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조국의 시간, 끝나지 않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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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사과했지만 조건부 사과는 한계
조국사태의 부정적 유산청산이 관건

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이제 조국의 시간은 끝났다고 했다. 말 많고, 탈 많았던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한 자리에서다. 박원순 성추행을 감싸려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심의 호된 회초리를 맞은 반면교사도 작용했을 것이다. 예상대로 조국 수호대를 자처하는 강성 문파는 강력 반발했다.

그러나 갈등은 내전(內戰)으로 번지지는 않는 분위기다. 조국 사태를 놓고 친문-비문 집안싸움을 벌여 봤자 서로에게 득이 되지 않을 거라는 공감대가 생긴 듯하다. 야권에 어부지리가 될 수 있으니 어정쩡하게 봉합한 듯하다. 조국 사태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계륵(鷄肋) 신세가 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송 대표의 사과가 구호는 거창했지만 실제 알맹이는 쏙 빠진 느낌이다. 1심 법원이 조국 아내의 입시비리 혐의 7개를 모두 인정했는데도 입시스펙 품앗이 등은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법원 선고는 여전히 인정할 수 없지만 민심의 감정선을 건드린 점은 미안하니까 사과한다는 식이다. 조국이 “나를 밟고 가라”고 했지만 송 대표는 레드 라인을 넘지 않은 것이다.

저명한 심리학자 아론 라자르는 저서 ‘사과에 대하여’에서 실패한 사과의 몇 가지 사례를 들었다. ‘기분 나빴다면 미안합니다’ ‘크게 잘못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미안합니다’ ‘잘하다가 어쩌다 한 번 실수한 거죠’. 조건부 사과나 피해자의 예민함이 더 문제라는 뉘앙스를 풍기면 ‘후회와 반성 없는 가짜 사과’라고 했다. 당사자가 진정으로 사과를 했다면 피해자인 국민이 “이 정도면 됐다”고 해야 끝나는 것이다. 우리가 사과했으니 이 정도에서 일단락 짓자고 하면 오만일 뿐이다. 문재인 정권이 그토록 역설해 온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과도 맞지 않는 것이다.

친문 세력은 작년 4·15총선 승리로 조국 사태 심판은 끝났다고 강변했다. 당시에도 당 대표가 사과를 하긴 했다. 그러나 여당은 초유의 코로나 위기 때문에 정부 여당에 위기관리 리더십을 의탁한 민심의 반사이익을 누렸다. 조국 사태는 잠시 잊혀졌을 뿐 불씨가 꺼진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집권세력은 180석 의석이 민의라며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밀어붙였다. 민심을 왜곡한 결과는 보선 참패였다.

조국 사태는 단순히 조국 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조국 사태를 통해 드러난 위선과 오만, 내로남불은 상당 부분 현 정권의 독선적 국정 운영 행태를 연상케 했다. 조국 사태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진 이유다.

현 정권 창출의 공신이었던 양정철은 여권에 민심 회복을 위한 세 가지 제안을 했다. 먼저 임기 말에는 경제 민생 이슈에 집중하라고 했다. 이어 현 정권의 상징과 같은 소득주도성장과 부동산, 탈원전 등 정책 기조를 바꾸고, 남 탓하지 말라고 했다.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고, 민심에 부응하는 쇄신책이다.

그러나 보선이 끝난 지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뚜렷한 변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부동산과 탈원전 정책 등 국정 기조 전환은 벽에 부딪힌 상태다.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에 여전히 회의적인 여권 인사들의 발언은 계속되고 있다. 법무부 장관이 조국-추미애-박범계로 바뀌었지만 내 편만 챙기겠다는 검찰 장악은 가속도를 내고 있다. 이러니 반성과 참회의 속뜻이 의심받는 것 아닌가.

조국의 시간은 여당 대표 한마디로 끝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조국 사태로 상징되는 부정적 유산이 청산되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추세면 조국의 시간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조국#조건부 사과#조국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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