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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강대국들이 불장난하는 시대로 돌아가선 안된다국제 관계의 대전환을 이룬 것은 우드로 윌슨이다. 윌슨 이전만 해도 약소국은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 희생돼도 상관없는 장기판의 졸이었다. 이런 상황이 비난을 받기는커녕 칭송을 받았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905년 러일전쟁을 끝내는 포츠머스 조약을 중재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이 조약의 제1조가 조선에서 일본의 우월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루스벨트를 탓해봐야 소용없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문제였다. 당시의 평화란 다른 모든 걸 제쳐두고 강대국끼리 전쟁을 안 하는 상태를 의미했다. 윌슨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승전한 후 국제 관계를 재편하면서 강대국 간의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대신에 민족자결(national self-determination)과 집단안보(collective security)를 이념으로 삼았다. 세력균형은 강대국의 약소국 나눠 먹기에 불과하고 기껏해야 일시적인 평화만 보장할 뿐이었다. 윌슨은 약소국의 자결을 보장하고 그 위에서 강대국들이 영구적인 평화를 모색하는 집단안보를 추구했다. 그것은 무기의 현대화로 대량살상이 가능해진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약소국들은 이상주의자 윌슨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집단안보의 모색은 약소국들에 독립의 길을 열어줬다. 우리나라도 뒤늦은 수혜자다. 그러나 영구적인 평화는 너무 원대한 꿈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전후 처리 실패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고,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나자마자 냉전(冷戰)으로 이어졌다. 냉전의 실질적 내용은 한국전쟁에서 우크라이나전쟁까지 이어지는 약소국에서의 열전(熱戰)이었다. 그나마 열전이 냉전의 껍질을 깨고 나와 대전(大戰)으로 비화하지 않은 건 핵무기 같은 대량살상 무기에 의한 공멸의 위기감 속에서 최소한의 집단안보가 유지됐기 때문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승전국인 미국 영국 소련 중국 등 ‘4개 경찰국(Four Policemen)’에 의한 집단안보를 구상했다. 이것이 프랑스를 포함해 유엔 상임이사국으로 이어졌다. 유엔 상임이사회는 거부권의 족쇄에 잡혀 기능하지 못했다. 거부권의 족쇄를 풀려면 상임이사국들이 가치를 공유해야 하나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는 대화가 어려웠다. 다만 상임이사국에만 핵 보유를 인정한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집단안보에 실효적인 최소한의 구속복(拘束服·straitjacket)으로 남아 있다. 재선에 도전한 도널드 트럼프가 북핵을 사실상 인정하고 대북 지원의 대가로 핵 동결-축소-폐기를 유도하려 한다. 핵 보유국이 자발적으로 비보유국이 된 적이 없어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더 심각한 것은 트럼프가 북핵 용인을 핵 억지력 제공 비용과 결부시키는 상황이다. 물론 한국과 일본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더 이상 미국의 피와 돈만으로는 평화를 지킬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의 핵 억지력 실행에 대한 의구심이 항존(恒存)하는 상황에서 억지력의 대가가 지나치면 차라리 자체 억지력을 갖는 것이 낫다. 북한과 같은 불량국가가 아니라 NPT를 모범적으로 준수해온 한일이 핵무기를 보유한다면 집단안보의 최소한의 구속복이 완전히 풀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트럼프의 불장난을 막으려면 핵무기를 가질 수 있음에도 갖지 않은 나라들이 언제라도 핵무기를 개발할 준비가 돼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한일만이 아니라 트럼프가 탈퇴로 협박하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NPT는 어느 나라보다도 미국 러시아 중국에 핵 보유의 특권을 부여한 체제인데도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의 핵 개발을 제지하기는커녕 방치하고 이제는 노골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특권을 부여받은 나라로서 무책임하기 짝이 없을 뿐 아니라 스스로의 이익에도 반한다. 다만 두 나라가 한 어리석은 짓을 깨우쳐주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에 가까운 곳에 핵무기를 재배치해야 할 때 미국이 안이한 판단으로 하지 않았고 결국 북핵의 현실화로 이어졌다. 핵 강대국들이 집단안보를 위한 최소한의 의무라도 이행하도록 하려면 핵 비보유국들이 더 강하게 나갈 필요가 있다. 자체 핵무장 능력도 갖추지 않고 핵무기 재배치도 거부하는 한가한 자세로는 국가의 안위도, 세계의 안위도 지키지 못한다. NPT를 모범적으로 준수해온 나라들이 NPT를 넘어설 각오까지 해야 NPT가 가까스로 지켜질 수 있는 시대가 됐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2024-02-20 23:51
[송평인 칼럼]검사 윤석열과 左동훈 右복현의 ‘수사 농단’일본의 검찰 신뢰도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일본 검사는 기소한 사건이 무죄가 날까 전전긍긍이다. 무죄가 나면 옷 벗을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죄를 다루는 특수부 검사일수록 사건마다 목숨을 거는(一生懸命) 자세로 임한다. 그래서 기소가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없지는 않지만 억울한 피의자가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우리나라 검사는 기소해서 무죄가 나도 ‘아니면 말고’다. 특수부일수록 더하다. 1987년 민주화를 전후해 검찰의 특수부가 거악(巨惡)과 싸우던 멋진 시절이 있었다. 당시 재벌 수사는 뇌물이나 불법 정치자금을 찾지 못하면 제대로 된 수사로 봐주지 않았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박영수 대검 중수부장 때부터 재벌 개혁을 내걸고 배임을 전면에 부각시켰다. 서양에선 배임을 형사 범죄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그런 식으로 기업을 털면 안 걸릴 기업이 없다. 중수부가 졸렬해졌고 그때부터 폐지론이 제기돼 한참 후이긴 하지만 폐지되기에 이른다. 윤석열 한동훈 두 사람은 박영수 밑에서 수사를 배웠고 이복현 또한 그들 밑에서 배웠다. 중수부 폐지 이후의 특수 수사는 ‘외과수술식 수사’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검찰주의자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윤석열과 좌(左)동훈 우(右)복현 체제에서는 저인망식으로 혐의가 걸릴 때까지 수사하고, 걸 수 있는 혐의는 모조리 기소하는 방식이 주(主)가 됐다. 윤석열 검찰총장 밑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사건 기소를 강행한 것은 기업 회계를 잘 안다는 이복현 부장검사였다. 그 덕분에 금감원장이 됐으나 1심 선고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19개 혐의는 모두 무죄가 됐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밑에서 사법농단 수사팀장을 맡은 건 한동훈 3차장검사였다. 법치에 능통해 사법농단 수사를 맡고 법무부 장관이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구속까지 시킨 양승태 대법원장의 47개 혐의는 모두 무죄가 됐다. 두 수사를 총괄한 사람은 대통령이 됐다. 좌천감인 수사를 한 검사들이 바로 그 수사로 승승장구한 셈이다. 삼성 합병 무죄는 단지 그 사건의 무죄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유의 핵심인 뇌물죄의 토대를 무너뜨린다. 삼성이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합병을 부당한 방식으로 추진하면서 박 대통령을 위해 최순실의 딸 정유라와 조카 장시호를 금전적으로 지원했다는 것이 뇌물죄 혐의의 대강이다. 뇌물죄를 인정한 대법원의 논리는 명시적 청탁은 없었더라도 현안이 있는 기업과 권력자 사이에 금전이 오간 이상 묵시적 청탁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무리한 논리이지만 설혹 그 논리를 인정한다고 해도 삼성 합병 무죄로 기업의 가장 중요한 현안 자체가 흐지부지됐다. 윤석열-한동훈 조(組)의 수사가 최소한의 절도마저 잃고 남용 가까이 치달은 것이 사법 농단 수사다. 이탄희 판사가 법원행정처가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와해를 시도하고 판사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주장으로 불을 붙이고 검찰이 받아쓰기하듯 기소했으나 법원의 무죄 판결에서 보듯 사소한 시빗거리였을 뿐이다. 윤석열-한동훈 조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개입 등 재판 관여까지 새로 엮어서 양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 몰이에 들어갔었다. 그들은 박영수와 함께 삼성 현대차 SK 등 힘 있는 재벌 총수란 총수는 다 잡아봤고 대통령까지 잡아봤다. 못 잡아본 사람이 하나 있다면 대법원장이었다. 법원은 늘 검찰에게는 갑이었다. 대법원장마저 잡아서 모든 권력이 검찰 아래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아니고서는 그 수사를 이해할 수 없다. 검찰이 권력에서 독립해 수사하게 됐으나 검찰 내부의 수사 기강이 무너지면 그것은 검찰공화국으로 통하는 길이 될 수도 있음이 분명해졌다. 검사가 대통령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검사가 뒤늦게 무죄가 된 사건으로 대통령도 되고 법무부 장관도 되고 금감원장도 되고 법무부 장관을 토대로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도 되는 세상이 올 줄은 몰랐다. 우리가 아직 못 해봤지만 꼭 해봐야 할 수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검찰의 수사 농단 수사다. 손준성과 김웅의 고발 사주 시도는 빙산의 자그만 일각일 뿐이다. 저인망으로 샅샅이 뒤지면 농단이 국정에만 있고 사법에만 있었겠나. 수사 농단은 그보다 더했는지 덜했는지도 한 번쯤 확인해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2024-02-06 23:51
[송평인 칼럼]김건희 못마땅하지만 나라가 친북 인사에 놀아나서야김건희 여사를 함정 취재한 사람은 최재영 목사가 아니라 그냥 최 씨라고 부르겠다. 개신교에서 목사라고 부르려면 최소한 어느 교단(총회) 어느 노회 소속인지가 나와야 한다. 그는 2014년 통일뉴스라는 인터넷 매체에 방북기를 연재하면서 이력에 안양대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나왔다고 썼다. 안양대 신학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 총회 신학교다. 그렇다면 대신 총회 아래 어느 노회에 속한 목사가 돼야 하는데 그러지는 않은 것 같다. 그는 자신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해외총회 남가주노회 소속 목사라고 밝혔다. 대한예수교장로회는 통합과 합동이 양대 산맥이다. 통합과 합동은 각각 총회의 이름이다. 총회 안에 총회가 있을 수 없으므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해외총회는 어색하다. 현재 합동 총회에는 미국에 동부노회 서부노회 등 2개 노회밖에 없다. 그가 밝힌 소속은 우리가 흔히 아는 합동과는 관련이 없다. 그가 201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영광의빛교회(The Light of Glory Church)의 2대 담임목사로 취임했다는 기사가 당시 현지 한인 매체에 일제히 나왔다. 그것 말고는 그 교회에 관한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 교회에 관한 영상이나 사진조차도 인터넷에 남아 있는 게 없다. 현재 구글 지도로 교회를 찾아보면 폐업이라고 돼 있다. 이상한 교회다. 그의 나이가 올해 61세인 걸로 봐서 또래들처럼 학교를 갔다면 안양대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다닌 것은 1980년대일 것이다. 이후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에서 교육철학을 공부했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그러고는 1995년 미국으로 떠났다고 하니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는 본격적인 목회를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미국에 간 지 3년 만에 1998년 ‘NK VISION 2020’이라는 통일운동 단체를 만들었다. NK는 뉴코리아(New Korea)의 약자다. 사우스코리아도 노스코리아도 아닌 뉴코리아를 내세우고 있지만 친북적인 단체다. 이 단체가 얼마나 큰지 모르겠으나 그 산하에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 동북아종교위원회, 남북동반성장위원회, 오작교포럼 등 이름도 어마어마한 기구가 4개나 있다. 그는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장 자격으로 2014년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의 봉수교회와 함께 대표적 대외 선전용 교회인 칠골교회에서 설교도 하고 북한이 가정교회라고 주장하는 곳도 방문했다. 그 뒤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고 지역 교인 10여 명이 집에서 예배를 보는 가정교회가 무려 530곳이나 된다고 선전하고 다닌다. 전형적인 친북 인사의 길을 가고 있다. 최 씨가 김 여사 문제로 여권의 분열이 심화되는 것을 틈타 그제 기자회견을 통해 최고권력자에 대한 몰래카메라 취재의 당위성을 내세웠다. 그러나 최 씨가 한 것은 단순한 몰카 취재가 아니라 함정 취재다. 몰카 취재는 평소와 다름없이 전개되는 상황 속에 취재하는 사람이 카메라를 숨기고 끼어들 뿐이다. 함정 취재는 취재하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미끼를 던지면서 상황을 조성한다. 최 씨의 경우는 김 여사에게 300만 원짜리 디올 백이라는 미끼를 들고 가서 상황을 만들었다. 전문적인 스파이처럼 손목 몰카 시계까지 차고서 그렇게 했다. 길바닥에 돈뭉치를 일부러 놓아두고 길 가는 사람들의 반응을 몰카로 찍는다고 해보자. 길에서 주운 돈뭉치라고 슬쩍 하는 것은 단순히 비양심적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실물 습득죄라는 범죄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런 반응으로 사람을 정죄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을 일부러 유혹의 함정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목사라면 더구나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성경에서 마귀가 예수를 상대로 빵과 능력과 권력을 차례로 미끼로 던지며 한 시험이 바로 그런 짓이다. 물론 우리가 냉철해지려고 해도 몰카 속에 비친 모습은 마음속에 남기 마련이다. 누군가 돈뭉치를 주워 경찰서에 갖다 주지 않고 슬쩍 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를 전과 같이 여기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도 그런 유혹에 빠질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렇다. 그래서 함정 취재는 하면 안 되고 용납하는 것으로 비치게 해서도 안 된다. 김 여사가 디올 백을 즉각 돌려주지 않고 받은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균형감의 회복을 위해 노력할 때다. 김 여사가 못마땅하지만 나라가 친북 인사의 공작에 놀아나서야 되겠는가.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2024-01-23 23:51
[횡설수설/송평인]젊은이 따라 어른까지 잘못 쓰는 지점이란 표현어제는 언론 보도에서까지 부적절하게 쓰인 ‘지점’이란 표현을 보게 됐다. 존 플럼 미 국방부 우주정책 담당 차관보가 북한의 정찰위성과 관련해 ‘그들의 전쟁 능력을 가능하게 하는 지점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진지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는 구절이다. ‘그들의 전쟁 능력을 가능하게 하는 지점이 있는지 여부’란 부분이 영어로는 ‘if there are things that enable their ability to do a war fight’로 돼 있다. 왜 ‘things’를 굳이 지점으로 번역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0일 경남도당 신년인사회를 마친 뒤 기자들이 현직 검사들의 총선 출마가 잇따르는 사태에 대해 묻자 “우려 지점은 우리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우려할 점’이라고 하면 될 것을 우려 지점이라고 해 어색했다. ▷지난해 말 방한한 피아니스트에 관한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다가 한 방송사 라디오 PD가 올린 영상을 보게 됐다. 지점이란 표현을 수차례 사용하는데 어느 것 하나 적절하지 않았다. ‘자유롭고 독창적인 그의 커리어가 가능했던 지점은 그가 전형적인 콩쿠르 출신의 피아니스트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의 지점은 이유라고 써야 한다. ‘30개의 곡(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의미)을 그냥 갖다 붙여놓은 것 같은 연주가 되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 그런 지점들을 상쇄시키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했다’의 지점은 그냥 점으로 쓰면 된다. ▷한 위원장은 51세다. 앞의 라디오 PD는 인터넷을 찾아보니 50세로 나와 있다. 지점(地點)은 글자 그대로는 땅의 한 점이다. 흔히 사고가 난 지점과 같은 말을 쓴다. 출발 지점, 도착 지점이라는 말도 쓴다. 사실 이런 말만 해도 ‘지’를 빼고 출발점, 도착점이라고 쓰면 된다. 그러나 거꾸로 언제부터인가 구체적인 장소가 아니라 포인트(point)할 만한 추상적인 것에 대해서까지 지점이란 표현을 마구 갖다붙이는 버릇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더니 이제는 젠체하는 50대들까지도 무반성적으로 그런 말을 쓰고 있다. ▷이제 상당수가 60대가 된 ‘86세대’들은 부분이란 표현을 유행처럼 사용했다. 지금도 그들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 같은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독일 헤겔 철학에서 전체와 부분의 동일성에 기초해 만들어진 표현이 국내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쓰이다가 1980년대 운동권을 통해 확산된 것이다. ‘그런 부분’은 ‘그런 점’ 혹은 ‘그런 측면’으로 해도 부족할 게 없고 오히려 더 적절하다. 요새 ‘지점’의 용례는 ‘부분’의 용례보다 훨씬 부적절해 보인다. 언어를 무반성적으로 쓰면 내가 말하지 않고 말이 말을 하게 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2024-01-18 23:48
[송평인 칼럼]한동훈의 지적 소양이 멋으로 끝나지 않으려면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재임 마지막 날 한 예비 고교생에게 미국 소설가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선물했다. 그는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 국회 인사청문회에 제출한 서면질의 답변서에서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으로 모비딕을 꼽았다. 모비딕을 최고로 꼽았다니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난 모비딕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 모비딕은 백과사전 같은 장황한 고래 설명 반, 고래 잡는 얘기 반이다. 그래서 모비딕을 읽을 때 고래 설명 부분은 건너뛰면서 읽지 않으면 잘 읽히지 않는다. 한 위원장이 그 책을 어느 나이에 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요새처럼 책 안 읽는 시대에 예비 교교생에게 아무런 설명 없이 모비딕 같은 책을 선물하는 게 선물받는 사람보다 선물하는 사람의 입장이 우선인 것 같은 느낌은 들었다. 한 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시절인 올 3월 유럽 출장을 가면서 손에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번역서를 들고 공항에 나타났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책을 내는 곽작가가 친한 후배다. 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그리스 원문과 영어 번역서를 참조하면서 읽었다. 그의 말인즉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한국 번역서든 영어 번역서든 그냥 읽는다고 읽히는 책이 아니다. 일단 고대 그리스와 주변 도시들의 지도가 머릿속에 그려져야 하고 각 도시들의 관계, 그 시대의 특수한 관행들이 이해돼야 읽힌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위원장의 독후감이 궁금하지만 그것까지는 알 수가 없다. ‘정치인’ 한동훈이 요새 트레이드마크처럼 쓰고 있는 말이 ‘동료 시민’이다. 미국 정치인들이 연설에서 흔히 쓰는 ‘마이 펠로 시티즌스(my fellow citizens)’를 직역한 것이다. 우리 말에는 이런 표현이 없다. 서구의 중세 도시와 관련해 ‘도시의 공기는 자유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농촌을 중심으로 주종(主從)관계가 지배하던 중세에 도시에서 처음 상인과 수공업자를 중심으로 동료 의식에 기초한 자유가 싹트기 시작했다. 그것이 자본주의를 일으키고 인문주의를 낳고 종교개혁을 낳고 시민혁명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런 역사로부터 행정구역상의 시민이 아닌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이란 뜻의 시민이란 말이 생겼다. 이 시민은 런던 시민, 파리 시민이기도 하면서 영국 시민, 프랑스 시민이기도 하고 심지어 세계 시민이기도 하다. 우리는 왕조의 백성, 즉 신민(臣民)에서 바로 민주국가의 국민으로 건너왔다. 우리에게도 3·1운동, 4·19시위 같은 게 있지만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국민으로서 그런 일을 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한국민이나 서울 시민은 자연스럽지만 한국 시민은 그렇지 않다. 시대를 앞서가는 멋은 처음에는 거슬리지만 점차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동료 시민’이란 말은 여전히 들을 때마다 귀에 거슬리지만 계속 뇌리에 남는 것도 사실이다. 그 말이 새로운 시대 정신의 구호가 되려면 한 위원장이 중앙당 위주에서 벗어나 아래로부터의 정당 정치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보수 정당에 부족한 것이 아래로부터 동료 의식에 의한 정치다. 그러나 아래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진보 정당에서 먼저 동료 시민적인 민주주의에 관심을 갖고 깨시민(깨어 있는 시민)을 외쳤지만 결국 개딸로 끝나가고 있다. 한 위원장이 아스팔트 보수와 유튜브 보수의 함정을 피하면서 보수 정당의 하부구조를 바꿔갈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 한 위원장은 모비딕에서 선장 에이허브보다는 1등 항해사 스타벅에 더 호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에이허브는 무모했고 스타벅은 신중했다(커피브랜드 스타벅스의 스타벅이 여기서 유래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고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 내 배에 태우지 않겠다’는 스타벅의 말을 좋아하는 구절로 꼽았다. 한 위원장이 ‘조선 제일검’으로 불리긴 했지만 옛 명(名)검사들처럼 끝까지 신중했는지 의문을 갖고 있다. 사법농단 수사는 유례를 찾기 힘든 무모한 수사였다. 스타벅은 신중했지만 막판에는 에이허브가 몰고온 집단 광기에 휩쓸려 모비딕을 잡는 데 누구보다 앞장섰다. 검찰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에이허브였고 한 위원장은 스타벅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정치에서는 그래선 안 된다. 에이허브의 무모한 통치를 끝장내는 스타벅이 돼야 보수 정당이란 배는 국민이라는 고래에 의한 침몰을 면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2024-01-09 23:51
고법 판사 로펌 직행도 취업 제한으로 막으면 된다 [횡설수설/송평인]한때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법관의 꽃’으로 불리었으나 지금은 고등법원 판사가 ‘법관의 꽃’ 비슷해진 모양이다. 법원 인사철마다 고법 판사의 대형 로펌행이 줄을 잇고 있다. 고법 판사 퇴직자는 2022년 13명, 2023년 15명이었고 올해도 벌써 서울고법에서만 10명 안팎의 판사가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종전에는 판사가 되면 지방법원 배석판사, 지방법원 단독판사, 고등법원 배석판사, 지방법원 부장판사 순으로 경력을 쌓았다. 지법 부장판사까지는 대부분 됐다. 고법 부장판사부터는 자리가 많지 않다.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하면 법원장이나 대법관을 바라볼 수도 있고 중도에 사직해도 전관(前官)으로서의 활용 가치가 높기 때문에 대형 로펌에서 모셔갔다. 과거에는 고법 부장판사의 로펌행이나 고법 부장판사가 못 된 지법 부장판사의 줄사표가 법원 인사철마다 주요 기사였다. ▷지금 고법 판사의 줄사표는 승진을 못 해서 그만두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과거 지법 부장판사의 줄사표와는 성격이 다르다. 지법과 고법 인사를 분리하는 이원화는 김명수 대법원에서 처음 시행된 것이 아니라 이미 2010년에 도입됐다. 이에 따라 2011년부터 지법 부장판사가 될 기수에서 매해 20여 명이 고법 판사로 선발됐다. 이때부터 6년간 고법 판사 선발이 고법 부장판사 조기 선발처럼 인식되는 특수한 시기가 있었다. 고법 판사 선발에 떨어진 판사들은 너무 이른 시기부터 근무 의욕을 잃게 됐다. 그런 이유도 있고 해서 2017년 김명수 대법원에서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를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주목할 것은 고법 부장판사가 더 이상 승진 자리가 아니게 된 다음에도 서울 수원 등 수도권 고법 판사 선발 경쟁률은 10 대 1을 넘고 지방 고법도 2 대 1 정도의 경쟁률은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법이 대등합의부로 운영되면서 고법 판사들의 업무량이 크게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과거와 같이 고법 부장판사의 권한을 누리고 법원장 보임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건 없어졌지만 법원 내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판사로 인정돼 중도에 사직해도 대형 로펌에서도 귀하게 모셔가는 자리가 됐기 때문이다. ▷고법 부장판사는 2015년부터 대형 로펌으로 직행할 수 없다. 고법 판사는 고법 부장판사와 위상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취업 제한이 없다. 고법 판사를 고법 배석판사라고 하지 않는 것은 고법 부장판사와 대등하게 합의부를 구성하기 때문이고 고법 판사는 시간이 지나면 대개 고법 부장판사가 된다. 억지로 고법 판사 시킨 게 아니다. 그렇다면 고법 부장판사에게 적용되는 취업 제한을 고법 판사로까지 확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2024-01-04 23:48
[횡설수설/송평인]‘국민 여러분’ 대신 ‘동료 시민 여러분’서양의 국가는 도시국가로 출발했다. 고대 그리스인은 같은 말을 사용했지만 그리스 국민이 아니라 아테네 시민이나 스파르타 시민이었을 뿐이다. 고대 로마는 도시국가 로마에서 시작해서 제국을 이뤘지만 사도 바울처럼 로마에 살지 않아도 로마시민권을 갖는 게 중요했다. 근대에 들어와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끼리 한 국가를 이루려 하면서 뒤늦게 민족국가(nation-state)가 등장했다. 서양인에게는 시민의 정체성이 먼저이고 국민의 정체성은 나중이다. ▷우리는 서양과 달리 일찍부터 민족끼리 왕조 국가를 이루고 살았다. 다만 우리는 왕의 신민(臣民·subject)에서 바로 국민(國民)으로 넘어왔다. 서양에서는 절대국가의 신민에서 민주국가의 국민으로 넘어오는 사이에 시민혁명이 존재한다. 영국 명예혁명,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혁명이 그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런 시민혁명이 없었다. 그래서 영미권에서 시티즌(citizen), 프랑스인이 부르주아(bourgois), 독일인이 뷔르거(Bürger)라고 말할 때의 시민 개념이 우리에게는 없다. ▷우리에게 시민은 행정단위의 구성원일 뿐이다. 서울시민이나 부산시민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한국 시민은 자연스럽지 않다. 그런 말을 써야 할 때가 있다면 국민이라고 쓴다. 미국 대통령은 연설할 때 ‘마이 펠로 시티즌스(my fellow citizens)’라고 부르며 시작한다. 미국 대통령의 연설문을 모은 유명한 책 이름이 ‘마이 펠로 시티즌스’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통령은 연설할 때 ‘국민 여러분’이라고 부르며 시작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26일 취임사에서 ‘동료 시민’이란 말을 여러 차례 썼다. ‘마이 펠로 시티즌스’의 직역이다. 어제도 기자들 앞에서 같은 말을 수차례 썼다. 그는 2022년 법무부 장관에 취임할 때만 해도 국민이라고 했다. 다만 그때도 ‘동료 공직자’란 말을 썼다. 얼마 전 법무부 장관에서 퇴임할 때 처음 ‘동료 시민’이란 말을 썼다. 이번 취임사에는 ‘국민의힘 동료’라는 표현도 나온다. 갑자기 쓴 게 아니라 숙고하면서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장은 ‘개딸 전체주의’에 대항해 싸우기 위한 용기와 헌신을 당부했다. 동료들끼리 형제애로 함께 꾸려 가는 게 민주주의다. 그렇기에 동료에게 헌신을 요구하고 용기를 요구할 수 있다. ‘동료 시민들이여, 국가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달라’는 케네디 모멘트와도 연결된다. 다만 언어는 사회의 것이다. ‘동료 시민’이 한 개인이 혼자 별나게 쓰는 말에서 벗어나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말이 될지는 의문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2023-12-27 23:51
[송평인 칼럼]1.5도‘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이미 2013년에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2도 이상 올라가면 회복 불가능한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봤다. 실제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보는 선은 4도 상승이다. 그러나 온난화로 2도 이상 올라가면 북극이 녹아 이산화탄소보다 30배나 강력한 온난화 효과를 지닌 메탄가스가 동토층에서 분출되기 때문에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노력은 더 이상 의미 없어지고 지구 온도는 계속 올라가 4도까지도 이르리라는 얘기다. 1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를 홀로세라고 한다. 인류는 홀로세에서 산업화 이전보다 3도 이상 높은 온도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홀로세를 넘어 빙하기라고 불리는 플라이스토세를 거쳐 지구와 소행성의 충돌로 공룡이 멸종한 이후부터 시작되는 플리오세로나 가야 홀로세의 산업화 이전보다 3도 이상 높은 기온이 나타난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부터는 2도가 아니라 1.5도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산화탄소 축적으로 인한 온난화 효과는 바로 다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 간격을 두고 단계적으로 나타난다. 지구 온도가 1.5도 높아졌다면 그때까지 누적된 이산화탄소의 양으로 2도까지 올라가는 것은 불가피하고 2도 이상이 되면 앞에서 언급한 메커니즘에 따라 4도까지 자동으로 오르기 때문에 1.5도 상승 전에 멈추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 온도는 2021년과 2022년에 이미 1.1도 높아졌다. 2030∼2035년 사이에 1.5도 상승에 도달하리라는 것이 대체적인 예상이다. 불과 몇 년 남지 않았다. 1.1도 상승 때까지도 이상 기후가 속속 나타나는데 4도 상승 때의 상황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나의 과학 지식으로는 1.5도라는 기준이 얼마나 근거가 있는지 알 수 없다. 2도 상승까지 올라가면 4도까지 상승하는 메커니즘이 정말 그런지도 알 수 없다. 다만 기준을 1.5도가 아니라 좀 더 높게 잡고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면 언젠가는 온난화를 되돌릴 수 없는 날이 올 수 있다는 건 설득력이 없지 않다. 게다가 온난화가 초래할 위기의 성격이 더 낫고 덜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생사의 문제라면 더 비관적인 전망에 맞춰 대책을 찾는 게 안전해 보인다. 온난화를 초래한 산업화는 탄소 기반 문명이다. 산업화로 인력(人力)이나 마력(馬力) 대신 증기력을 사용한 지 150년이 넘게 흘렀다. 그동안 인류는 탄소 기반 문명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익숙해져 버렸다. 석탄 석유는 연료로만 사용될 뿐 아니라 그로부터 뽑아낸 원료로 수많은 물건을 만든다. 우리나라는 플라스틱 빨대를 종이 빨대로 바꿔 쓰는 것 하나 못하고 결국 플라스틱 빨대로 돌아가고 말았다. 생활 방식의 근본적 전환이 요구되는 일이기 때문에 몇 년 뒤가 아니라 설혹 몇십 년 뒤라고 해도 많은 시간이 남은 건 아니다. 올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는 결의문에서 화석 연료의 ‘단계적 퇴출(phase-out)’ 대신에 화석 연료로부터 ‘멀어지는 전환(transitioning away)’이라는 용어를 채택했다. 2030∼2035년 사이에 1.5도 상승에 도달하리라는 예상에서 보면 안이한 인식의 표현이다. 어쨌든 화석 연료로부터 멀어지는 전환은 원자력으로 향하는(transitioning toward) 전환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태양력 풍력 조력 같은 신재생 에너지는 효율성이 화석 연료에 비해 크게 떨어지고 효율성이 높아지길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기는 환경론자라면 원자력 사용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데 찬성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최초로 핵무기를 개발한 오펜하이머의 말처럼 핵은 파괴자이면서 구원자인지 모른다. 실은 신화 속의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전해 줬다는 불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은 불을 사용하면서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지만 불은 주의 깊게 관리하지 않으면 재앙을 몰고 오기도 했다. 막바지에 이른 탄소 기반 문명에서 구원해 줄 것은 일단 태양도 바람도 조류도 아니고 핵이다. 이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없었다면 온난화에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다만 원자력은 불을 다룰 때보다 훨씬 더 세심한 주의와 철저한 관리를 요구한다. 그 때문에 여러 가지 불안이 초래되지만 문명은 진화할 때마다 더 큰 불안을 감수하고 극복하며 나아갔다고 본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2023-12-26 23:51
[송평인 칼럼]정당이 산수를 잘 못하면 벌어지는 일연동형 비례제는 초과의석이 가능하지 않으면 하지 말아야 한다. 2020년 총선 결과에 대입해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실제로는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과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실제로는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의 정당투표 득표율은 각각 38.8%와 33.8%다. 정의당(9.7%)과 국민의당(6.8%)까지 4개 정당만 최저 기준인 3%를 넘겼다. 지역구에서는 민주당 163석, 미통당 84석, 정의당 1석, 국민의당 0석을 얻었다. 연동형 비례제를 적용하려면 단순 비례제에서 얻을 수 있는 의석을 먼저 계산해야 한다. 민주당 129석, 미통당 108석, 정의당 36석, 국민의당 27석이 나온다. 이 결과에 가깝게 지역구 의석을 고려한 조정을 하는 게 연동형 비례제다. 민주당은 단순 비례제라면 얻을 수 있는 의석보다 34석을 더 얻었기 때문에 추가로 받을 의석은 없다. 미통당은 단순 비례제라면 얻을 수 있는 108석에 못 미치는 84석을 얻었기 때문에 모자란 24석을 받는다. 정의당과 국민의당도 같은 식으로 35석과 27석을 받는다. 그러면 의원 총수는 334명이 된다. 연동형 비례제의 마법은 초과의석에서 나온다. 본래 비례의석 47석에 민주당이 얻은 초과의석 수(34석)만큼이 더해져 81석이 다른 정당들로 배분되기 때문에 다른 정당들은 득표율만큼의 의석을 확보한다(단순화를 위해 무소속 5석을 빼고 계산했기 때문에 앞 문단의 계산으로는 81석에 5석을 더한 86석이 배분됐다). 2020년 총선은 실제로는 초과의석 없이 30석으로 준연동형을 실시했다. 결과는 민주당 183석, 미통당 103석, 정의당 6석, 국민의당 3석이다. 민주당은 연동형이라면 초과의석을 포함한 의원 총수(334석)의 과반에 못 미치는 163석에 그쳤을 것이지만 준연동형으로 의원 총수(300석)의 5분의 3이 넘는 183석을 얻었다. 미통당은 의석수로는 108석과 103석으로 비슷하지만 처지는 나빠졌다. 연동형 비례제를 기를 쓰고 막고 준연동형에서 먼저 위성정당을 만들었다가 압도적 제1당을 허용했다. 정의당과 국민의당은 연동형에서라면 36석과 27석을 얻었을 것이나 6석과 3석으로 쪼그라들었다. 연동형이 군소정당에 유리하지만, 준연동형에서 군소정당은 오히려 병립형 비례제에서만도 못한 결과를 얻었다. 병립형 비례제라면 지역구에서는 거대 양당을 찍고 정당투표에서는 소수당을 찍는 유권자가 나오지만 위성정당으로 인해 ‘분리 투표’가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위성정당만 없으면 준연동형은 작동할 것인가.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 초과의석은 지역구로만 나오고 미달의석은 채워주는 제도에서 위성정당을 막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준연동형에서는 위성정당을 막을 방법이 없다. 법으로 금지해도 법을 우회한 위성정당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난 총선에서는 미통당이 앞장선 위성정당으로 민주당이 재미를 봤지만 언제든지 제1당이 바뀌어 낭패를 볼 수 있다. 연동형 비례제를 위해서는 초과의석이 필요하지만 국민은 국회 의석 증가에 거부감이 강하다. 그래서 ‘의원 대우와 권한 줄이기’부터 거론하지 않는 연동형 비례제 주장은 하나 마나 한 소리다. 현재 의원 총수를 유지한 상태에서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270명 정도를 의석 배분의 기준으로 삼고 지역구를 220석으로 줄여 비례대표의 여지를 80석 정도 둔다면 300석을 상한으로 한 연동형 비례제가 가능하다. 초과의석이 많이 나오지 않으면 오히려 의원 총수가 줄어 국민에겐 좋은 일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런 방식은 거론하지도 않는다. 당장 연동형 비례제를 실시할 수 없다면 병립형 비례제로 돌아가야 한다. 다만 병립형 비례제도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권역별 중대선거구제의 활용이다. 각 정당이 권역별로 여러 명의 비례대표 후보를 낸 뒤 후보들이 득표한 순으로 정당 득표율에 따라 할당된 수만큼 당선시키는 것이다. 유권자는 명단은 결정하지 못하고 순위만 결정할 뿐이지만 그래도 정당은 유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병립형 비례제의 민주성을 점차 강화하는 바탕 위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어 비례의석을 80석 정도로 확대한다면 비례제의 이상에 보다 근접한 연동형으로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모색할 기회가 올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2023-12-12 23:51
[횡설수설/송평인]‘유럽 흑사병보다 더 심각할 수 있는 한국 저출산’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로스 다우섯은 2일 ‘한국 소멸하나’라는 도발적 제목의 칼럼에서 “흑사병 창궐 이후 인구가 급감했던 14세기 중세 유럽 시기보다 더 빠르게 한국 인구가 감소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근거는 한국의 합계출산율인 0.7명을 적용하면 한 세대가 200명이라고 할 경우 다음 세대에는 70명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합계출산율은 15세 여성이 가임 기간이 끝나는 49세까지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숫자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올 10월 발표한 추계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이 0.7에서 반등하지 않고 유지될 경우 2040년 0∼14세 인구는 2020년의 절반가량으로 줄어든다. 0∼14세 인구가 200명이라고 한다면 20년 만에 100명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다우섯이 한 세대를 30년으로 봤다면 30년 만인 2050년에는 얼추 70명으로 줄어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흑사병은 1348년 이탈리아에 상륙해 4년 만에 유럽 총인구의 3분의 1을 사망케 했다. 파리 피렌체 런던 등 도시에서는 사망률이 50∼80%에 이르렀다. 전염병에 의한 단기간 급속한 인구 감소이긴 하지만 당시는 전염병 없이도 사망률이 높아 장기간 인구 회복이 쉽지 않았다는 점에서 낮은 출산율에 의한 장기간 감소와 비교하는 것이 꼭 어색한 것만은 아니다. 다만 한국의 총인구는 합계출산율 0.7이 유지되더라도 고령 인구로 인해 2040년에 2020년보다 5% 정도 감소한다는 사실은 기억해둬야 한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8년째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합계출산율이 1을 밑도는 유일한 나라로서 꼴찌에서 두 번째인 나라와 압도적 차이로 꼴찌다. 합계출산율이 1을 밑도는 상황도 5년째 계속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 중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나라가 겪는 기록적인 저출산이 이제 전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음을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가 뉴욕타임스 칼럼일 뿐이다. ▷한국은 자원이 부족해 가공 무역을 통한 수출밖에는 먹고살 길이 없다. 그래서 우수한 인력을 키웠다. 인력을 키우는 데는 돈이 든다. 내부 경쟁은 점차 심해져 공교육으로는 따라잡지 못하고 사교육으로만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됐다.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비혼(非婚) 출산에 호의적이지 않은 문화 때문에 기본적으로 출산율이 떨어지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이 더 떨어지는 것은 사교육비 때문이다. 다우섯도 그 점을 지적했다. 성공한 그 이유 때문에 실패한다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공식을 피해 가야 진짜 성공한 나라가 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2023-12-03 23:48
[송평인 칼럼]‘여의도 사투리’ 대신 표준어 되찾는 게 정치 혁신윤석열 대통령의 정치는 지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를 뽑는 데서부터 길을 잘못 들어섰다. 선거를 앞두고 규칙을 바꿨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하려는 것과 똑같은 짓을 했다. 규칙은 일반 유권자의 의사를 30% 반영해온 데서 당원들의 의사를 100% 반영하는 것으로 바꿨다. 당원 중심에서 유권자 중심의 포괄 정당으로 가는 추세에서 보면 정체도 아니고 오히려 퇴행이었다. 대통령실은 출산율 제고를 위한 의견 표명에 불과한 것을 트집 잡아 당 대표 출마 의지를 밝힌 나경원 전 의원을 공격해 주저앉혔다. 나 전 의원이 반윤(反尹)도 아니지만 친윤(親尹)도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대통령실은 김기현 의원이 윤심(尹心) 타령을 할 때는 잠자코 있다가 안철수 의원이 윤안(尹安)연대를 거론하자 윤심을 선거에 이용하고 있다고 득달같이 비난하고 나왔다. 윤 대통령은 당 대표로 상징되는 중앙당 체제를 허무는 것으로 정치 혁신의 시동을 걸었어야 한다. 그랬다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낡은 것으로 보일 만큼 차별성을 갖게 됐을 것이다. 당장 당 대표 자리까지 없애지는 못해도 당 대표 선출에서 중립을 지켜서 당 대표를 통한 공천권 행사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과거 어느 대통령보다도 더 노골적으로, 더 집요하게 당 대표 선거에 개입했다. 국민의힘은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로 내년 총선에 불똥이 떨어지자 인요한 씨를 중심으로 혁신위원회를 꾸렸다. 혁신위의 제안으로 이준석 전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의 징계에 대한 사면이 이뤄졌다. 그들이 무슨 이유로 징계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당의 진정한 대표는 대통령이다. 대통령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만으로도 그들은 징계감이다. 물론 같은 당에 있으면서도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이 자기 당이 후보로 내세워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에 대한 존중을 바탕에 두고 한 것인지 아닌지는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정당인은 언론인이 논평하듯이 대통령을 비판할 수 없다. 한두 번은 몰라도 계속 그렇게 하려면 당을 나가야 한다. 정당의 생명은 기율(紀律)이다. 국민의힘의 기율은 이 전 대표의 응석을 받아주면서 무너졌다. 이 전 대표에 대한 사면은 통합이 아니라 혼란일 뿐이다. 그는 사면이 아니라 제명을 했어야 한다. 이 전 대표의 탈당으로 인한 당장의 손해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내년 총선도 지난 대선처럼 사생결단할 선거라고 여긴다. 그러나 더 비호감인 정당을 찍지 못해 비호감인 정당을 찍는 선거는 끝내야 한다. 이준석 신당이든 비명(비이재명) 신당이든 또 다른 신당이든 생겨서 총선에서만큼은 양당 투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내년 총선이 사생결단할 선거인지도 의문이다. 코로나 방역 때 치러진 지난 총선처럼 어느 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기는 어려운 판이다. 게다가 국회선진화법하에서는 과반 의석만으로는 입법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들 대통령이 거부권을 갖고 있는 마당에 걱정도 태산이다. 선거 때마다 선거를 사생결단으로 보는 사람들 때문에 정치 혁신이 지체되고 있다. 인요한 혁신위는 영남 중진 의원들의 험지 출마를 거론하고 있다. 희생적인 험지 출마가 선거에 도움을 주는 건 틀림없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래로부터의 공천’이라는 정당민주주의 원칙의 관철이다. 아래로부터의 공천은 현역에게 유리하고 신참에게 불리하다. 그러나 현역에게 유리하다는 이유로 언제까지나 미뤄둘 수는 없다. 무언가를 언젠가 시작해야 한다면 그 언젠가는 항상 지금이 최선이다. 전략 공천도 아래로부터의 공천에 합치해서 이뤄져야 한다. 억지스러운 혁신은 오래가지 못한다. 혁신도 순리를 따라야 한다. 윤 대통령은 정치권 밖에서 와서 바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그에게 정치적 소명이 있다면 늦은 나이에 ‘여의도 사투리’를 배우는 게 아니라 정치의 표준어를 되찾는 것이다. 여의도 사투리의 화법에 따라 김기현 대표를 뽑아놓았더니 잘됐던가. 정자정야(政者正也), 정치는 바른 것이다. 바르면 민심(民心)이 모인다. 오늘날의 여의도는 정치의 표준어를 잊어버린 지 오래다. 윤 대통령부터 잘하지도 못하는 정치의 잔기술을 부리려 하지 말고 크고 바른 표준이 되는 걸 행하려 노력하시라.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2023-11-28 23:51
[횡설수설/송평인]아파트 고층서 초등학생이 던진 돌에 맞아 숨진 70대날벼락도 도시에서만 있을 수 있는 날벼락이다.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주민 김모 씨(78)가 다리가 불편한 아내를 부축하며 아파트 입구 계단을 오르던 중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주먹만 한 돌에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 돌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아이가 10층 높이에서 던진 것이었다. ▷2015년 경기 용인시 수지구에서 ‘캣맘 벽돌 사망 사건’이 일어났다. 한 아파트 옥상에서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투척한 벽돌에 아래에서 고양이 집을 지어주던 55세 여성과 29세 남성이 맞아 여성은 사망하고 남성은 두개골이 함몰되는 중상을 입었다. 벽돌을 던진 아이는 10세도 되지 않아 형사처벌은 물론이고 보호처분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2007년에는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중학생 둘이 장난삼아 벽돌을 투척했다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40대 남자가 사망했다. 중학생들은 14세 미만으로 형사처벌은 면했지만 보호처분을 받았다. 널리 보도된 사건이 이렇다는 것일 뿐이고 상해에 그친 사건이나 다행히 피해를 면한 사건까지 포함하면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과거 두 사건은 옥상에서 돌을 던졌다. 소방법에 따르면 아파트 옥상문은 화재 시 고층 가구 거주자들의 안전을 위해 개방하도록 돼 있다. 2015년 사건 이후 신축 아파트의 경우 평상시에는 잠가두고 화재 시에만 자동으로 여는 개폐 장치를 달도록 건축법으로 의무화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에는 이런 장치가 없는 곳도 허다하다. 경찰에서는 투척 사건만이 아니라 추락사나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잠가두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소방법과 충돌해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이번 사건은 복도식 아파트의 복도에서 돌을 던졌다. 복도식 아파트를 계단식 아파트로 다 바꾸기 전까지 대책이 난감하다. 계단식 아파트로 다 바꾼다 해도 창문을 열고 던지는 것까지 막을 방도는 없다. 그러나 아이들이 무심코 던지는 돌에 누군가 맞아 죽는 황망한 일만은 없어야 한다. 유족은 누굴 탓하기도 어려운 고통에 시달리고, 아이나 부모에게는 평생 마음의 죄책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도시의 속도가 초래하는 위험에 대해서는 어릴 때부터 도로 무단횡단을 삼가고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자동차에 주의하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릴 정도로 아파트가 많은 나라임에도 도시의 높이가 초래하는 위험에 대해서는 그만큼 경각심을 갖고 있지 않다. 건물에서의 추락이나 투척의 위험에 대한 교육을 어릴 때부터 강화해야 한다. 날벼락을 피하려고 수시로 하늘을 쳐다보고 다녀야 하는 나라가 돼서는 곤란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2023-11-19 23:48
[송평인 칼럼]일상의 역사인식을 식민화하려는 사람들광복회장은 2011년 박유철 회장 취임 이래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맡고 있다. 독립운동가인 과거 광복회장들은 국민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독립운동가 후손인 근래 광복회장들이 오히려 더 국민을 가르치려 한다. 박 회장 때도 조짐이 보이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김원웅 회장 때에 와서 심각해졌다. 현 이종찬 회장은 일제하에서도 나라를 잃은 적이 없다고 한다. 국민 모두가 나라 잃은 설움을 말해 왔는데 혼자 나라를 잃은 적이 없다고 한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에 따르면 근대 국가의 최소한의 요건은 군대 경찰 같은 물리력의 독점이다. 굳이 베버를 거론하지 않아도 억지만 부릴 생각이 없으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가 억지를 부리는 것은 실은 ‘1948년 건국론’을 비판하고 싶어서다. 그러면서 뒷문으로는 ‘1919년 건국론’을 끌어들여 ‘문재인 시즌 2’를 이어가고 있다. 어느 나라가 식민지 한가운데서 있을 때 건국됐다는 주장은 액면으로도 논리모순적이어서 그 반박은 독자들의 타고난 이성에 맡기겠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대한민국 30년에 정부 수립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도 처음에는 이념적이 돼서 그런 말을 했다. 그러나 점차 안 하기 시작했다. 현실과 맞지 않아서다. 억지는 한동안은 떠받치고 있을 수 있지만 계속해서 떠받치기는 어렵다. 국회는 1948년 8월 15일을 독립기념일로 정한 법을 제정했고 이승만 정부는 이듬해 제1회 독립기념일을 기념했다. 독립기념일도 어색한 말이지만 그래도 현실에 가까워졌다. 후대의 대통령들은 건국 시점을 1948년으로 봤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도 억지를 부리지 않을 때는 그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제2건국’의 과욕을 부리다가도 1998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건국 50년’이란 표현을 썼다. 한국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본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3년과 2007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1948년 “민주공화국을 세웠다” “이 나라를 건설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건국이란 말의 자연스러운 의미에 따른 건국 시점은 1948년이다. 그러나 1919년에 건국됐다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있어 시비를 건다면 굳이 싸울 필요는 없다. 맞서 싸우다 보면 건국, 즉 ‘네이션 빌딩(nation-building)’에 담긴 진짜 중요한 의미를 잃어버릴 수 있다. 건국이 언제 시작됐건 우리는 온전한 네이션 빌딩을 향해 부단히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 정부 수립도 산업화도 민주화도 네이션 빌딩의 과정이었고, 당면한 과제인 양극화 극복과 지역 분열 극복도 네이션 빌딩의 과정이고, 멀리는 통일도 네이션 빌딩의 과정이다. 이것이 과거로 먹고살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나아가는 사람들의 건국관이다. 고려나 조선에는 개국 공신이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건국은 광복부터 우리 힘으로 이룬 게 아니다. 그래서 함석헌 선생은 “해방은 자기네가 투쟁한 결과로 되었다”는 자들은 “그림자도 없어져라”고 일갈했다. 해방은 선물처럼 주어졌다. 선물의 가치는 선물로 다시 얻은 나라를 얼마나 살 만하게 만들었느냐에 달렸다. 우리가 굳이 건국 공로자를 기린다면 해방이 자기네가 투쟁한 결과로 되었다는 사람이 아니라 누가 자유롭고 민주적인 질서의 토대를 놓았으며, 누가 민주주의가 가능한 경제적 기반을 닦았으며, 누가 실질적인 민주화를 이뤘으며, 앞으로 누가 양극화와 지역 분열을 극복하는 데 앞장서는지를 봐야 한다.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역사와는 다른 역사를 강요하는 일을 문재인 전 대통령이 했고 지금 이 회장이 하고 있다. 철학자 후설은 이런 현상을 ‘생활세계(Lebenswelt·everyday life)의 식민화(植民化)’라고 부르며 비판했다. 생활세계란 살면서 저절로 갖게 되는 앎의 총체다. 거기에는 역사인식도 포함된다. 우리나라에서 생활세계의 식민화가 가장 심각한 분야 중 하나가 한국 현대사다. 문 전 대통령의 ‘일제강점기 한가운데서의 건국론’이나 이 회장의 ‘일제강점기 때도 나라를 잃은 적이 없다’는 궤변은 한국 현대사 분야에서 생활세계의 식민화 시도가 얼마나 심각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2023-11-14 23:51
[횡설수설/송평인]이스라엘-하마스 하이브리드 전쟁 한 달이 빚은 딜레마“가자지구를 바다에 잠기게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전 총리가 한 말이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중동 국가에도 애물이었다. 이집트는 1967년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에 가자지구와 시나이반도를 뺏겼지만 1979년 이스라엘과의 평화조약에서 시나이반도만 찾고 가자지구는 놔뒀다. 요르단도 서안을 그렇게 내다 버렸다. ▷이슬람 급진주의의 뿌리는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에 있다. 헨리 키신저는 최근 저서 ‘리더십’에서 위대한 리더십을 보인 20세기 정치인 6명을 꼽았다. 그중 한 명이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체결한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다. 이스라엘과의 평화의 이면(裏面)은 무슬림형제단과의 전쟁이었다. 사다트는 무슬림형제단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사다트의 뜻을 이어갔다. ▷무슬림형제단에서 비롯된 급진주의가 이슬람 신정 국가 건설에 성공한 유일한 곳이 이란이다. 이란은 레바논의 내전 상황을 틈타 헤즈볼라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서는 하마스를 지원해 왔다. 이스라엘의 새로운 중동전은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내세운 이란과의 싸움이다. 그 대리전의 가장 잔혹한 판이 한 달 전에 벌어졌다. ▷하이브리드 전쟁이라는 말은 2006년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헤즈볼라 전투원은 게릴라이면서도 정규군이나 사용하는 첨단 무기를 사용했다. 주민들 사이에 섞여 활동하면서 주민들이 입는 피해를 이용하는 사이버 심리전을 폈다.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비슷하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아이언돔까지 뚫은 대량의 동시다발 미사일을 쏘는 한편 병원이나 학교 지하에 기지를 건설해 자신들이 공격을 당할 때는 주민도 피해를 입게 하고 그것을 선전전에 이용했다. ▷시간은 늘 과거보다 현재의 승리다. 한 달 전 이스라엘이 입은 피해는 잊혀지고 지금 팔레스타인인이 입는 피해만 부각되고 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인심(人心)은 그렇게 흘러간다. 전 지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실시간 연결되는 오늘날에는 힘이 있다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보복이 뜻대로 되기 어렵다. 이스라엘은 과거 중동전에서 마주하지 못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야세르 아라파트는 과거 테러 집단의 수장으로 악명 높았지만 결국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두 국가 건설에 나섰다. 아라파트가 세운 파타당의 노선만 따랐어도 가자지구 주민은 지금과 같은 곤경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파타당은 부패로 얼룩졌다고 기피되고, 가자지구 주민들이 하마스에 표를 던져 집권의 길을 열어준 결과는 가혹한 생사의 위기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2023-11-05 23:48
[송평인 칼럼]먼저 한 도발을 바로잡는 건 도발이 아니다계봉우는 이동휘와 함께 볼셰비키 노선을 따르는 한인사회당을 창당하고 활동하다가 소련에 정착했다.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로 강제이주 당한 후에는 그곳에서 한국어 학자와 한국 역사가로 행세했다. 그는 1952년 펴낸 ‘조선역사’에서 6·25전쟁을 “미 제국주의가 일으킨 침략 전쟁”으로 규정하면서 “미구(美寇)가 남선(南鮮)으로 붙어 북선(北鮮)까지 강점하기 위해 고금에 유례없는 비행(非行)을 범하고 있다”고 썼다. 계봉우의 유해가 문재인 정부 때 대통령 전용기로 옮겨져 국립현충원에 묻혔다. 김영삼 정부 때 독립운동 경력이 있는 공산주의자에게 대거 건국훈장을 줄 때 그도 독립장을 받았다. 서훈은 그저 서훈으로 끝나지 않았다. 서훈이 근거가 돼 현충원 안장으로 이어졌다. 크질오르다는 홍범도도 살다 죽은 곳이다. 홍범도 집 근처에는 계봉우 최계립 이인섭 등 왕년의 빨치산이 이웃하며 살았다. 그들이 다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물론 소련에 살다 보니 6·25전쟁을 미제의 침략 전쟁이라고 여겼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변명은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에 먹고살기 위해 연해주로 건너갔다가 졸지에 공산 혁명을 당해 소련 치하에 살게 된 사람들이나 할 수 있다. 왕년의 빨치산들은 ‘적화(赤化) 없는 독립’은 가능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고 여기고 소련을 택한 사람들이다. 최소한 그들은 그런 변명을 늘어놓을 자격이 없다. 물론 홍범도는 6·25전쟁 발발 전인 1943년 죽었다. 그러나 홍범도는 1939년 소련이 독일과 싸우게 되자 자신을 전선에 보내달라며 행정기관까지 찾아가 호소한 사람이다. 그가 죽었을 때 고려인 신문 ‘레닌기치’는 부고 기사에서 그를 소련 공산당의 충직한 당원이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가 살아서 6·25를 맞았다면 어떠했을까. 그런 사람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해놓고 생도들이 경례를 하고 다닌다. 독립군은 일본군에 쫓겨 러시아령 이만으로 들어갔다가 일부는 간도로 다시 돌아가고 일부는 자유시로 향했을 때부터 민족주의 계열과 공산주의 계열로 확연히 갈라졌다. 홍범도는 1919년부터 빨치산이 됐다고 나중에 밝혔지만 공산주의자였음이 외부로 분명히 드러난 건 1921년 자유시로 향할 때부터였다. 다만 그가 그저 한인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일부 한인 공산주의자에게만 주어진 소련 공산당원 자격을 부여받는 등의 자유시 사변 이후 행적은 소련 붕괴 후 소련 문서를 볼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홍범도에게는 윤보선이 대통령이고 박정희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주어졌다. 자유시로 향하기 전 돌아선 이범석조차 1971년 펴낸 회고록 ‘우등불’에서 “홍범도가 이르쿠츠크파 공산당원의 권유로 공산주의자가 됐지만 그 속에서 할 일도 없고 이름만 빌려준 셈이 돼 그 후 자유시 부근에서 방황하다가 병들어 불쌍하게 사망하고 말았다”고 쓸 정도로 잘못 알고 있던 시절 주어진 훈장이다. 홍범도는 자유시 사변 직후 간도 독립군을 갖다 바치는 데 앞장 선 공로로 레닌에게 포상까지 받는 등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냈다. 왕년의 한인 빨치산 중 상당수가 스탈린 치하에서 수감생활까지 하며 치른 교화 과정도 홍범도는 치르지 않았다. 민족을 사지로 내몬 강제이주에 대해 한마디 불평의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홍범도는 ‘방황하다가 병들어 불쌍하게 사망한 것’이 아니라 소련 공산당의 충직한 당원으로서 연금과 복지 특혜에 극장 수위까지 하면서 ‘넉넉히 살다가’(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 표현) 당시로서는 장수인 75세에 사망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육사에 홍범도 흉상을 설치하고 2021년 홍범도의 유해를 가져오면서 그의 건국훈장도 대통령장에서 대한민국장으로 올렸다. 육사에 흉상 따위를 설치하지 않고 훈장 등급을 그대로 뒀다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주제넘게 역사의 재조산하(再造山下)를 한다며 침묵의 균형을 깨고 먼저 도발을 감행한 것은 문 대통령이다. 홍범도의 유해를 가져올 때 공군기 6대가 호위하고 대통령이 늦은 밤 공항에서 직접 맞는 장면을 보면서 참으로 괴이한 기분이 들었다. 홍범도 흉상을 설치할 당시 딸의 친구인 육사 여생도로부터 전해들은 생도들의 ‘말 못 하는 분노’를 잊을 수 없다. 먼저 한 도발을 바로잡는 건 도발이 아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2023-10-31 23:51
[횡설수설/송평인]‘배니티 페어’에서 길을 잃은 남현희 선수단테는 ‘신곡’에서 인간의 7가지 죄악을 거론하는데 그중 하나가 허영(vanity)이다.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에 천성을 향해 가는 순례자가 허영이란 도시의 휘황찬란한 시장(fair)에 들어섰다가 인간의 탐심을 자극하는 물건들의 유혹에 시달리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배니티 페어라는 말이 나왔다. 19세기 영국 작가 윌리엄 새커리의 소설 제목이 되고 20세기에는 패션과 정치 등 상류사회의 관심거리를 다룬 미국 유명 잡지의 이름이 됐다. ▷전 국가대표 펜싱 선수 남현희 씨가 재벌 3세를 사칭한 사기극에 말려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야권에서는 김건희 여사의 측근이었던 김승희 전 의전비서관 딸의 학폭 의혹을 뒤엎으려고 검찰이 유명 연예인 이선균과 지드래곤의 마약 의혹을 흘렸다고 논란을 삼고 있지만 정작 요 며칠 사이 압도적 관심을 끈 건 남 씨와 전청조 씨의 결혼 발표 인터뷰 이후 터진 두 사람의 스토리다. ▷전 씨는 남 씨와의 첫 만남에 경호원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은행 앱(아마도 가짜 앱)을 열어 공인인증까지 해가며 은행 잔액으로 0이 몇 개인지 세기도 힘든 51조 원을 보여줬다. 롯데타워의 고급 레지던스 아파트 시그니엘에도 들어와 같이 살도록 했다. 한번은 전 씨가 인터뷰를 한다고 해서 같이 갔더니 기자(실은 기자 대행 아르바이트)가 “대한민국에서 자산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인가요”라고 물었다. 허영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속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남 씨는 전 씨와 만나면서 임신이 됐다. 실은 임신은 아니고 전 씨가 준 개봉된 임신 테스트기로 검사해 보니 두 줄(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것이다. 남 씨 자신이 확인차 구입해 검사한 임신 테스트기로는 한 줄이 나왔다. 전 씨가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한 사실을 언제 알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성전환 남성이 과연 여성을 임신을 시킬 수 있는지 의심이 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결혼하기로 직진한 이유가 무엇일까 묻게 된다. ▷남 씨는 국가대표 입소훈련 때 훈련소를 빠져나와 쌍꺼풀 수술을 했다가 징계를 받았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마음을 누가 뭐라 하겠는가. 이번 사건만 없었어도 작은 체구로도 뛰어난 펜싱 실력을 보여줬고 이혼해서도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그에게 박수를 보냈을 텐데 ‘허영의 시장’에 들어섰다가 희대의 사기꾼을 만난 듯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전 씨가 남 씨의 이름을 이용해 이미 많은 사기성 투자를 끌어들였다고 한다. 그래도 막판에 국민들이 SNS로 이런저런 제보를 해서 더 험한 꼴을 당할 뻔한 남 씨를 구한 셈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2023-10-27 23:51
[횡설수설/송평인]초등 3학년이 2학년에게 전치 9주 상해가 사랑의 매라니초등학교 3학년 여아가 2학년 여아를 도대체 어떻게 때리면 전치 9주의 상해가 나올 수 있을지 폭행 상황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안와골절은 돼야 전치 9주가 나온다. 화장실에서 주먹 리코더 등으로 때려서 얼굴이 피투성이가 됐다고 한다. 초등학교에서마저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막 유치원을 나온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는 부모의 걱정은 얼마나 클지 그것부터 걱정된다. ▷가해자 여아의 어머니는 딸의 폭행을 일종의 ‘사랑의 매’로 언급했다고 한다. 부모나 교사가 훈육 과정에서 자식이나 학생을 체벌하는 것을 과거 사랑의 매라고 부를 때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고작 초등학교 3학년이 2학년을 때리는 걸 사랑의 매라고 하는 게 제정신일까. 그 집안은 사랑의 매로 전치 9주가 되도록 때리기도 하는가. 전치 9주가 아니라 전치 0주라도 그렇게 부를 수 없다. 딸의 폭행으로 경황이 없었다는 사정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터무니없다. ▷가해자 여아의 어머니는 딸의 학교 출석이 정지된 날 SNS 프로필 사진을 당시 대통령 의전비서관이었던 남편 김승희 씨와 윤석열 대통령이 같이 있는 사진으로 바꿨다. 김 씨는 이벤트 대행회사 대표로 재직하던 중 김건희 여사와 어느 대학원 최고위 과정을 같이한 인연으로 김 여사를 보좌하다가 의전비서관까지 됐다. 딸의 학교 출석이 정지된 날 남편의 위세를 과시할 생각이 들었을 정도라면 웬만한 상황에서는 경황이 없고 할 사람도 아닌 듯하다. ▷대전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얼마 전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학부모가 SNS로 입장문을 냈는데 “아들 손이 친구 뺨에 맞았다”며 물리적 움직임을 설명하듯 썼다가 지탄을 받고 삭제했다. 자세히 읽어 보면 ‘같은 반 친구와 놀다가 손이 친구 뺨에 맞았다’고 쓴 것이긴 하다. 의도치 않은 일이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설혹 그렇더라도 용서를 구할 쪽은 ‘친구 뺨에 가 맞은 손’을 가진 아들이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는데도 아들의 반성을 요구한 교사를 끝까지 괴롭힌 모양이다. ▷세종의 한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교육부 사무관이 담임교사에게 자신의 아이는 ‘왕의 DNA를 가졌다’고 언급했다가 자신이 욕먹은 건 물론이고 직장까지 욕먹였다. ‘듣기 좋게 돌려 말해도 다 알아듣는다’는 그 다음 말로 충분했을 텐데 ‘왕의 DNA’를 내세웠다. 터무니없는 표현에 담긴 사고는 서로 통해서 ‘왕의 DNA’를 가진 아이가 만약 친구를 폭행하면 ‘사랑의 매’ 그 이상의 말도 나올 듯하다. 젊은 학부모 세대의 사고가 일부이긴 하겠지만 지독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이 되고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2023-10-22 23:48
[송평인 칼럼]복원된 광화문 월대와 현판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광화문 월대가 복원됐다. 월대 복원 권고는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문화재청장이던 2006년 문화재위원회에서 처음 나왔다. 광화문의 위용을 강조하며 복원을 권고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0년 광화문은 새로 복원되면서 충분히 위용을 갖췄다. 이번에 월대 복원으로 위용이 더해졌다고들 하지만 과도해진 느낌도 있다. 이런 느낌은 근거가 없지 않다. 조선 세종 당시 광화문 월대를 만들자는 제안이 처음 나왔을 때 그 이유는 관리들이 광화문 앞까지 말 타고 와서 내리는 모습이 무엄하고, 중국 사신을 맞이할 때 바로 문으로 들어오게 하는 게 무례하다는 것이다. 월대는 한편으로는 임금의 권위를 강화하고, 한편으로는 중국에 대한 사대(事大)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세종은 거부했다. 왕은 중국 사신이 오면 지금의 독립문 근처에 있던 모화루에 가서 직접 사신을 영접한 뒤 사신을 궁궐로 모셔 중국 황제의 칙서를 받았다. 입궐할 때 월대의 어도에서 사신이 앞장서고 왕이 뒤를 따른다. 세종은 ‘굳이 그렇게까지’ 생각했을지 모른다. 월대가 만들어진 건 흥선대원군 때로 조선이 망하기 고작 수십 년 전이다. 월대가 복원된 마당에 다시 어쩌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문화재청이 불러주는 걸 받아쓰는 식으로 월대를 미화하는 건 곤란하다. 광화문 월대가 임금과 백성이 소통하는 자리라는 건 근거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월대가 없던 시절 광화문 밖에서 행사가 열렸다는 기록은 간간이 있다. 월대가 만들어지면서 오히려 행사는 사라졌다. 감히 누가 어도 위에서 연희를 벌이겠는가. 월대가 중국과 일본에는 없는 한국 궁궐의 고유 양식이라는 건 기만이다. 월대는 본래 목조 건물에는 필수 구조물이다. 목조 건물은 바닥에 돌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짓기 때문에 기단까지 올라가는 계단 같은 구조물이 필요하다. 목조 전각(殿閣)에는 다 월대가 있다. 문도 창덕궁의 돈화문과 덕수궁의 대한문은 목조 문이어서 길지는 않더라도 짧은 월대는 필요했다. 그러나 경복궁의 광화문은 문루만 목조일 뿐 문을 감싸는 아랫부분은 석조다. 이런 곳엔 월대가 필요 없다. 숭례문 등 한양 도성의 문도 같은 구조여서 월대가 없다. 중국 자금성의 천안문도 월대가 없다. 천안문은 우리로 치면 도성 문이어서 그렇다고 하자. 그러나 그 안의 궁궐 문이라고 할 수 있는 단문과 오문에도 월대가 없다. 경복궁의 근정전에 해당하는 태화전의 입구인 태화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월대가 나타난다. 광화문 월대는 자랑스러운 고유 양식이 아니라 과도한 권위주의와 사대주의가 건축에까지 영향을 미쳐 빚은 과잉이다. 일제가 없애지 않았어도 근대화 과정에 우리 스스로 없앴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문화재청이 그리 똑똑하지 않다. 광화문 현판만 봐도 알 수 있다. 6·25전쟁 때 불탔다가 1969년 콘크리트로 복원된 광화문을 제대로 다시 복원하는 과정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도 교체한다는 결정이 2005년 유 청장 때 이뤄졌다. 문화재청은 유 청장 시절부터 박 전 대통령 글씨를 떼고 다른 글씨로 대체하는 데만 골몰해 정작 현판의 고증은 뒷전이었다. 이번에 내걸린 현판은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다. 박 전 대통령 때의 현판은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로 큰 틀에서는 비슷했다. 2010년 광화문 복원과 함께 내걸렸다가 이번에 교체된 현판은 터무니없게도 ‘흰색 바탕에 검은 글씨’였다. 일제강점기 광화문을 그린 채색화에도 나오는 검은 바탕을 무시했다가 당한 낭패다. 문화재청은 숭례문에 주변 도로를 없애 가면서 무리하게 성벽을 단 뒤 관리 능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공원화까지 했다가 문을 태워 먹은 일도 있다. 그것도 2008년 유 청장 때 일이다. 경복궁에는 광화문 월대보다 더 시급한 복원 과제가 많은데도 월대 복원이 우선시된 것은 경복궁-광화문-광화문광장을 연결시켜 업적으로 삼으려는 시도가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화문 앞 도로를 모조리 없애 전근대로 돌아가지 않는 한 광화문과 도로 사이에 월대를 끼워 넣는 건 공간적 모순만 증폭시킬 뿐이다. 월대로 차선이 휘면서 차량 정체가 심해지고 교통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횡단보도도 시야가 제한되는 위험한 곳에 설치돼 밤에는 아찔하다. 문화재 복원도 실사구시(實事求是)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2023-10-17 23:51
[횡설수설/송평인]대형 로펌 사건 회피로 대법원 ‘민폐’가 된 권영준 대법관대법관 한 명이 한 해 주심을 맡아 처리하는 사건이 지난해 평균 4038건이었다. 2000년대 후반 2000건대에 진입했고 2010년대는 대체로 3000건대였으나 지난해 4000건대로 올라섰다. 매주 77건의 사건을 처리하는 셈이다.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해도 매일 11건씩 처리해야 할 정도로 사건이 많기 때문에 상고법원 얘기도 나오고 대법관 증원 얘기도 나온다. ▷권영준 대법관은 7월 중순 취임 후 사건 59건의 주심을 회피했다. 회피는 재판관 본인이 이해관계에 얽혀 있다고 여기는 사건의 취급을 피하는 제도다. 권 대법관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때 대형 법무법인(로펌) 7곳이 맡은 사건 38건에 대해 법률의견서를 써주고 18억 원을 받았다. 권 대법관은 이 사실이 논란이 되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대법관이 되면 제가 관여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해도 관계를 맺은 로펌의 사건은 2년간 모두 회피 신청하겠다”고 약속했다. 2년으로 한정한 것은 이해충돌방지법에서 이해당사자로 간주되는 기간이 2년이기 때문이다. ▷59건은 대법관 한 명이 두 달간 처리하는 사건의 약 10%에 해당한다. 권 대법관이 약속을 지키려면 매년 350여 건씩, 2년간 700여 건을 회피해야 한다. 물론 본인이 회피하는 사건의 수만큼 다른 사건을 넘겨받기 때문에 처리하는 사건 수는 차이가 없다. 다만 대형 로펌이 수임한 사건은 복잡할 가능성이 커 다른 대법관들이 처리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수 있다. ▷회피는 본래 사건의 주심을 맡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선고를 위한 합의에도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회피를 제대로 한다면 권 대법관은 다른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사건이 대형 로펌과 관계돼 있을 때도 합의에 참여할 수 없다. 대법원 사건은 일단 소부(小部) 처리가 원칙이다. 소부에서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파장이 예상되는 사건만 전원합의체에 회부된다. 대법원에는 3개 소부가 있고 각 소부는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다. 대법관 각자가 주심을 맡은 사건 중 대형 로펌 사건이 약 10%라고 한다면 권 대법관은 자신이 속한 소부의 사건 약 10%에 대해 ‘없는 재판관’이나 다름없다. ▷대법관은 자신이 주심을 맡은 사건도 산더미이기 때문에 다른 주심이 맡은 사건까지 세세하게 검토하기 쉽지 않다. 그래도 법리적으로는 엄연히 4인 합의의 형식을 취하는 것이 소부의 선고다. 권 대법관이 속한 소부는 상당수 사건을 3인 합의로 부실하게 선고하는 셈이 된다. 권 대법관도, 국회도 논란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과도한 약속으로 우회했다가 대법원 운영에 2년 내내 부담을 주게 됐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2023-10-11 23:56
[송평인 칼럼]저절로 떨어지는 집값도 못 잡은 정부는 처음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집권하자마자 다주택자와 단기 주택 보유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를 면제했다. 집값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굳이 매물을 유도할 필요가 없었는데도 그렇게 했다. 이어 종부세 중과까지 폐지했다. 종부세와 양도세가 다 높으면 집을 보유하기도 양도하기도 어려워 문제이지만 집값 안정이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다 깎아 주는 건 뭘 하자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문재인 정부에서의 집값 상승은 정책 대응 실패에도 원인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장기간 저금리에서 비롯됐다. 금리 인하 때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를 못 쫓아갈까 봐 조바심을 내던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에서는 미국과의 금리 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은이 찔끔찔끔 올린 금리마저도 금감원이 은행 창구 금리를 통제하는 바람에 인상의 효과도 크지 않았다. ‘영끌’ 대출은 아무 젊은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부모가 돈이 있고 본인들 스스로 상당한 소득이 있을 때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20, 30대가 주택을 척척 보유했던가. 대부분의 영끌 대출은 정 안 되면 집 팔아 빚 갚고 분수에 맞게 전세 살면 해결되는 것이다. 세상에 쓸데없는 걱정이 영끌 대출 걱정인데도 윤 정부는 40, 50대 무주택 서민의 설움보다 영끌 대출에 더 부심했다. 이러니 문 정부 초에 비해 문 정부 말에 2배가 된 집값이 다시 올라가고 가계대출이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다시 느는 건 당연하다.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에서는 문 정부 때의 최고가를 경신하는 집값이 속출하고 있다. 올라가는 집값을 못 잡은 정부는 많이 봤지만 저절로 떨어지는 집값도 못 잡은 정부는 처음 본다. 유가가 다시 올라 9월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유가가 오르는 것은 인플레가 아니다. 유가는 오르락내리락한다. 계절에 따라 농산물 가격이 오르는 것도 인플레가 아니다. 계절이 바뀌면 다시 내리게 돼 있다. 그러나 유가가 내려도, 농산물 가격이 내려도 한번 오른 식당 밥값이나 서비스 요금은 다시 내리지 않는다. 이것이 인플레다. 유가나 농산물을 제외한 근원물가지수는 지난해 7월 6.3%에서 정점을 찍은 이후 하락했지만 여전히 3%대 수준을 유지하면서 올 3월 이후로는 총지수(각종 물가지수를 합한 지수)를 상회하고 있다. 현재도 미국 뉴욕보다 비싼 우유값이 이달 들어 인상되면서 유제품 가격이 일제히 오르고 수도권 지하철 요금 등 대중교통도 2차로 오른다. 4분기 전기요금 인상도 거론된다. 전년도에 있었던 높은 상승률의 기저 효과도 곧 사라진다. 근원물가지수는 다시 4%대로 오를 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가 관리하는 공공요금을 선진국처럼 제때 인상했다면 근원물가지수는 4% 이하로 떨어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인플레는 끝물이 아니라 한창 진행 중이다. 역대 보수 정부는 현실화를 목표로 충분한 정도는 아니지만 공공요금을 계속 인상해 왔다. 이 흐름을 결정적으로 중단시킨 것은 문 정부다. 당시 한은은 정부에 의해 왜곡이 심화되는 물가를 중대 사안으로 인식해 바로잡으려 하기는커녕 왜곡된 물가지수를 토대로 저금리를 유지하면서 저금리에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뉴노멀이 왔다는 등의 헛소리나 하며 돈을 푼 탓에 자산 시장에 엄청난 거품을 쌓았다. 그러나 문 정부만 탓할 수 없다. 윤 정부 역시 공공요금을 현실화하지 못했으면서도 올 6월부터 인플레가 다 끝났다는 듯이 떠벌렸다. 윤 정부가 수십조 원씩 쌓이는 공기업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공공요금을 현실화한다면 물가가 떨어질 때마다 조금씩 요금을 올려갈 수밖에 없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은 꼬리가 긴 인플레다. 인플레가 장기간 누적되면 월급생활자나 연금생활자는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는다. 온갖 대출 부실이 수면 밑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 금리 인상이 찔끔찔끔 이뤄졌는데도 그 정도다. 부실은 어느 정도 터뜨려서 거품을 꺼줘야 새 출발이 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장기간 저금리에서나 가까스로 생존 가능한 한계 기업과 차주, 그리고 그들에게 대출해 준 금융회사가 타격을 입는 건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도 윤 정부는 틀어막고만 있다. 그러니 어느새 문 정부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비정상적 집값으로 돌아간 데 더해 물가는 끝날 기약도 없이 오르고 그럼에도 경기 회복의 전망은 희미한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2023-10-0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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