 80세 안팎의 후보들의 젊은 후보들 못지않은 열띤 토론을 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멋진 장면이 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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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이재명 재판 지연의 헌법적 문제

    검찰 수사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의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형사 사건에서 검찰은 피고인과 마주 보는 일방 당사자일 뿐이기 때문에 수사에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게 옳다. 다만 검사와 피고인의 공방 끝에 법원에서 선고가 내려졌을 때는 그것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판사가 다소 미심쩍을 때조차도 그렇다. 발자크의 말처럼 법원에 대한 신뢰는 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선진국 언론은 검사가 은밀히 흘리는 걸 받아쓰지 않는다. 아예 쓰지 않는 건 아니지만 수사 내용은 수사기관 외의 제3의 출처에서 확인해 줄 때만 쓴다. 중요한 사건일수록 법정에서 검찰과 피고인이 다 발언권을 가질 때 다루는 것이 적절하다. 그래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재판에 주목하고 있으나 아직 한 건의 선고도 이뤄지지 않아 유감이다. 다만 얼마 전 이 대표의 혐의를 가리키는 측근의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일 때 평화부지사로 발탁한 이화영 씨의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에 대해 재판부는 무려 징역 9년 6개월 형을 선고하면서 ‘이재명의 방북을 위한 대가’임을 명백히 했다. 누가 봐도 이 대표와의 공모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고 이 씨가 이 대표에게 보고했다는 자료도 있다고 하지만 재판부는 공모 여부는 공소 사실이 아니라는 이유로 판단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한 이 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아예 기소를 하지 않았다. 이 대표가 공모자로 함께 기소됐더라면 재판부가 유죄 선고에 부담을 느꼈을까. 그런 것까지 고려해 검찰은 이 씨만 일단 먼저 기소한 것일까. 검찰이 곧 이 대표도 기소할 것이라고 하지만 뒤늦은 기소로 대선 전까지 확정 판결이 나오지 않으면 이런 낭패가 따로 없다. 이 대표는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백현동 용도 변경 특혜, 성남FC 후원금 등과 관련한 혐의로도 측근인 정진상 김용 씨와 함께 재판을 받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 체제에서 이들 사건이 병합되면서 재판이 필요 이상으로 지연되고 있다. 뒤늦은 기소나 늦장 재판 못지않게 우려되는 것은 판사 탄핵 시도다. 민주당은 검찰이 구속된 이화영 씨를 회유했다며 수사 검사를 탄핵하겠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이화영 유죄 선고가 나오자 수사 검사 탄핵은 김빠진 소리가 됐다. 그러자 판사 탄핵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은 서로 다른 당이 맡는다는 관행을 어겨 가며 법사위원장에 정청래 의원을 앉히고 판사들을 언제라도 탄핵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 자기 당 대표를 재판하는 판사들에 대한 탄핵은 웬만큼 후안무치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정청래라면 다르다. 물론 탄핵 소추가 헌법재판소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유죄 선고를 앞둔 결정적 순간에 재판을 지연시킬 수는 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이화영 유죄 선고 직후 ‘대통령은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헌법 84조를 거론하며 해석 논란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의 지연 전술로 이 대표에 대한 확정 판결이 대선 때까지도 내려지지 않을 것을 우려해서 헌법적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물론 헌법 84조를 둘러싸고 해석 논란이라고 할 만한 것이 과연 있는지는 의문이다. 헌법학자들은 대체로 대통령을 형사 재판에 증인으로 세울 수는 있어도 피고인으로 세울 수는 없다고 가르친다. 또 대통령을 수사할 수는 있어도 기소할 수는 없으며 임기가 끝난 후에야 기소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대통령을 피고인으로 세우지 말라는 것이다. 명시적 규정은 없어도 피고인이 대통령이 되면 재판은 중단되고 퇴임 후로 미뤄진다고 유추 해석하는 게 자연스럽다. 다만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런 지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재명 재판은 속도가 관건이다. 피고인이 대통령이 되면 재판 중단으로 유무죄를 가릴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그렇다. 유무죄를 가려봤다면 대통령이 될 수 없었던 사람을 가릴 수 없어서 대통령이 되게 했다면 아무래도 이상하다. 검찰 수사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기 때문에 법원의 선고가 유죄가 될지 무죄가 될지 예단하지 않는다. 유죄든 무죄든 법원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고 국민에게 중요한 것은 속도다. 3년 가까이 남은 대선 때까지는 이 대표에 대한 확정 판결이 내려지도록 각급 법원이 최대한 신속히 재판을 진행할 헌법적 의무가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4-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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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성추문 입막음’ 유죄 평결 트럼프, 대선 출마 자격은…

    우리나라는 대통령직 등 공직 출마에서 유죄 선고에 따른 여러 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실효되지 않는 자’ 등의 규정이 그것이다. 미국은 ‘출생에 의해 미국 시민이 아닌 자, 연령이 35세에 미달한 자, 14년간 미국 내의 주민이 아닌 자’에 대해서만 연방 대통령 출마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출생에 의한 미국인인지 공화당 쪽에서 문제 삼은 바 있다. 그러나 유죄 선고를 받은 적이 있는지는 묻지 않는다. ▷미국은 공권력의 정당성은 선거에서 나오고 선거가 우위라는 사고가 강하다. 지사와 의원은 물론이고 판사까지도 선거로 뽑는 주(州)가 적지 않다. 연방에서는 법관을 선거로 뽑지는 않지만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선거로 뽑힌 상원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기 때문에 선거 우위의 원칙이 관철되고 있다. 남북전쟁의 여파로 연방 상·하원의원과 연방 대통령 선거인에는 반란죄를 저지른 사람이 도전할 수 없다. 연방 대통령에게는 그런 제한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주 뉴욕주 법원 1심에서 ‘성추문 입막음 돈’과 관련한 혐의로 배심원단에 의해 유죄 평결이 내려졌다. 형량은 판사가 결정한다. 판사는 공화당 전국 전당대회 직전인 7월 11일을 선고 기일로 잡았다. 최대 징역 4년형을 선고할 수 있다. 물론 그날 선고는 1심 선고일 뿐이다. 그러나 유죄 판결이 확정돼도 대선 출마 자격에는 문제가 없다. ▷트럼프는 혐의가 중죄이긴 하지만 가장 낮은 급의 중죄다. 고령인 데다 전과도 없어 징역형 실형이 선고돼 수감될 가능성은 작다. 그러나 수감된다면 문제가 복잡하다. 옥중 출마를 할 수 있지만 유세를 다닐 수 없다. 대통령에 당선돼도 연방법이 아닌 주법에 따라 유죄 선고를 받았기 때문에 셀프 사면을 할 수 없다. 형기를 마칠 때까지 옥중 업무를 봐야 하는 비정상적이고 비효율적인 사태가 발생한다. 공화당 전국 전당대회 직전에 트럼프를 수감하는 선고가 내려지면 전당대회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미국 헌법의 기초자들은 직접선거로 뽑는 연방 상·하원의원과 달리 연방 대통령은 선거인단을 통해 간접적으로 뽑기 때문에 부적절한 인물을 걸러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정당 정치가 강화되면서 특정 후보 지지 선서를 하지 않으면 선거인으로 뽑히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안이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특정 후보 지지 선서를 강제하는 규정은 없다. 당 내부에 분열이 생기면 ‘선서하지 않은(unpledged)’ 선거인이 나오거나 특정 후보 지지 선서를 했지만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신의 없는(faithless)’ 선거인이 나올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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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이재명이 해야 할 진짜 연금개혁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위원이 최근 주간동아와 인터뷰한 기사를 인상 깊게 읽었다. 그는 “한번은 한중일 연금 전문가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발표를 마치니 연금 업무를 담당하던 일본 공무원이 주저하다 질문하더라. ‘한국은 일본의 절반도 안 되는 보험료를 부담하는데, 어떻게 훨씬 많은 연금액을 줄 수 있느냐’며 비법을 묻는 것이었다.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연금의 소득대체율 44%와 45%는 1만 원 차이에 불과하다는 건 기만적이다. 월급이 100만 원일 때 소득대체율 44%는 44만 원, 45%는 45만 원이므로 그 말이 맞다. 월급이 100만 원인 사람은 없다. 월급이 200만 원과 300만 원이면 2만 원과 3만 원으로 늘어난다. 베이비붐 세대가 다 연금 수령 연령이 되면 수령자는 1000만 명에 가까워진다. 3만 원씩 1000만 명이면 3000억 원이다. 매년이 아니라 매월이다. 게다가 비교하려면 44%와 45%끼리 할 게 아니라 현재의 40%와 해야 한다. 월급이 300만 원이면 소득대체율이 40%에서 44%로 오를 때 연금은 월 120만 원에서 132만 원으로 는다. 12만 원씩 1000만 명이면 매월 1조2000억 원, 매년 14조4000억 원이 더 들어간다. 연금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올리는 데는 대체로 합의가 이뤄졌다. 개인과 회사가 9%에서는 각각 4.5%씩을 부담한다. 13%로 올리면 각각 6.5%로 2%씩 더 낸다. ‘보험료율 13%에 소득대체율 44%’가 되면 개인은 2%를 더 내고 4%를 더 받으니 이익이다. 2%를 더 내고 2%도 아니고 4%를 더 받는다. 이런 마법은 회사가 추가로 2%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현재도 일본의 절반도 안 되는 보험료를 부담하면서 일본보다 많은 연금을 받고 있는데 더 이익을 보는 개혁은 있을 수 없다. 보험료율은 13%로 올리더라도 소득대체율은 40%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옳다. 개인은 2%를 더 내면서 더 받는 것은 없으니 불만스럽다. 그러나 이런 방법 말고는 개혁이 가능하지 않다. 사실 보험료율 13%도 모자란다. 안정적으로 연금 제도를 운영하는 선진국을 보면 보험료율을 18%까지 올려야 소득대체율 40% 유지가 가능하다. 일단 13%로 올리고 기회를 봐서 더 올려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정당의 대표로서 야당이긴 하지만 연금 개혁의 책임을 상당 부분 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 공론화위의 여러 안 중 개혁의 시늉만 낸 기만적인 안을 택해 재빨리 선수를 친 것이다. 이재명에게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는가. 그는 성남시장이 되자마자 모라토리엄(지불 유예)을 선언했는데 전임자를 깎아내리기 위한 사기였다. 또 전임자들이 노력해 판교를 첨단산업단지로 개발해 놓았더니 그 열매로 다른 기초자치단체는 흉내도 낼 수 없는 퍼주기를 했다. 그가 도입한 청년기본소득 같은 정책은 결국 폐지됐으나 부활하자는 목소리는 미미하다. 그가 성남시장 시절 서울까지 와 단식을 한 적이 있다. 경기도의 가난한 시군으로 가야 할 세수가 잘못된 조례로 인해 성남시로 가고 있었기 때문에 행정안전부에서 조례를 시정하도록 했더니 단식으로 저항한 것이다. 기초자치단체 시군 중에서 가장 부유한 단체의 장(長)이 돼서는 탐욕스러운 단식을 한 것이다. 그가 잘하는 것이 없지는 않다. 남한산성 불법 노점을 단속한 것과 코로나 때 신천지를 제압한 것이다. 기본권 침해가 없지 않았지만 차치하고, 그런 것만 잘하는 건 독재적인 정치인들이 가장 잘한다. 모수 개혁을 일단 하고 구조 개혁을 한다? ‘보험료율 13%에 소득대체율 44%’라는 모수의 토대 위에서는 어떤 구조 개혁을 해도 개혁이 될 수 없다. 이 대표가 그동안 해온 걸 보면 기만적인 모수 개혁의 기회가 오자 선수 치듯 해놓고 대선 때까지 3년간 버틸 속셈이었을 것이다. 그런 걸 호응해 주니 ‘모라토리엄 선언 때 지방에서 통하던 사술(詐術)이 중앙에서도 통한다’고 여기고 있으리라.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고 예루살렘 사람들은 생각했으나 예외적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 대표가 ‘보험료율 13%에 소득대체율 40%’를 하겠다고 하면 내 잘못된 선입견을 기꺼이 인정하겠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을 듯. 그의 삶에 자기희생을 감수한 선택은 없었다. 그것이 노무현과 다른 점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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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영국 상식부 장관이 촉발한 ‘상식이란 무엇인가’

    영국인이지만 미국에서 활동하고 프랑스 의원이 되기도 한 토머스 페인은 ‘상식(Common Sense)’이란 제목의 팸플릿으로 미국 독립운동과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미쳤다. 이 팸플릿은 상식이 무슨 뜻인지 언급하지 않는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것과 국가가 왕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상식이라고 단순히 선언했을 뿐이다. ▷프랑스어에는 영어의 ‘코먼 센스(common sense)’와 달리 ‘봉 상스(bon sens)’라는 말이 있다. 양식(良識)이라고 번역한다. 상식도 양식도 일본에서 번역된 말이다. 일본 철학자 미키 기요시(三木淸)는 양식을 상식의 상위 개념으로 본다. 상식을 무오류의 것으로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상식에 의문을 지닌 지혜를 양식이라고 했다. 실제 영어권과 불어권에서 쓰이는 용법에 맞는 해석인지와는 별도로 상식은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외에도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는 일리가 있다.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불확실성의 시대’란 책이 한국에서 널린 읽힌 미국 비주류 진보 경제학자다. 그는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으면서도 다수가 공유하고 있는 생각을 지칭하기 위해 사회 통념(conventional wisdom)이란 말을 사용했다. 상식을 사회 통념과 구분하고 나서 보면 상식은 양식일 때만 제대로 된 상식으로 성립할 수 있다. 현실에 있어서는 사회 통념에 불과한 것이 상식이란 말로 선동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말 상식부 특임장관(Minister for Common Sense)직이 신설돼 에스터 맥베이란 여성이 임명됐다. 이 자리의 공식 명칭은 무임소(無任所) 장관이다. 그러나 리시 수낵 총리가 정부 부처가 영국의 상식이 무엇인지 궁금할 때는 맥베이 장관의 판단을 따르라고 해서 상식부 장관이란 별칭을 얻었다. 상식은 본래 자명한 것이어야 하지만 오늘날에는 무엇이 상식이고 무엇이 사회 통념에 불과한지 구별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이런 부서까지 만들었을 것이다. 영국인 특유의 실용성이 느껴진다. ▷맥베이 장관이 공무원 신분증을 목에 걸 때 정부가 제공한 표준 목줄 외에는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색깔이 들어가거나 팔레스타인 국기가 그려진 목줄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직이 정치적 행동주의에 오염되는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상식이라는 게 상식부 장관이 정하면 상식이 되는지도 의문이다. 다만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가 아무리 불분명해졌어도 무엇이 상식인지 따져보는 사회는 ‘법만 저촉하지 않으면 됐지 상식은 무슨 필요가 있냐’는 사회보다는 훨씬 건강해 보인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4-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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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채상병 특검법 둘러싼 당론과 기율

    루소의 ‘일반의지(general will)’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한날 한곳에 모였을 때 드러나는 그 사회의 지배적인 의사다. 단, 조건이 있다. 구성원들은 사전(事前)에 서로 소통해서는 안 되고 당파를 지어서도 안 된다. 루소의 이론은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지에서 일반의지로 가는 과정에 언론 정당 같은 매개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인민대회식의 공산주의 정치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됐다.현대 민주주의 정치는 언론과 정당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하나의 일반의지가 아니라 여러 개의 집단의지가 각기 다른 정당을 중심으로 형성돼 서로 경합하고 있을 뿐이다. 개인은 여전히 무소속으로 정당 밖에서 활동할 수 있다. 하지만 뜻을 합쳐 관철하는 데는 정당이 유리하다. 여기서 정당의 당론(黨論)과 개별 의원의 관계라는 문제가 발생한다.현대 민주주의 본고장인 영국의 정당에서는 원내총무를 회초리(whip)라고 부른다. 당론에 반해 행동하려는 의원들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위협하면서 기율(紀律)을 잡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초리를 각오하고 반기를 든 의원들이 많아지면 오히려 정당 지도부가 붕괴된다. 이때 새로운 지도부를 중심으로 다시 기율 있는 정당으로 재구성될 수 있어야 그 정당은 존속한다. 당론과 기율은 이렇게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새 국회 당선인 모임에서 ‘당론을 무산시키는 행동’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4·10총선에 앞서 당론에 반해 행동한 의원들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반면 국민의힘에서는 안철수 의원 등이 채 상병 특검법을 재의결할 때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한다. 200석에 가까워 여유가 넘치는 정당에서는 오히려 당론이 중시되고 고작 100석 남짓한 정당에서는 당론이 무시되는 모습이 대비된다.의원이 불이익을 감수하고 당론에 반해 행동하는 건 헌법상의 자유다. 게다가 채 상병 특검법 재의결은 그 자체로는 큰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민주당과 그 배후의 원탁회의 세력은 탄핵으로든 자진 하야를 압박해서든 윤석열 대통령을 임기 전에 끌어내려야 한다고 공언해 왔다. 대통령은 민주당이 추천하는 2명의 후보 중에서 특검을 골라야 한다. 이 대표 주변 변호사들의 법 사술(邪術)을 봤지 않은가. 그런 유의 특검이 선정돼 탄핵 구실을 만들고 그것에 놀아나 제2의 촛불이 켜지면 안 의원 등은 막아낼 자신이 있는가. 채 상병 특검법에는 찬성하고 탄핵 소추에는 반대하는 것이 뜻대로 될까. 근시안적이고 무책임하다고 할 수 있다.윤 대통령이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에의 과실치사 혐의 적용에 격노했다면 그가 늘 그렇듯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해병대 수사단은 군인 사망 사건에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수사 개입이 되지 않는다. 박정훈 수사단장이 오히려 군사법원법 개정 전 과거 관행에 따라 행동하면서 월권한 셈이다. 임 사단장에의 과실치사 혐의 적용은 경찰이 가리면 된다. 탄핵 거리도 되지 않는 사유로 대통령을 탄핵 소추해 정치적 혼란을 일으키는 것은 막아야 한다.김건희 특검법 반대가 국민의힘의 당론이라면 그런 당론은 백날 뒤집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채 상병 특검법 재의결도 그것으로 윤 대통령이 교체되고 그런 토대 위에서 보수 정당을 재빨리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다면 못 할 선택도 아니다. 그러나 채 상병 사안으로 윤 대통령을 교체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힘든 반면 그 과정에서 정치의 한 축인 보수 정당이 새롭게 재구성되기보다는 궤멸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고 나아가 툭하면 탄핵 절차를 가동하는 나쁜 관행이 굳어져 정치 전반을 남미 수준으로 후퇴시킬 수 있다. 채 상병 특검법 재의결은 정치적으로도 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정당 정치에서는 대통령 소속 당과 국회 다수당이 일치하면 행정부와 입법부가 일체가 돼 아이러니하게도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는 폐단이 없지 않다. 대통령 소속 당과 국회 다수당이 다른 지금이야말로 역설적으로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 작동할 때다. 물론 견제와 균형의 중심에는 대통령 거부권이 있다. 정략적 법안, 포퓰리즘 법안, 체제를 위험에 빠뜨리는 법안에는 언제든지 주저 없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협치는 대통령과 국회가 공히 교착 상태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비로소 가능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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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영수회담이 협치냐

    야당 대표가 전 국민 25만 원 지원 방안과 각종 특검법을 들고 와 대통령에게 ‘우리가 총선에서 이겼으니 받아라’ 해서 받을 수도 없지만 받는다고 협치도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에는 2개의 민의(民意)가 존재한다. 대통령을 선출한 민의와 국회를 선출한 민의다. 두 민의가 시간차를 갖고 존재하면서 같을 때는 서로를 강화하고 다를 때는 서로를 견제한다. 협치는 시간적으로 가까운 민의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2022년 대선 직후 기존의 여소야대 국회가 대통령이 하자는 대로 했던가. 마찬가지로 4·10총선으로 새로 구성된 여소야대 국회가 하자는 대로 대통령이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파리 특파원을 할 때 독일 통일의 주역 중 한 명으로 당시 재무장관을 하고 있는 볼프강 쇼이블레와 인터뷰를 약속한 적이 있다. 약속한 날 며칠 전에 인터뷰가 어렵다는 연락이 왔다. 장관이 연정 협상에 들어가게 돼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독일은 가령 총선에서 기민당(CDU)이 다수당이 됐으나 과반에 못 미쳐 사민당(SPD)과 연정 협상을 한다면 임기 내 추진할 주요 정책 전반에 대한 합의를 본 뒤 연정을 발표한다. 합의를 보지 못하면 당을 바꾸어 합의가 되는 당이 나올 때까지 협상을 거듭한다. 그 기간이 길게는 몇 달씩 걸리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독일 같은 의원내각제 국가는 아니다. 그러나 사안별로 그때그때마다 타협을 보려면 정치적 피로도가 커질 뿐 아니라 어느 사안에서 실패할 경우 다음 사안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협치가 파탄 날 수 있다. 그래서 협치를 한다면 사안별 합의가 아니라 여야가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7년까지 3년간 추진하고자 하는 주요 정책을 다 내놓고 무엇을 어떻게 주고받을지 패키지로 묶어 협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협치가 예측 가능하고 지속 가능해진다. 물론 협상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을 하자’고는 할 수 있어도 ‘어떻게 할지’는 결정하기 어려운 정책이 많다. 그래서 큰 틀만 합의하고 여야 인사에게 장관 자리를 나눠줘 구체적인 방법은 그 틀 내에서 장관에게 맡기는 것도 병행할 수 있는 길이다. 국방이나 경제장관은 여당이 맡고 외교나 보건복지장관은 야당이 맡는 식이다. 협치에서는 여야의 정치적 책임이 불분명해지기 쉬운데 이렇게 하면 책임을 분명히 나눌 수 있다. 다만 총리 자리를 야당에 내주는 건 불가하다. 그럴 경우 대통령은 독자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선 장관 임명에 제동이 걸린다. 장관 임명에는 총리의 제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책도 뜻대로 펼 수 없다. 국가의 중요한 결정은 거의 모두 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총리와 충돌해 총리를 해임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여소야대 국회가 새 총리의 임명을 동의해 주지 않으면 총리 궐위 상태가 이어져 국정이 마비될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도 남미형 국가로 퇴행하고 있다. 대통령은 여소야대 상황에서 늘 탄핵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종필이 이끄는 비중 있는 제3당이 있어서 사실상의 연정으로 탄핵당할 가능성에서 벗어났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소추를 당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까지 당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은 공공연하게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거론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과거에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우리나라 탄핵 제도의 큰 문제는 부통령이 없기 때문에 탄핵까지 가지 않더라도 탄핵소추만으로 권력 공백이 발생한다는 데 있다. 채 상병 사건으로 대통령이 탄핵당할 일은 없으리라고 보지만 국회에서 탄핵소추의 엄격성이 무너지고 헌법재판소도 제동을 걸지 않아 야당이 탄핵소추의 문턱까지 밀어붙이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윤 대통령은 각료 자리의 절반이라도 내줄 각오로 협치를 시도하는 게 좋다. 다만 바로 그 협치를 위해서라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이 법률안 거부권이다. 협치란 장식어를 다 빼면 대통령이 야당이 추진하는 법안 중 합의된 일부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대가로 정부의 법안 중 합의된 일부에 대한 국회 통과를 보장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면 야당이 굳이 대통령과 협치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범야권 의석이 200석에는 못 미친다는 총선 결과가 중요하다. 국민의힘 당선인 중 일부가 흐리멍덩해서 이런 사실을 망각할 때 나라는 다시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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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채 상병 특검’, 아직은 순서 안 지킨 반칙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 사고와 관련한 수사 개입 의혹은 어려운 문제다. 수사선상에 있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주호주 대사 발령이 일파만파를 몰고 온 이유는 어려운 문제를 어렵다고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한 점 하나는 이 문제가 정치적 혼란을 초래하는 요인이 되지 않도록 주의 깊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의혹의 핵심은 물론 윤석열 대통령이 수사 개입을 했느냐다.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 측은 윤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대한민국에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며 질책한 것이 수사보고서 내용을 바꾼 이유라는 취지의 자료를 언론에 공개했다. 윤 대통령의 수사 개입을 추정할 만한 것은 현재로선 이것뿐이다. 개연성은 있어 보이지만 대통령실과 대립하는 박 대령 측이 만든 자료라는 점이 문제다. 병사가 죽었다고 사단장까지 처벌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쉽지 않다.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는 문제의식은 군을 잘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잘 모르는 것일 수 있다. 작전 단위가 대대라면 현장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것은 통상 대대장이다. 사단장 등 윗선에서야 늘 성과를 내려고 다그치겠지만 대대장은 현장에서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해야 하니까 병사와 다른 장교인 것이다. 그러나 사단장이 현장까지 내려와 직접 지시를 한다면 사정이 다르다. 윤 대통령이 군 경험이 있었다면 자신 있게 그런 말을 하기보다는 사고 당시의 상황을 더 알아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수사 개입이 되는지는 불명확하다는 게 이 사건의 특징이다. 문재인 대통령 때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개정된 군사법원법이 2022년 7월부터 시행돼 군인이 사망한 사건은 민간 수사기관으로 이첩하도록 됐다. 채 상병 사건도 민간 수사기관인 경찰에 이첩됐다. 물론 경찰로 이첩하기 전에 군 검찰 지휘로 초동수사가 이뤄졌다. 그러나 경찰이 일반 변사 사건에서처럼 수사권을 갖고 진행하는 초동수사와는 다르다. 군의 수사 결과에 얽매이지 말고 경찰 등 민간 수사기관이 독립적으로 수사하라는 것이 군사법원법 개정의 취지다. 군 수사가 본래 축소나 은폐가 많다고 여겨져 이런 개정이 이뤄졌으나 민간 수사기관으로 이첩하게 된 것을 계기로 군 지휘부에 늘 축소나 은폐 압력을 받아왔던 군 검찰이 진상을 밝히려고 시도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법적인 관점에서 보면 군의 수사 결과 보고서는 경찰이 참고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자료가 되고 말았다. 군 검찰로서는 다소 무책임하게 보고서를 낼 수 있는 여지도 주어졌다. 채 상병 사고에 대한 지휘관의 과실 책임은 경찰이 수사하지만 수사 개입 의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수사하고 있다. 공수처는 처장과 차장이 모두 임기가 끝난 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후임자들이 임명되지 않고 있다. 상당 기간 동안 공백의 책임 중 절반은 당연직 공수처장 추천위원인 법무부 장관을 뒤늦게 지명한 정부에 있었고 절반은 야당 추천위원을 늦게 지명한 민주당에 있었다. 채 상병 특검은 공수처의 채 상병 수사 결과를 본 뒤 경찰이 지휘관 과실을 어느 선까지 인정하는지 참조해서 결정하는 것이 순서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특검은 이 순서를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이다. 민주당은 공수처의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특검으로 바로 가겠다는 속셈일 수 있다. 그러나 억지로 공수처를 만든 것이 민주당 아닌가. 그런데도 공수처 수사를 건너뛴다는 건 이율배반이다. 그래서 특검은 정략적이고, 이 시점에서 국민의힘 안철수 조경태 김재섭 당선인의 채 상병 특검 수용 발언은 경솔하다고 하겠다. 민주당이 특검법을 통과시킨다면 대통령은 자신과 관련된 것이므로 거부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여기서 통하기 어렵다. 수사 미비 등 특검의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검의 전제조건이 충족되면 그때 가서 특검을 수용하면 될 일이다. 지금 당장의 특검은 총선 민심에 부응하는 것도 아니고 협치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정해진 순서를 지키지 않는 반칙, 즉 법치의 훼손일 뿐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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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미 금리 8%대로 오를 수도” 경고한 월가 황제

    요새 미국 월가 최고의 비관론자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다. 미국 주가가 한때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만발한 가운데 그는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서한에서 미국 연준(Fed)의 기준금리가 8% 이상으로 오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지난해 9월에도 기준금리가 7%까지 오를 가능성을 경고했다. 올 들어 연준의 금리 인하를 기대하며 주식시장에 부는 훈풍에도 불구하고 금리가 오를 수 있다는 수준을 오히려 더 높였다. ▷JP모건은 단순히 미국 은행 중 하나가 아니다. 지난해 중소 규모 은행인 퍼스트리퍼블릭이 파산해 월가에 위기의 폭풍이 불어닥칠 순간에 그 은행을 인수함으로써 폭풍을 잠재운 것이 JP모건이다. JP모건은 미국 연준이 생기기 전에 사실상의 중앙은행 역할을 한 민간은행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베어스턴스와 워싱턴뮤추얼을 인수한 것도 JP모건이다. 그래서 JP모건 CEO는 월가의 황제라고 불리고 그의 금리 전망이 남다르다는 건 관심을 끈다. ▷다이먼 CEO는 정부 개입 확대에 따른 막대한 재정 지출과 녹색 경제에 수반되는 기업의 비용 증가, 글로벌 공급망 조정 등이 인플레이션과 이를 억제하기 위한 금리 인상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라고 꼽으면서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은 인상 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다고 봤다. 그가 꼽은 요인이 딱히 특별한 건 없다. 경제전문가들이 대부분 거론하는 것이다. 단지 그만이 이런 요인이 쉽게 극복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 냉정함을 잃지 않고 주목하고 있을 뿐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수석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는 지난해 ‘민주적 자본주의의 위기’라는 책에서 2008년 금융위기는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였고, 대공황 이후 뉴딜정책이 부상했듯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유사한 흐름이 부상하고 있다고 봤다. 과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영어에서 가장 무서운 문장은 ‘저는 정부에서 파견됐고 당신을 도와주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은 잊혀졌다. 정부 개입은 확대됐고 코로나는 그 확대를 부채질했다. 정부 개입 확대는 케인스주의에서 보듯 인플레이션으로 귀결된다. ▷다이먼 CEO 발언의 핵심은 섣부른 낙관에 대한 경계다. 금리가 오랫동안 낮았기 때문에 투자자와 기업이 고금리 환경에 대비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저금리 시대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적 사고’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미국조차 중하위층의 일자리 창출과 사회보장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고, 기업은 기업대로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해 돈을 써야 하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쉽게 인플레이션이 끝날 것으로 보느냐고 묻는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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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이재명은 이재명의 유머가 재밌을 것이다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회칼 테러 보복’ 운운했다는 MBC의 앞뒤 다 자른 보도는 전해들은 발언의 맥락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그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고 싶은 얘기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황 전 수석을 흉내낸다면서 한 5·18 농담이다. 이 대표는 전북 군산 유세에서 “너 칼침 놓는 것 봤지. 너네 옛날에 회칼로”라며 쑥쑥 찌르는 동작을 반복한 뒤 “농담이야”라고 말했다. 또 “광주에서 온 사람들 잘 들어. 너네 옛날에 대검으로, M16 총 쏘고 죽이는 것 봤지. 너 몽둥이로 뒤통수 때려서 대가리 깨진 것 봤지. 조심해”라며 내리찍는 동작을 한 뒤 이번에도 “농담이야”라고 덧붙였다. 군 복무할 때 경북에서도 외진 지방 출신의 소대원이 한 명 있었다. 노래를 시켜보면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노래를 했다. 뽕짝도 아니었다. 부른다기보다는 웅얼거렸다. 알고 보니 공사판에서 배운 ‘노가다’ 노래였다. 그런 것 말고 뽕짝이라도 하나 불러보라고 해도 부를 줄 아는 뽕짝이 없었다. 그가 보통 소대원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노래를 부르듯이 이 대표는 보통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유머 취향을 보여준 것이다. 이 대표가 농담이랍시고 한 것은 소년공들이 공장에서 일하다 쉬면서 주고받았을 만한 것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다른 소년공과는 달리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들어간 사람이다. 다만 그는 대학이 제공하는 일반교양 교육에도, 광주의 진상을 알아보는 데도 관심이 없었고 곧장 사법시험에 매달렸다. 그래서 일찍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되긴 했지만 정신세계는 소년공 수준에서 크게 나아진 것 같지 않다. 교양이 거창한 게 아니다. 농담으로라도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을 구분하는 능력 같은 것이다. 이 대표의 5·18 농담은 그런 능력이 떨어짐을 보여준다. 고대 로마에 잔인한 성정으로는 네로조차도 따라갈 수 없는 칼리굴라라는 황제가 있었다. 성적으로도 문란했던 그는 잠자리에서 애인의 목에 키스하면서 “이 아름다운 목도 내가 원하면 잘리고 말걸”이라고 속삭였다고 한다. 그의 잔인한 성정을 과장하기 위해 꾸며낸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농담이라도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이 있다고 여겼기에 그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슬픔을 자아내는 얘기는 세상 어디서나 비슷하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공감한다. 반면 웃음은 국지적이다. 그래서 외국인의 유머는 즉각 알아듣고 반응하기 힘들다. 유머는 정신세계를 공유하는 집단에서만 웃음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 대표의 ‘칼로 찌르고 몽둥이로 치는’ 5·18 농담은 철없는 소년들의 정신세계에서는 재미있는 것일 수 있다. ‘2찍’ 같은 말도 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중독성이 있다. 그러나 다 커서도 그러는 것은 도덕성 진화가 덜된 ‘가여운(poor)’ 정신세계를 보여줄 뿐이다. 너무 앞서가서 알아듣기 힘든 농담을 4차원적이라고 한다면 조폭들이나 재미있다고 낄낄거릴 농담은 2차원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대표는 충남 당진 유세에서는 “왜 중국을 집적거려요. 그냥 셰셰(謝謝·고맙다는 뜻의 중국말),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되지”라며 두 손을 마주 잡고 고마움에 겨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대표가 중국 왕서방처럼 두 손을 잡고 이쪽에도 저쪽에도 헤헤거리는 모습이 조국 씨가 묘사한 적이 있는 ‘앞발을 싹싹 비비는 파리’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면도 있어 웃기기는 했다. 그러나 그런 점 때문에 웃는 건 그의 의도와는 반대된다. 그는 “대만해협이 어떻게 되든, 중국과 대만(의) 국내문제가 어떻게 되든 우리와 뭔 상관이 있어요. 그냥 우리는 우리 잘 살면 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전쟁이 일어나면 중국이 주한미군의 대만 이동을 저지하기 위해 한국으로 미사일을 쏠 수 있다고 공공연하게 협박까지 하는 마당에 우리와 뭔 상관 있냐고 말하는 것은 ‘셰셰’ 하며 왕서방 흉내 낸다고 재밌어지는 게 아니다. 유머는 현실의 구체적이고 예리한 파악에서 출발해 비틀고 꼬집음으로써 현실을 넘어서는 힘이다. 복잡다단한 외교·안보적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비꼬는 것은 억지로 웃기는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다. 이 대표에게 처칠이나 레이건 수준의 유머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의 웃기지 않는 유머를 걱정하는 건 꼭 필요한 현실 인식의 부족 때문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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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잔인한 독재자 너머 ‘독서광’ 스탈린을 마주하다

    부지런한 독서는 마오쩌둥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그는 장정에 나서 옌안에서 철수할 때 다른 건 다 버려도 책만은 버리지 않았다. 공산 정권을 수립하고 나서는 수만 권의 책을 모아 개인 장서실을 만들었다. ‘마오의 독서생활’이라는 책이 나와 있을 정도다. 그는 온갖 종류의 책을 읽었지만 특히 ‘루쉰 전집’과 홍루몽을 좋아했다. 스탈린도 마오 못지않은 열렬한 독서광이었던 모양이다. 다만 마오와는 달리 사후 흐루쇼프에 의한 격하 운동으로 그의 장서가 뿔뿔이 흩어졌다. 그럼에도 그가 짧은 평을 적은 400여 점의 텍스트가 남아 있다. 스탈린은 레닌을 갈릴레오와 다윈의 반열에 오른 사람으로 여겨 그의 책들을 열심히 읽었지만 또한 적수라고 말할 수 있는 카우츠키나 트로츠키의 글도 꼼꼼히 읽었다. 물론 카우츠키의 글에는 스볼로치(상놈), 르제츠(거짓말쟁이) 같은 욕설을 많이 달고, 트로츠키의 글에는 타크(맞아), 멧코(정확해)라는 메모를 달면서도 자신과의 결정적인 차이에 대해서는 틀렸다는 표시를 했다. 소련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스탈린에 대한 우상화와 악마화를 피하면서 진짜 스탈린을 알기 위한 연구도 깊어졌다. 조지아 출신인 스탈린은 젊은 시절 혁명가로 돌아서기 전까지는 성적이 좋은 신학도였다. 그가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이 된 것은 단순히 광기 때문이 아니다. 정교회 신도에서 무신론자로 돌아선 것도, 잔인한 독재자가 된 것도 나름의 논리를 집요하게 추구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스탈린은 레닌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반환하지 않은 책 중에 헤로도토스의 ‘역사’도 들어 있는 등 역사 전반에 관심이 많았다. 러시아 역사가 로베르트 비페르의 책을 많이 읽었고 그 책의 계급투쟁적 서술을 모범으로 삼아 소련 역사 교과서들이 쓰이도록 지도했다. 스탈린은 고전 문학의 계몽적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안타깝게도 스탈린이 소장한 문학작품은 그가 사망한 뒤 흩어졌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주재 소련 대사였던 안드레이 그로미코는 스탈린에 대해 “그는 특히 좋아한 셰익스피어, 하이네, 발자크, 위고, 모파상 말고도 다른 많은 서유럽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고 전했다. 스탈린은 고리키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고 톨스토이에게는 스탈린상을 수여했다. 톨스토이가 각본을 쓰고 예이젠시테인이 감독한 영화 ‘이반 뇌제’에 대해서는 그의 역사와 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작품이 되도록 직접 지도하기도 했다. 책을 통해 혁명에 접근했다는 점에서 레닌, 트로츠키, 스탈린은 다 같다. 다만 스탈린은 러시아어 외에는 읽을 수 없었고 해외 경험이 없다. 이것이 독일어를 잘했던 레닌이나 트로츠키와의 차이다. 마오쩌둥이나 스탈린을 보면 책을 열심히 읽는다는 것과 좋은 지도자가 되는 것은 큰 상관이 없어 보인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신념은 책을 통해 얻어지기보다는 인성과 도덕적 경험을 통해서 획득되는 것인 듯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4-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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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백낙청과 이재명의 위험한 결합

    ‘창작과 비평’의 백낙청 씨가 근래에는 주된 발언 무대를 잡지에서 유튜브로 옮긴 듯하다. 지난 대선 직전 문재인 격하의 신호탄을 쏜 뒤 이재명을 추켜세우고 대선 직후에 다시 나와 이재명의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그를 중심으로 뭉칠 것을 호소했는데 총선 국면에서도 같은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백 씨는 분단모순론을 주장했었다. 분단이 한국 사회의 제반 문제를 초래하는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계급모순과는 달리 분단모순은 족보도 없는 개념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체제 대결을 벌일 때만 해도 양 체제를 넘어서려는 지향으로서의 호소력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체제 경쟁에 져 붕괴하면서 분단모순론은 길을 잃었다. 그러자 그는 냉전 후 유행하던 탈(脫)근대론을 끌여들여 근대 적응과 근대 극복의 ‘이중과제론’을 들고나왔다. 한반도의 남북 사회는 근대화를 향해 계속 나아가야 하지만 그 최종 목적지는 근대가 아니라 근대를 극복한 체제라는 것이다. 근대 체제에서는 분단을 극복할 수 없고 근대를 넘어선 체제에서만 분단을 극복할 수 있다는 함의는 있지만 근대를 넘어선 체제가 어떤 모습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한반도 남쪽이 근대화를 위해 여전히 실천할 과제가 많은 사회라고 하더라도 한반도 북쪽의 3대 독재 세습체제와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그는 이 차이를 언급하지 않는다. 남한이 근대 적응과 근대 극복의 이중 과제를 실천할 때 북한은 어떻게 조응할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틀은 웅장하지만 절반이 비어 있는 기만적인 이론이다. 과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체제 대결은 오늘날 러시아의 푸틴, 중국의 시진핑, 북한의 김정은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보면 ‘자유롭고 민주적인 체제’와 독재 체제의 대결이었을 뿐이다. 냉전 종식은 역사의 종말이 아니었다. 단지 독재를 감싸고 있던 공산주의라는 포장지가 찢어져 실체가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백 씨의 이중과제론은 지금도 계속되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체제’와 독재 체제의 대립을 흐리는, 김지하의 표현을 빌리면 ‘쑥부쟁이(훼방꾼)’의 논리다. 백 씨는 이재명 민주당의 공천을 대거 민주당원이 된 촛불시민(개딸)들이 민주당 내의 반(反)촛불 세력을 걷어낸 혁신적 공천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어떤 정치인을 이재명에게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하위권으로 분류해 감점을 준 뒤 경선을 붙여 친이재명 정치인을 공천한 결과를 혁신이라고 하는 것은 공평무사함 따위는 필요 없고 오로지 촛불혁명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특정인을 중심으로 한 유일지도 체제만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는 보수 언론만이 아니라 진보 언론조차도 ‘친명(親明) 횡재, 비명(非明) 횡사’라고 비판하자 자유 언론를 통째로 반동으로 매도했다. 그가 추구하는 체제의 일부 모습을 의도치 않게 내비친 것인지 모른다. 백 씨는 근대를 극복한 체제가 어떤 모습인지 말하지 않는 것처럼 촛불혁명이 박근혜 탄핵 후에도 왜 계속돼야 하며 무엇이 달성됐을 때 끝나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가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는 체제가 남로당의 계보에서 혁신계가 추구해온 체제인지, 아니면 베네수엘라 차베스-마두로 체제의 한반도판인지, 또 다른 체제인지 알 수 없다. 근래에 올수록 개벽사상이니 뭐니 하며 거대한 종교적 담론까지 펼치는 것을 보면 그 자신도 모르는 어떤 체제를 상정하고 한반도를 태울 불장난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백 씨가 민주당 후견 원로그룹인 원탁회의에서 활동한 지는 오래됐지만 지난 대선과 이번 총선에서처럼 전면에 나선 적은 없다. 이재명을 만나 때가 무르익었다고 본 듯하다. 그는 윤석열의 집권을 변칙적 사건이라고 보고 그것이 변칙이니만큼 임기가 끝나기 전에라도 쫓아낼 수 있다는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 그가 2016년 박근혜 탄핵이라는 변칙적 사건을 몰고 온 촛불시위를 촛불혁명으로 받든다면 변칙으로 집권한 문재인의 퇴진을 외친 2020년 개천절 집회도 잊어선 안 된다. 변변한 시위 경험도, 조직도 없는 사람들이 입만 열면 촛불을 외치는 문재인이 헌법과 상식을 유린하는 사태를 더 이상 지켜만 볼 수 없어 역대 최대 규모로 모였다. 근대 사회에서 시민들의 저항은 한 방향으로만 분출하지 않는다. 그 다양함을 제도한 것이 근대 정치라는 기초부터 백 씨는 다시 배워야 할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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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사법 보다 정치’… 美 연방대법원의 트럼프 결정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출마 자격을 박탈한 콜로라도주(州) 대법원의 판결이 연방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논리는 간단하다. 주는 연방대통령의 출마 자격을 박탈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미 수정헌법 제14조 3항은 “폭동이나 반란에 가담한 자는 공직에 취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트럼프가 여기에 해당하는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함의는 트럼프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해도 연방 공직 후보자인 트럼프의 출마 자격을 박탈할 권리는 연방의회에만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사법적 책임을 묻는 절차와 정치적 책임을 묻는 절차를 구별해 사법적 책임은 법원에서 다루지만 정치적 책임은 의회에서 다룬다. 정치적 책임을 묻는 절차의 대표적인 것이 탄핵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탄핵 소추는 국회, 탄핵 심판은 헌법재판소가 하지만 미국은 탄핵 소추는 하원, 탄핵 심판은 상원이 한다. 연방 공직 후보자의 출마 자격 박탈도 사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보기 어려워 연방의회에 권한이 있다고 본 것이다. 현재 연방의회에서 상원은 민주당이 다수이지만 하원은 공화당이 다수다. 공화당 후보가 될 것이 확실한 트럼프의 출마 자격 박탈이 하원을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트럼프가 출마 자격을 박탈당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의 반란 가담 혐의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탄핵이 돼도 탄핵 사유에 해당하는 범죄에 대한 재판은 별도로 이뤄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난해 8월 미국 법무부 특별검사는 그를 반란 혐의로 기소했다. 이에 트럼프는 대통령 재직 시 공무 중 행위는 퇴임 후에도 처벌할 수 없다며 법원에 면책을 요구했다. 연방지방법원과 항소법원은 기각했고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연방대법원은 말도 안 되는 면책 요구에 대해 구두변론까지 연 뒤 6월에나 판단할 예정이다. 대선은 11월에 열린다. 연방대법원이 하급심처럼 면책 요구를 기각한다고 한들 본안인 반란 혐의 재판 결과는 대선 전에 나오기 힘들다. 앞서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재판을 신속 심리로 진행해달라는 특검의 요구를 거부했다. 사법 절차가 정치 일정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사법 절차를 늦추는 방식으로 국민의 정치적 선택에 우선권을 준 것으로 보인다. ▷다른 혐의도 아니고 반란 혐의로 기소된 사람에게 대선 출마 자격을 줘도 되는가 의문이 든다. 그러나 기소됐다는 이유만으로 유죄로 몰아가지 않는 확고한 재판중심주의의 나라가 미국이다. 트럼프는 재선에 성공한다면 대통령의 사면권을 이용해 ‘셀프 사면’을 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와 사법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연방대법원의 결정이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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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단순 무식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의대 정원을 얼마나 늘리는 게 적절한지 잘 모르겠다. 다만 윤석열 정부의 ‘2000명 증원’에는 공감이 가지 않는다. 매년 2000명을 5년간 늘려 뽑고 그다음은 그때 가서 생각해 본다는 식의 계획이 지속성을 중시하는 교육 계획으로서 성립할 수 있는지부터 의문이다. 나중에 1000명을 줄여 뽑는다면 그게 쉽게 되겠는가. 대학에서 증원을 신청한 규모가 2000명을 훨씬 넘어서는 3400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학의 위상과 재정 수입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총장의 요구가 의대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총장들의 요구와 의대 학장들의 요구가 다르다는 얘기가 들린다. 윤석열 대통령은 얼마 전 2000명 증원 계획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김대중 때 사법시험 합격자 인원을 500명에서 1000명으로 늘린 사실을 언급했다. 그러나 당시 사시 합격자는 한꺼번에 1000명으로 늘린 게 아니라 100명씩 5년에 걸쳐 1000명으로 늘렸다. 합격자가 김대중 때만 늘어난 것도 아니다. 전두환 때 100명에서 300명으로 늘었고 다시 김영삼 때 300명에서 500명으로 늘었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도 단계적인 계획이었다면 좀 더 공감이 갔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김대중 때 언급이 무엇보다 뜬금없었던 것은 노무현 때 로스쿨이 도입되면서 변호사 시험 합격자가 1700명으로 늘어난 사실은 제쳐두고 더 먼 시절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법조인 출신이 변호사 1700명 시대에 1000명 시대를 얘기하는 감각에 대해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변호사 증원이 아무런 문제가 없이 사회 곳곳에 법치를 확산시켰다는 듯 말하는 것도 사실과 맞지 않다. 서울대의 경우 사시 합격자 수가 500명으로 늘었을 때는 법대만이 아니라 인문·사회대에서까지 사시 보는 학생이 늘더니 1000명으로 늘었을 때는 문과 전체가 사시판이 됐다. 결국 사시 낭인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해 로스쿨로 전환하지 않으면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태가 빚어졌다. 로스쿨 정원 2000명도 막연히 정한 과다한 것임이 드러나고 있다. 로스쿨 정원은 1500명으로, 변호사 시험 합격자는 1200명으로 줄이는 것이 적절하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변호사 숫자가 늘어 수임료가 상대적으로 떨어진 측면이 있겠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배고픈 변호사들이 과거에는 사건이 되지 않던 것까지 사건으로 만들면서 오히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 측면도 있다. 우리나라는 소송 건수가 일본보다 3배가 많고 인구 비례로는 8배가 많다. 그렇지 않아도 ‘툭하면 소송’이었는데 이런 상황을 개선할 대책 없이 변호사 숫자만 늘려 ‘툭하면 소송’을 더 부채질했다. 의사는 건강보험 체제에 속해 있어 의사가 늘어난다고 이미 싼 병원비가 더 싸지는 것이 아니다. 의사 증원의 가장 주요한 목적은 부족한 지역의와 필수의의 확보다. 그러나 의사를 몇 명까지 늘려야 피부과와 성형외과가 포화상태가 되고 배고픈 의사들이 생겨 지역의와 필수의에 머무를까. 의사를 많이 늘리면 늘릴수록 피부과도 성형외과도 포화상태가 될 가능성은 높아지겠지만 이 문제에서 다다익선(多多益善)식 사고는 너무 단순 무식하다. 게다가 배고픈 의사들만 지역의와 필수의에 머무는 건 바람직한가. 10년 후가 아니라 지금 당장 지역의와 필수의가 필요하지 않은가. 증원도 증원이지만 지역의와 필수의에 대한 의료수가를 조정하는 것이 우선 돼야 한다. 감기만 걸려도 병원 가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선진국에서는 예약이 어렵거나 비용이 비싸서 감기 정도로는 병원에 안 간다. 우리도 감기 정도로는 함부로 병원을 찾기 어렵게 개인 부담을 높이는 대신 지역의료와 필수의료에 대한 보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 의대 정원이 한꺼번에 2000명씩 늘어 이과의 우수한 재원을 더 빨아들이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가. 지금 공대는 이미 서울대까지 황폐화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도 양쪽을 다 보지 않고 한쪽만 보는 게 어리석게 여겨질 지경이다. 지방 근무라서 연봉 4억 원 자리를 마다하는 배부른 의사들을 보면 혀가 절로 차진다. 지역의와 필수의가 모자란 것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배가 불러서인지도 모른다. 2000년 무렵 이후로 변호사 수가 2배 혹은 4배로 늘 때 의사 수는 하나도 늘지 않았다. 대폭 늘려야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단 매년 2000명씩 5년간 늘려놓고 보자’는 건 수긍하기 힘들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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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강대국들이 불장난하는 시대로 돌아가선 안된다

    국제 관계의 대전환을 이룬 것은 우드로 윌슨이다. 윌슨 이전만 해도 약소국은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 희생돼도 상관없는 장기판의 졸이었다. 이런 상황이 비난을 받기는커녕 칭송을 받았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905년 러일전쟁을 끝내는 포츠머스 조약을 중재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이 조약의 제1조가 조선에서 일본의 우월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루스벨트를 탓해봐야 소용없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문제였다. 당시의 평화란 다른 모든 걸 제쳐두고 강대국끼리 전쟁을 안 하는 상태를 의미했다. 윌슨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승전한 후 국제 관계를 재편하면서 강대국 간의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대신에 민족자결(national self-determination)과 집단안보(collective security)를 이념으로 삼았다. 세력균형은 강대국의 약소국 나눠 먹기에 불과하고 기껏해야 일시적인 평화만 보장할 뿐이었다. 윌슨은 약소국의 자결을 보장하고 그 위에서 강대국들이 영구적인 평화를 모색하는 집단안보를 추구했다. 그것은 무기의 현대화로 대량살상이 가능해진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약소국들은 이상주의자 윌슨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집단안보의 모색은 약소국들에 독립의 길을 열어줬다. 우리나라도 뒤늦은 수혜자다. 그러나 영구적인 평화는 너무 원대한 꿈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전후 처리 실패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고,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나자마자 냉전(冷戰)으로 이어졌다. 냉전의 실질적 내용은 한국전쟁에서 우크라이나전쟁까지 이어지는 약소국에서의 열전(熱戰)이었다. 그나마 열전이 냉전의 껍질을 깨고 나와 대전(大戰)으로 비화하지 않은 건 핵무기 같은 대량살상 무기에 의한 공멸의 위기감 속에서 최소한의 집단안보가 유지됐기 때문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승전국인 미국 영국 소련 중국 등 ‘4개 경찰국(Four Policemen)’에 의한 집단안보를 구상했다. 이것이 프랑스를 포함해 유엔 상임이사국으로 이어졌다. 유엔 상임이사회는 거부권의 족쇄에 잡혀 기능하지 못했다. 거부권의 족쇄를 풀려면 상임이사국들이 가치를 공유해야 하나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는 대화가 어려웠다. 다만 상임이사국에만 핵 보유를 인정한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집단안보에 실효적인 최소한의 구속복(拘束服·straitjacket)으로 남아 있다. 재선에 도전한 도널드 트럼프가 북핵을 사실상 인정하고 대북 지원의 대가로 핵 동결-축소-폐기를 유도하려 한다. 핵 보유국이 자발적으로 비보유국이 된 적이 없어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더 심각한 것은 트럼프가 북핵 용인을 핵 억지력 제공 비용과 결부시키는 상황이다. 물론 한국과 일본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더 이상 미국의 피와 돈만으로는 평화를 지킬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의 핵 억지력 실행에 대한 의구심이 항존(恒存)하는 상황에서 억지력의 대가가 지나치면 차라리 자체 억지력을 갖는 것이 낫다. 북한과 같은 불량국가가 아니라 NPT를 모범적으로 준수해온 한일이 핵무기를 보유한다면 집단안보의 최소한의 구속복이 완전히 풀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트럼프의 불장난을 막으려면 핵무기를 가질 수 있음에도 갖지 않은 나라들이 언제라도 핵무기를 개발할 준비가 돼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한일만이 아니라 트럼프가 탈퇴로 협박하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NPT는 어느 나라보다도 미국 러시아 중국에 핵 보유의 특권을 부여한 체제인데도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의 핵 개발을 제지하기는커녕 방치하고 이제는 노골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특권을 부여받은 나라로서 무책임하기 짝이 없을 뿐 아니라 스스로의 이익에도 반한다. 다만 두 나라가 한 어리석은 짓을 깨우쳐주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에 가까운 곳에 핵무기를 재배치해야 할 때 미국이 안이한 판단으로 하지 않았고 결국 북핵의 현실화로 이어졌다. 핵 강대국들이 집단안보를 위한 최소한의 의무라도 이행하도록 하려면 핵 비보유국들이 더 강하게 나갈 필요가 있다. 자체 핵무장 능력도 갖추지 않고 핵무기 재배치도 거부하는 한가한 자세로는 국가의 안위도, 세계의 안위도 지키지 못한다. NPT를 모범적으로 준수해온 나라들이 NPT를 넘어설 각오까지 해야 NPT가 가까스로 지켜질 수 있는 시대가 됐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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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검사 윤석열과 左동훈 右복현의 ‘수사 농단’

    일본의 검찰 신뢰도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일본 검사는 기소한 사건이 무죄가 날까 전전긍긍이다. 무죄가 나면 옷 벗을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죄를 다루는 특수부 검사일수록 사건마다 목숨을 거는(一生懸命) 자세로 임한다. 그래서 기소가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없지는 않지만 억울한 피의자가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우리나라 검사는 기소해서 무죄가 나도 ‘아니면 말고’다. 특수부일수록 더하다. 1987년 민주화를 전후해 검찰의 특수부가 거악(巨惡)과 싸우던 멋진 시절이 있었다. 당시 재벌 수사는 뇌물이나 불법 정치자금을 찾지 못하면 제대로 된 수사로 봐주지 않았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박영수 대검 중수부장 때부터 재벌 개혁을 내걸고 배임을 전면에 부각시켰다. 서양에선 배임을 형사 범죄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그런 식으로 기업을 털면 안 걸릴 기업이 없다. 중수부가 졸렬해졌고 그때부터 폐지론이 제기돼 한참 후이긴 하지만 폐지되기에 이른다. 윤석열 한동훈 두 사람은 박영수 밑에서 수사를 배웠고 이복현 또한 그들 밑에서 배웠다. 중수부 폐지 이후의 특수 수사는 ‘외과수술식 수사’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검찰주의자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윤석열과 좌(左)동훈 우(右)복현 체제에서는 저인망식으로 혐의가 걸릴 때까지 수사하고, 걸 수 있는 혐의는 모조리 기소하는 방식이 주(主)가 됐다. 윤석열 검찰총장 밑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사건 기소를 강행한 것은 기업 회계를 잘 안다는 이복현 부장검사였다. 그 덕분에 금감원장이 됐으나 1심 선고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19개 혐의는 모두 무죄가 됐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밑에서 사법농단 수사팀장을 맡은 건 한동훈 3차장검사였다. 법치에 능통해 사법농단 수사를 맡고 법무부 장관이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구속까지 시킨 양승태 대법원장의 47개 혐의는 모두 무죄가 됐다. 두 수사를 총괄한 사람은 대통령이 됐다. 좌천감인 수사를 한 검사들이 바로 그 수사로 승승장구한 셈이다. 삼성 합병 무죄는 단지 그 사건의 무죄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유의 핵심인 뇌물죄의 토대를 무너뜨린다. 삼성이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합병을 부당한 방식으로 추진하면서 박 대통령을 위해 최순실의 딸 정유라와 조카 장시호를 금전적으로 지원했다는 것이 뇌물죄 혐의의 대강이다. 뇌물죄를 인정한 대법원의 논리는 명시적 청탁은 없었더라도 현안이 있는 기업과 권력자 사이에 금전이 오간 이상 묵시적 청탁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무리한 논리이지만 설혹 그 논리를 인정한다고 해도 삼성 합병 무죄로 기업의 가장 중요한 현안 자체가 흐지부지됐다. 윤석열-한동훈 조(組)의 수사가 최소한의 절도마저 잃고 남용 가까이 치달은 것이 사법 농단 수사다. 이탄희 판사가 법원행정처가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와해를 시도하고 판사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주장으로 불을 붙이고 검찰이 받아쓰기하듯 기소했으나 법원의 무죄 판결에서 보듯 사소한 시빗거리였을 뿐이다. 윤석열-한동훈 조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개입 등 재판 관여까지 새로 엮어서 양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 몰이에 들어갔었다. 그들은 박영수와 함께 삼성 현대차 SK 등 힘 있는 재벌 총수란 총수는 다 잡아봤고 대통령까지 잡아봤다. 못 잡아본 사람이 하나 있다면 대법원장이었다. 법원은 늘 검찰에게는 갑이었다. 대법원장마저 잡아서 모든 권력이 검찰 아래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아니고서는 그 수사를 이해할 수 없다. 검찰이 권력에서 독립해 수사하게 됐으나 검찰 내부의 수사 기강이 무너지면 그것은 검찰공화국으로 통하는 길이 될 수도 있음이 분명해졌다. 검사가 대통령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검사가 뒤늦게 무죄가 된 사건으로 대통령도 되고 법무부 장관도 되고 금감원장도 되고 법무부 장관을 토대로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도 되는 세상이 올 줄은 몰랐다. 우리가 아직 못 해봤지만 꼭 해봐야 할 수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검찰의 수사 농단 수사다. 손준성과 김웅의 고발 사주 시도는 빙산의 자그만 일각일 뿐이다. 저인망으로 샅샅이 뒤지면 농단이 국정에만 있고 사법에만 있었겠나. 수사 농단은 그보다 더했는지 덜했는지도 한 번쯤 확인해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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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김건희 못마땅하지만 나라가 친북 인사에 놀아나서야

    김건희 여사를 함정 취재한 사람은 최재영 목사가 아니라 그냥 최 씨라고 부르겠다. 개신교에서 목사라고 부르려면 최소한 어느 교단(총회) 어느 노회 소속인지가 나와야 한다. 그는 2014년 통일뉴스라는 인터넷 매체에 방북기를 연재하면서 이력에 안양대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나왔다고 썼다. 안양대 신학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 총회 신학교다. 그렇다면 대신 총회 아래 어느 노회에 속한 목사가 돼야 하는데 그러지는 않은 것 같다. 그는 자신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해외총회 남가주노회 소속 목사라고 밝혔다. 대한예수교장로회는 통합과 합동이 양대 산맥이다. 통합과 합동은 각각 총회의 이름이다. 총회 안에 총회가 있을 수 없으므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해외총회는 어색하다. 현재 합동 총회에는 미국에 동부노회 서부노회 등 2개 노회밖에 없다. 그가 밝힌 소속은 우리가 흔히 아는 합동과는 관련이 없다. 그가 201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영광의빛교회(The Light of Glory Church)의 2대 담임목사로 취임했다는 기사가 당시 현지 한인 매체에 일제히 나왔다. 그것 말고는 그 교회에 관한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 교회에 관한 영상이나 사진조차도 인터넷에 남아 있는 게 없다. 현재 구글 지도로 교회를 찾아보면 폐업이라고 돼 있다. 이상한 교회다. 그의 나이가 올해 61세인 걸로 봐서 또래들처럼 학교를 갔다면 안양대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다닌 것은 1980년대일 것이다. 이후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에서 교육철학을 공부했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그러고는 1995년 미국으로 떠났다고 하니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는 본격적인 목회를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미국에 간 지 3년 만에 1998년 ‘NK VISION 2020’이라는 통일운동 단체를 만들었다. NK는 뉴코리아(New Korea)의 약자다. 사우스코리아도 노스코리아도 아닌 뉴코리아를 내세우고 있지만 친북적인 단체다. 이 단체가 얼마나 큰지 모르겠으나 그 산하에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 동북아종교위원회, 남북동반성장위원회, 오작교포럼 등 이름도 어마어마한 기구가 4개나 있다. 그는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장 자격으로 2014년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의 봉수교회와 함께 대표적 대외 선전용 교회인 칠골교회에서 설교도 하고 북한이 가정교회라고 주장하는 곳도 방문했다. 그 뒤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고 지역 교인 10여 명이 집에서 예배를 보는 가정교회가 무려 530곳이나 된다고 선전하고 다닌다. 전형적인 친북 인사의 길을 가고 있다. 최 씨가 김 여사 문제로 여권의 분열이 심화되는 것을 틈타 그제 기자회견을 통해 최고권력자에 대한 몰래카메라 취재의 당위성을 내세웠다. 그러나 최 씨가 한 것은 단순한 몰카 취재가 아니라 함정 취재다. 몰카 취재는 평소와 다름없이 전개되는 상황 속에 취재하는 사람이 카메라를 숨기고 끼어들 뿐이다. 함정 취재는 취재하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미끼를 던지면서 상황을 조성한다. 최 씨의 경우는 김 여사에게 300만 원짜리 디올 백이라는 미끼를 들고 가서 상황을 만들었다. 전문적인 스파이처럼 손목 몰카 시계까지 차고서 그렇게 했다. 길바닥에 돈뭉치를 일부러 놓아두고 길 가는 사람들의 반응을 몰카로 찍는다고 해보자. 길에서 주운 돈뭉치라고 슬쩍 하는 것은 단순히 비양심적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실물 습득죄라는 범죄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런 반응으로 사람을 정죄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을 일부러 유혹의 함정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목사라면 더구나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성경에서 마귀가 예수를 상대로 빵과 능력과 권력을 차례로 미끼로 던지며 한 시험이 바로 그런 짓이다. 물론 우리가 냉철해지려고 해도 몰카 속에 비친 모습은 마음속에 남기 마련이다. 누군가 돈뭉치를 주워 경찰서에 갖다 주지 않고 슬쩍 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를 전과 같이 여기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도 그런 유혹에 빠질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렇다. 그래서 함정 취재는 하면 안 되고 용납하는 것으로 비치게 해서도 안 된다. 김 여사가 디올 백을 즉각 돌려주지 않고 받은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균형감의 회복을 위해 노력할 때다. 김 여사가 못마땅하지만 나라가 친북 인사의 공작에 놀아나서야 되겠는가.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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