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이라는 질병[삶의 재발견/김범석]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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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아드님도 담배 피우시나요? 아버님이야 담배 때문에 암에 걸린 것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아드님이라도 담배 끊으시지 그러세요?” 주로 폐암과 두경부암을 진료하다 보니, 담뱃갑에 그려진 암 환자 모습을 매일 본다. 환자와 가족에게서 담배 냄새가 폴폴 나는 경우도 많이 본다. 환자분의 아들들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자주 권하지만, 20년 동안 단 한 명도 금연하게 만들지 못했다. 담배 때문에 암에 걸려서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를 보며, 이것이 30년 뒤의 당신 모습이라고 겁박을 해도 그들은 담배를 끊지 못한다.

담배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담배에는 수백 수천 가지의 유해성분이 들어있다. 살충제 성분인 DDT, 휘발유 성분인 벤젠, 연탄가스 성분인 일산화탄소, 조선시대 사약으로 쓰이던 비소, 사형 가스인 청산가스, 라이터 원료인 부탄, 방부제 성분인 나프틸아민, 중금속인 카드뮴, 니켈…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어렵다. 사람들은 폐가 서서히 썩는 줄도 모르고, 이런 독극물을 하루에도 몇 번씩 죄 없는 폐에 들이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 담배를 피운다. 담배를 못 끊도록 담배 회사에서 중독물질을 첨가해 넣기 때문이다. 국가도 이를 묵인한다. 국가 입장에서는 가장 손쉽고 저항감 없이 세금을 뜯어낼 수 있는 것이 담배인데(4500원짜리 담배 한 갑에 포함된 세금은 약 3300원이다), 당신의 금연이 달가울 리 없다. 담배를 피워야 세금도 내고, 담배 회사와 농민들도 먹고살고, 병에 걸리니 의사들과 제약회사도 먹고산다. 당신이 담배를 피워서 이득을 보는 사람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흡연자인 당신은 그저 몸 버리고 돈 버리는 호구일 뿐이다.

담배는 대마초보다 중독성이 더 강하다. 담배를 못 끊는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다. 당신의 의지가 부족해서도 아니다. 그저 끊을 수 없는 덫에 빠져 있을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흡연은 기호(嗜好)가 아닌 질병이다. 니코틴 중독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질병이다. 담배는 혼자서 끊을 수 없고 주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금연클리닉을 이용하고, 스마트폰 금연 앱도 이용하고, 주변에 널리 알려서 피우다 걸리면 1만 원씩 벌금도 내고, 흡연은 계속 치료해 나가야 한다. 담배는 절대 한 번에 끊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하루 끊었다가, 일주일 끊었다가, 한 달 끊었다가 그런 식으로 100번, 200번 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시도하면 결국에는 끊어진다.

다시 새해가 밝았다. 이 글을 읽고 단 한 명이라도 담배를 끊는다면, 그리하여 종국에는 담배 때문에 먹고사는 종양내과 의사의 밥벌이가 없어진다면 더없이 행복한 일이다. 담배를 피우는 당신이 새해에는 건강해지기를 바란다.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흡연#질병#담배#만병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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