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잔인한 독재자 너머 ‘독서광’ 스탈린을 마주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30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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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책 우상시해 탐독하면서 적수 책도 읽으며 욕설-맞장구
고리키-톨스토이와 친분 두터워… 셰익스피어 등 서유럽 고전 취향도
◇스탈린의 서재/제프리 로버츠 지음·김남섭 옮김/543쪽·3만1000원·너머북스

집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스탈린의 모습. ‘스탈린의 서재’의 저자는 “스탈린은 독창적인 사상가가 아니었다. 스탈린이 평생 한 일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 정식, 정보를 활용하는 것이었고 바로 그것이 스탈린이 그토록 많이 읽은 이유였다”고 했다. 너머북스 제공
집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스탈린의 모습. ‘스탈린의 서재’의 저자는 “스탈린은 독창적인 사상가가 아니었다. 스탈린이 평생 한 일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 정식, 정보를 활용하는 것이었고 바로 그것이 스탈린이 그토록 많이 읽은 이유였다”고 했다. 너머북스 제공
부지런한 독서는 마오쩌둥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그는 장정에 나서 옌안에서 철수할 때 다른 건 다 버려도 책만은 버리지 않았다. 공산 정권을 수립하고 나서는 수만 권의 책을 모아 개인 장서실을 만들었다. ‘마오의 독서생활’이라는 책이 나와 있을 정도다. 그는 온갖 종류의 책을 읽었지만 특히 ‘루쉰 전집’과 홍루몽을 좋아했다.

스탈린이 손으로 쓴 장서 분류 체계. 너머북스 제공
스탈린이 손으로 쓴 장서 분류 체계. 너머북스 제공
스탈린도 마오 못지않은 열렬한 독서광이었던 모양이다. 다만 마오와는 달리 사후 흐루쇼프에 의한 격하 운동으로 그의 장서가 뿔뿔이 흩어졌다. 그럼에도 그가 짧은 평을 적은 400여 점의 텍스트가 남아 있다.

스탈린은 레닌을 갈릴레오와 다윈의 반열에 오른 사람으로 여겨 그의 책들을 열심히 읽었지만 또한 적수라고 말할 수 있는 카우츠키나 트로츠키의 글도 꼼꼼히 읽었다. 물론 카우츠키의 글에는 스볼로치(상놈), 르제츠(거짓말쟁이) 같은 욕설을 많이 달고, 트로츠키의 글에는 타크(맞아), 멧코(정확해)라는 메모를 달면서도 자신과의 결정적인 차이에 대해서는 틀렸다는 표시를 했다.

소련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스탈린에 대한 우상화와 악마화를 피하면서 진짜 스탈린을 알기 위한 연구도 깊어졌다. 조지아 출신인 스탈린은 젊은 시절 혁명가로 돌아서기 전까지는 성적이 좋은 신학도였다. 그가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이 된 것은 단순히 광기 때문이 아니다. 정교회 신도에서 무신론자로 돌아선 것도, 잔인한 독재자가 된 것도 나름의 논리를 집요하게 추구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스탈린은 레닌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반환하지 않은 책 중에 헤로도토스의 ‘역사’도 들어 있는 등 역사 전반에 관심이 많았다. 러시아 역사가 로베르트 비페르의 책을 많이 읽었고 그 책의 계급투쟁적 서술을 모범으로 삼아 소련 역사 교과서들이 쓰이도록 지도했다.

스탈린은 고전 문학의 계몽적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안타깝게도 스탈린이 소장한 문학작품은 그가 사망한 뒤 흩어졌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주재 소련 대사였던 안드레이 그로미코는 스탈린에 대해 “그는 특히 좋아한 셰익스피어, 하이네, 발자크, 위고, 모파상 말고도 다른 많은 서유럽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고 전했다.

스탈린은 고리키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고 톨스토이에게는 스탈린상을 수여했다. 톨스토이가 각본을 쓰고 예이젠시테인이 감독한 영화 ‘이반 뇌제’에 대해서는 그의 역사와 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작품이 되도록 직접 지도하기도 했다.

책을 통해 혁명에 접근했다는 점에서 레닌, 트로츠키, 스탈린은 다 같다. 다만 스탈린은 러시아어 외에는 읽을 수 없었고 해외 경험이 없다. 이것이 독일어를 잘했던 레닌이나 트로츠키와의 차이다. 마오쩌둥이나 스탈린을 보면 책을 열심히 읽는다는 것과 좋은 지도자가 되는 것은 큰 상관이 없어 보인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신념은 책을 통해 얻어지기보다는 인성과 도덕적 경험을 통해서 획득되는 것인 듯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독서광#스탈린#스탈린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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