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실패 반복되는 해안경계, 해경에 떠넘길 궁리하는 軍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2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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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남성이 16일 동해안으로 월남할 당시 경계용 감시카메라(폐쇄회로TV)에 10차례 포착됐지만 관할 부대는 이를 8번이나 놓쳤다. 경보음도 두 차례나 울렸지만 무시했다. 9, 10번째 포착 뒤에도 31분이 지나서야 최초 보고를 했다. 합동참모본부가 어제 발표한 군 검열단의 이른바 ‘오리발 귀순’ 사건 현장조사 결과다. 이런 경계 실패에도 군 당국은 해안경계 임무를 해경에 넘기기 위한 세부계획을 연말까지 마련하기로 했다고 한다.

군 조사 결과는 총체적 경계 실패를 여실히 보여준다. 감시장비 운용부터 초동조치와 보고, 경계시설물 관리까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귀순자가 해안으로 올라와 처음 발견될 때까지 3시간 넘게 경계망은 뻥 뚫려 있었다. 첫 보고도 30분 넘게 지연됐다. 귀순자가 통과한 해안 철책 배수로는 해당 부대가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작년 7월 탈북민의 ‘배수로 월북’ 이후 일제 점검 지시가 내려졌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것이다.

이번 경계 실패가 상황실 간부와 영상감시병, 위병소 근무자의 잘못 탓이라지만 군 전반에 만연한 기강 해이와 무관치 않다. 근무 장병들은 두 차례의 경보음마저 오작동으로 치부했고, 최초 식별 이후에도 부대 간부일 것이라며 조치를 미뤘다고 한다. 군 내부의 긴장이 풀어질 대로 풀어진 상태에서 ‘별일 아닐 텐데 괜히 부산 떨지 말자’는 안이한 인식까지 겹쳐 어처구니없는 대응으로 나타난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군 당국은 해안경계 임무를 해경에 전환하는 계획을 가속화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15년 전 남북관계 개선과 병력 감축 기조에 맞춰 추진된 임무전환 계획이라지만 그간 안보 여건의 악화로 전환 시기가 몇 차례나 연기된 사안이다. 더욱이 ‘목선 귀순’ ‘보트 밀입국’에 이어 ‘오리발 귀순’까지 벌어져 허점이 계속 드러나는 터에 인력과 역량에서 열세로 평가받는 해경에 떠맡길 경우 해안경계의 구멍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군의 대북경계는 과학화경계시스템 같은 감시장비에 맡겨지고 있다. 아무리 최첨단이라도 경계심이 이완된 상태에선 어떤 경보음도 귀찮고 성가신 소음일 뿐이다. 군은 이번에도 “환골탈태의 각오로 근본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두고 볼 일이지만 군이 무너진 기강부터 다잡지 않는 한 국민의 불신은 잠재울 수 없다. 지금 국민은 군의 존재 이유를 묻고 있다.
#실패#반복#해안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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