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박형준]80년대 세계 호령하던 日 반도체 재부흥 비책

박형준 도쿄 특파원 입력 2021-04-20 03:00수정 2021-04-20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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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노마루 반도체’ 자존심 버린 일본
삼성, SK 반도체 공장 유치 나설 수도
박형준 도쿄 특파원
2년 전 이맘때였다. 일본은 2019년 5월 1일 새 일왕 즉위에 앞서 한창 들떠 있었다. 언론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연호 ‘헤이세이(平成·1989∼2019년)’를 아쉬워하며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당시 경제 분야 주요 기사 중 하나는 일본 반도체의 쇠락이었다.

거품 경제가 한창이었던 1980년대 후반 일본 반도체는 세계를 석권했다. 1990년 반도체 시장 톱10 중 일본 회사가 NEC, 도시바, 히타치 등 6개였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50%를 넘었다. 그 당시 ‘히노마루(日の丸) 반도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히노마루는 일본 국기를 뜻한다. 강한 반도체가 일본 경제를 이끄는 핵심 원동력이었기에 사람들은 애국심, 자긍심의 의미를 포함시켜 그렇게 불렀다.

헤이세이가 끝난 2019년, 일본 반도체 기업 이름은 톱10에서 사라졌다. 그 대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1위와 3위에 올랐다. 가네코 마사루(金子勝)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저서 ‘헤이세이 경제 쇠퇴의 본질’(2019년 출간)에서 일본 반도체 쇠퇴 원인을 1986년 ‘미일 반도체협정’에서 찾았다. 미국은 덤핑 방지라는 명목으로 일본 제품의 가격 인하를 막았고, 일본 시장에서 외국 반도체 제품의 점유율을 20% 이상으로 끌어올리도록 요구했다. 일본 반도체산업은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2012년 NEC와 히타치의 반도체 사업 부문이 통합해 설립된 엘피다메모리의 파산, 2018년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 부문 매각, 2019년 파나소닉 반도체 부문 매각….

최근 또다시 반도체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패권 경쟁을 벌이자 각국이 국가 안보 차원에서 반도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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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도 지난달 24일 경제산업상이 참석한 가운데 민관 합동으로 ‘반도체·디지털산업 전략 검토회의’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일본 반도체산업 현주소를 점검했다. 경쟁력이 떨어진 데다 미국, 중국에 비해 정부 보조금 등의 단위가 끝자리 ‘0’이 두 개나 적었기에 당장 자체 투자로 반도체산업을 다시 일으키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하지만 반도체 소재와 제조장비는 아직 일본이 강했다. 세계 1위 기업도 많았다. 거기에 반도체의 주요 소비처 중 하나인 자동차산업이 세계 최강이다. 참석한 전문가들은 ‘일본 고유의 반도체 기업 육성’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반도체산업 재부흥을 위한 승산이 있다고 봤다.

결론은 독자 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해외 기업의 제조거점을 일본으로 유치하자는 데로 모아졌다. 이를 통해 안정적으로 반도체를 공급받고, 다른 산업과의 연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당장 경산성은 일본에 공장을 짓는 해외 반도체 기업에 대한 보조금 증액을 검토하기로 했다. 사실 경산성은 이미 2019년 여름부터 해외 반도체 기업 유치에 나섰고 대만 TSMC와 미국 인텔 등과 잇달아 접촉했다(니혼게이자이신문 3월 19일 보도). 그 결과 TSMC가 올해 2월 연구 자회사를 일본 이바라키현에 짓겠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이제 ‘히노마루 반도체’의 자존심을 버리고 해외 기업 유치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도 물밑 접촉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반(反)기업 정서가 강하고, 각종 규제가 많은 한국에서 국가 차원의 전략적 지원까지 뒤처진다면 어느새 일본에서 한국 대표 반도체 기업의 공장을 볼지도 모르는 일이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반도체#재부흥#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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