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유감[동아광장/최재경]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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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존 보호 강화 ‘민식이법’
도로교통법 개정은 국민들 공감, 하지만 특가법까지 추가한 것은 논란
살인죄 같은 중형, 형벌 남용 우려
‘特’자 남발하는 사회 정상 아냐… 특가법 축소하다 폐지가 바람직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변호사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변호사
소위 ‘민식이법’이 10일 국회를 통과했다. 도로교통법을 개정하여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 과속 단속 카메라와 보행자용 신호기 설치를 의무화하고,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을 바꿔 스쿨존에서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를 중형에 처하도록 했다.

스쿨존의 어린이 보호를 강화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은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 별로 이론이 없다. 하지만 운전자에게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중형을 부과하는 특가법 개정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국회 의결 이튿날, 청와대 게시판에 재개정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올 정도다. 어린이 보호라는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엄벌 위주의 대책이 지나치게 가혹하고 감성에 치우쳤다는 주장이다.

1966년 제정된 특가법은 형법, 관세법, 조세범처벌법 등에 규정된 특정 범죄를 가중 처벌함으로써 건전한 사회 질서의 유지와 국민 경제의 발전에 기여함을 그 목적으로 했다. 당시 가중 처벌 대상이 된 특정 범죄는 뇌물, 국고 손실, 밀수와 탈세, 산림법 위반, 통화 위조와 마약 사범 등이었다. 500만 원 이상 뇌물을 수수하거나 100만 원 이상 물품을 밀수하면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정도로 법정형이 가혹했다.

현행 특가법은 2018년 12월 개정됐다. 이번 스쿨존 교통사고 중형 개정안이 시행되면 50여 년 동안 37회 개정되는 것이니 그야말로 역동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현행 특가법도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목적은 변함없으나 시대 상황에 따라 가중 처벌하는 특정 범죄가 달라져 왔다.

이 중 뇌물, 국고 손실, 관세법 위반, 조세 포탈, 산림 훼손, 마약 사범 등은 제정 당시와 같다.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던 통화위조죄는 삭제됐다. 그 대신 급격한 경제 발전과 범죄 양상의 변화를 반영해 다양한 범죄가 추가됐다. 재판·검찰·경찰 공무원의 불법체포 및 감금이나 고문 행위, 금품 강탈 목적 인질 납치, 뺑소니 도주 차량, 상습 강도 및 절도, 형사사건 관련 보복 범죄, 운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 폭행, 음주·약물 운전 교통사고, 도주 선박의 선장과 승무원 등이 그것이다.

새롭게 추가된 범죄들은 당시의 사회상과 국민적 엄벌 요구를 반영했다. 도주 선박의 가중 처벌은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 개정됐고, 음주·약물 운전 교통사고의 가중 처벌은 지난해 군 휴가를 나왔다가 만취 차량에 치여 숨진 윤창호 씨 사고 이후 생긴 소위 ‘윤창호법’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보다 ‘특(特)’을 특별히 좋아한다. 법률에도 ‘특’자가 들어간 이름이 많이 쓰인다. 형사법 중에는 특가법 외에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과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임시 특례법 등이 있다. 특정 범죄로 규정해서 중형을 내리면 범죄가 억제되는 것일까.

음주운전 사망 사고에 최대 무기징역까지 법정형을 높이고, 음주 단속 기준을 강화한 윤창호법 시행 1년을 분석하면 실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10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음주운전이 28%, 음주 사고 피해 중 사망 33.8%, 부상 31.6%가 감소했다고 한다. 입법 효과인지, 음주 단속 강화에 기인한 것인지 정밀한 분석은 어렵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스쿨존 교통사고를 특가법 대상에 추가한 데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중형 위주의 입법만능주의에 근거가 없다고 한다. 고의범과 과실범을 구분하지 않는 형벌 법규 남용이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본다. 입법 과정에서 소관 상임위원회의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다 어린이 교통안전 종합 대책이나 건전한 교통 문화 정착 방안을 함께 검토하지 않아 졸속 입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과실범인 교통사고에 살인죄와 유사한 중형을 규정한 부분 역시 앞으로 고민과 성찰이 계속 필요할 것이다.

‘특’자가 많은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보통’ ‘일반’ ‘기본’적인 것이 많아야 한다. 형벌을 무겁게 하고, 가혹하게 처벌해서 범죄를 줄일 수 있었다면 인간의 역사는 지금보다 더 발전했을 것이다. 대한민국 발전에 크게 기여해 온 특가법이 계속 몸집을 불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서서히 감량하다가 폐지될 수 있기를 바란다.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변호사
#민식이법#도로교통법#스쿨존#특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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