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北인권정책 다룰 美의회 청문회의 경고장[광화문에서/이정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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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인권과 관련한 미국 의회의 청문회를 눈여겨봤던 것은 지난해 9월이었다. 홍콩의 인권운동가 조슈아 웡이 증인으로 출석한 중국의 홍콩 민주화 시위 탄압 관련 청문회였다. 중국식 악센트가 강한 영어로 또박또박 중국의 탄압 실태를 고발하던 그의 증언이 인상적이었다.

미국 의회가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청문회를 추진한다는 소식에 문득 이 홍콩 청문회가 생각났다. 한국의 대북 인권정책이 청문회의 도마에 오르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궁금했고 걱정도 됐다. 당시의 동영상을 다시 돌려보다가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크리스 스미스 하원의원이었다. 대북전단금지법 관련 청문회를 추진하고, 국무부 ‘종교의 자유 보고서’와 ‘인권 보고서’에서 한국에 대한 평가 재고를 요청하겠다고 공언한 바로 그 의원.

홍콩 청문회에서 모두발언을 자청한 스미스 의원은 매서운 눈매로 “미국과 국제사회는 위협 앞에서 침묵하지 않을 것이고, 할 수도 없다”며 인권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중국어로 “자유(加油·파이팅)!”라고 마무리하며 홍콩인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그는 2014년 ‘홍콩 인권과 민주주의 법안’을 발의했던 정치인이기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앞서 2006년 일본의 위안부(성노예) 문제를 비판하는 결의안을 발의한 것도 그였다. 이런 시도들은 당시 일본의 집요한 방해공작과 로비에도 불구하고 결국 미 의회의 위안부 청문회 증언 및 결의안 통과를 이끌어냈다. 곧 의정활동 40년이 되는 20선의 스미스 의원이 이렇듯 인권 분야에서 쌓아온 무게감과 비중은 남달라 보인다. 그는 최근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대북전단금지법의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줄은 미처 몰랐다”며 좀 더 일찍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을 자책했다고 한다.

스미스 의원이 내년 초 대북전단금지법 관련 청문회를 추진할 경우 이는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의회 산하의 초당적 인권기구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인 그가 깃발을 들면 공화당과 민주당의 의원들이 초당적으로 가세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인권과 민주주의 같은 보편적인 인류의 가치에는 국경이 없다”며 “전 세계를 이끌어온 미국은 특히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만큼은 특정 국가나 이해관계를 넘어서 대응해 왔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나오는 ‘내정 간섭’ 주장이 받아들여질 여지는 없다는 말이다.

청문회가 열린다면 조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에 맞춰 북한 인권 상황을 점검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서울과 워싱턴의 북한 인권 활동가들이 증인으로 나서고, 질의응답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우려를 무시한 입법 과정의 문제점이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주미 대사관을 중심으로 설명에 나선다지만, 이미 명문화된 법 조항에 뒤늦게 이런저런 해석을 갖다 붙이는 수준으로 노회한 미국의 입법 전문가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오산이다.

곧 출범하게 될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국들과의 관계 회복을 공언해 왔다. 동맹의 근간은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라는 점 또한 수차례 밝혀 왔다. 민주주의와 인권은 그 핵심 가치다. 불안하게 흔들려온 한미 동맹에서 이 공유 가치마저 훼손돼서는 안 될 일이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
#북한#인권정책#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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