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종엽]문화 관광 상품 싸게 하려다 미래 먹거리 비지떡 될수도

  • 동아일보

조종엽 문화부 차장
조종엽 문화부 차장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2024년 12월 ‘에라스 투어’의 마지막 공연 무대를 시작하던 날 미국 경제방송 CNBC가 고른 출연자는 글로벌 호텔 그룹의 최고경영자였다. 그는 스위프트의 투어가 경제 전반에 얼마나 큰 효과를 내는지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선 객실 점유율이 24% 늘었고, 객실당 숙박료는 평균 2.5배를 받았다고 밝혔다. 다른 로컬 업소들도 그렇게 벌었을 것이다. 스위프트의 공연이 열리는 도시의 경제가 활성화되는 걸 일컫는 ‘스위프트노믹스(Swiftnomics)’의 풍경이다.

같은 일이 한국에선 사뭇 다른 상황으로 전개된다. 6월 부산에서 방탄소년단(BTS)의 월드 투어 공연이 예정되자 주변 호텔 등 숙박 요금이 큰 폭으로 올랐다. 세계가 주목하는 공연이 열리는데, 일시적으로 가격이 오르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칼을 빼 들었다. 지난달 25일 국가관광전략회의에선 숙박업체가 시기별 최고 요금을 사전 공개토록 하고, 그보다 비싸게 받으면 한 번 적발돼도 영업정지를 내리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대책의 실효성은 둘째 치고, 숙박 요금이 정부가 개입해야 할 일인가 싶다.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서서 실태를 조사했는데, 결론은 모니터링을 지속하겠다는 것뿐이었다. 담합 같은 건 발견하지 못했다는 뜻이겠다. 관료들이라고 시장을 모를까.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최근 간담회에서 “굉장히 소수의 사례가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 “결국은 공급이 부족해서일 수 있다”고 했다.

업자들이 꾸준히 돈을 벌면 투자 여력이 생기고, 공급이 늘고, 고급화도 진행된다.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 문제는 오히려 ‘싸구려 요금’이 지속되는 일이다. ‘한국은 숙소가 저렴하다’는 말은 관광객들이 기꺼이 고액을 지불할 만한 매력과 콘텐츠가 없어서 업자들이 요금을 못 올린다는 뜻과 같다. 대계를 염두에 둔 당국자라면 몽둥이 들고 생색을 낼 게 아니라, 기회를 살려 지역의 관광산업을 어떻게 키울지를 고민해야 한다. 저렴한 숙소는 시장이 커지면 얼마든지 생겨나게 마련이다.

문화 및 관광 상품에 대한 정부의 다른 정책에서도 ‘비용을 낮춰 소비를 유도하자’는 식의 접근이 눈에 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농어촌 인구감소지역 여행 시 경비의 절반을 환급해 주는 ‘반값 여행’ 시범 사업에 착수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관광지에 돈을 들여서라도 오고 싶게 만들어야지, ‘돈을 돌려주니까 간다’는 데 그친다면 장기적으로 지역에도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영화 산업 활성화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정부의 영화 관람료 할인권 배포는 과연 효과가 있었나. ‘범죄도시4’(2024년) 이후 2년 만의 새 천만 영화는 그런 퍼주기 없이 곧 탄생한다. 문체부가 추진 중인 영화 구독 패스는 기대도 있지만 ‘관람은 힙(hip)하다’는 인식을 만들지 못할 시엔 ‘영화=싸구려’로 만드는 건 아닌지 하는 우려도 없지 않다.

K컬처와 연관 산업을 먹거리로 키우려면 구태의연한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 취약 계층 등은 소비를 지원할 필요가 있지만 정책의 무게 중심은 경쟁을 유도하면서 산업 성장의 기반을 닦는 데 두는 게 옳다. 통화량 증가 등으로 점심값이고 뭐고 다 오르는데, 문화·관광 상품만 가격을 묶어 둘 수 있겠나. 싸게만 하려다 보면 비지떡밖에 못 만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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