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살기로’라는 생존법[서광원의 자연과 삶]〈42〉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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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TV 채널을 돌리다가 ‘방랑 식객’이라는 글자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이 이름으로 불리던 이가 얼마 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이다. 자연에서 얻은 식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손꼽히는 요리사라는 것만 알고 있었기에 궁금한 마음이 일어 조금만 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방랑 이유가 궁금했다.

눈썹이 짙고 미소가 인상적인 방랑 식객 임지호는 ‘밥 정(情)’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도 방랑 중이었다. 과거 급제를 위해 자신의 조상을 욕했던 김삿갓 같은 사연이 있었던 걸까. 잠깐 보려 했는데 결국 다 보고 말았다. 혼자 울컥하면서.

그에게도 아픈 사연이 있었다. 아들을 원했지만 줄줄이 딸 넷을 낳았던 아버지는 대를 잇기 위해 여자를 얻었다. 하지만 그녀에게서도 아들을 얻지 못하자 떠났는데 그 사이에 애가 들어섰고 그가 임지호였다. 세 살 때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게 됐지만 안타깝게도 생모는 아이를 데려다 주고 돌아가던 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삶이 순탄할 수 없었다. “주워 온 애”라는 말이 그를 옥죄었다. 세상의 시선이 불편해 혼자 있기 시작했고 가출까지 했다. 그런 그를 언제나 기다려주고 품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길러준 어머니였다. 왜 낳지도 않았으면서 그렇게 마음고생을 하느냐고 딸이 걱정하자 직접 낳지는 않았지만 마음으로 낳은 아들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가 가출했다가 돌아왔을 때도 그 어머니는 눈물을 쏟았다.

그는 그걸 보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자신의 운명에 눌려 사느라 보답을 못 했다. 그래서 철이 든 후 “죽기 살기로 살았다”고 했다. 어머니의 눈물 값을 하려고 말이다. 방랑하다가 두 어머니와 비슷한 또래 이들에게 자연에서 얻은 식재료로 밥상을 차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에” 방랑했던 것이다.

삶 자체가 여운이 남지만 특히 그가 남긴 “죽기 살기로 살았다”는 말이 묘하게 잊히지 않는다. 그랬으니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요리사가 되었고 자신에게 씌워진 굴레를 어느 정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의외로 남다른 성공을 한 이들 중엔 바로 이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바꾼 일이 많다.

우리는 대개 막다른 골목 같은 상황이 되어서야 물불 안 가리고 ‘죽기 살기로’ 노력하지만 성공한 이들은 이 ‘죽기 살기로’를 좀 다르게 사용한다. 발등에 불 떨어진 후에야 안간힘을 쓰고 몸부림을 치는 대신 위기가 오기 전 미리 그렇게 한다. 여유가 있으니 아등바등하지 않을 수 있고 목표가 명확하니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같은 표현을 쓰지만 본질은 매한가지다.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탁월한 생존법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잘만 사용하면 삶을 바꿀 수도 있는, 두 번은 고통이겠지만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 아닌가 싶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죽기 살기로#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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