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광영]빡셀수록 많이 배울까… ‘주52시간’이 던진 질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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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한 직업에 입문하는 게 쉬울 리 없고 기자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언론사의 수습기자 교육은 혹독하고 고생스럽기로 악명이 높다. 몇 년 전 ‘극한직업’이라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응급실 의사, 스턴트맨, 강력반 형사 등과 함께 시리즈로 소개됐을 정도다. 미국의 유력 신문인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국내 언론의 수습기자 교육을 대서특필하며 군대 신병훈련소를 뜻하는 ‘부트 캠프(boot camp)’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기자들은 수습 시절 고단한 추억을 무용담으로 꺼내곤 하지만 6개월 남짓한 교육 당시에는 하루하루 한계를 시험당하며 절벽에 내몰린다. 수습기자들은 밤낮 없이 경찰서 소방서 등 뉴스가 있을 만한 곳을 돌아다니며 선배 기자에게 보고할 거리를 찾는다. 1, 2시간 주기의 보고시간에 맞춰 새로운 ‘팩트’를 찾기는 쉽지 않다. 간신히 몇 줄 건졌더라도 육하원칙을 갖춰 명료하게 보고하지 못하면 호된 질책을 받는다. 기삿거리를 찾아 온종일 헤매다 보면 2, 3시간의 쪽잠이 전부인 날이 허다하다. 입사 전에는 뉴스 소비자로서 ‘잘 차려진 밥상’만 받아 봤던 수습기자들은 ‘식재료’ 하나를 구하는 게 얼마나 힘겨운지, 실제 요리를 하는 것은 또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를 깨닫는다.

수습기자들은 경찰서 내 숙소에서 그나마 긴장을 풀고 몸을 누인다. 형사들이 농담 삼아 경찰서에서 가장 지저분한 장소로 꼽기도 하는 곳이다. 수습기자 숙소는 마루 곳곳에 노트북 전원선이 어지럽게 엉켜 있고 그 사이로 벗어놓은 양말과 수건이 나뒹군다. 이불에는 누군가 파카를 입고 드러누웠다가 그대로 다시 일어난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베개 뒷면에 납작하게 붙은 바퀴벌레 사체를 무심한 표정으로 털어낸 뒤 베고 눕는 여기자도 있었다.

필자 역시 수습기자였던 어느 겨울 서울남대문경찰서 숙소에서 잠을 자다 악취에 눈을 뜬 적이 있다. 옆에 한 노숙인이 누워 있었다. 그는 “서울역이 너무 추워 몸 녹일 곳을 찾다가 여기는 누워도 될 것 같았다”고 했다.

이런 풍경이 더 이상은 재현되기 어려울 것 같다. 올해 7월부터 여러 언론사에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돼 수습 교육도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지향하게 됐다. 경찰서에서 숙식하며 새벽까지 일하는 관행이 대폭 축소되거나 없어졌다. 주간과 야간으로 조를 나눠 경찰서를 돌리는 등 언론사마다 대안을 찾느라 분주하다.

대학병원 의사인 한 지인은 최근 레지던트(수련의) 교육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올해부터 주 80시간 근무제가 시행돼 레지던트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나아지긴 했지만 환자에 대한 이들의 책임감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엔 레지던트가 거의 매일 병원에 묶여 있다 보니 담당 환자 근처에 24시간 상주했다. 이젠 야간이 되면 대부분 퇴근하고 당직의사 1, 2명이 동료의 환자들까지 함께 돌본다. 환자의 이력에 훤한 담당 레지던트에 비해 신속하고 정확한 조치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인은 “예전 제도에 불합리한 면이 있지만 ‘나보다 환자가 우선’이라는 것을 체득할 수 있었는데 요즘 레지던트들은 ‘누군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생각이 앞서는 것 같다”고 했다.

근로시간 단축은 단기간에 집중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직업교육이 맞닥뜨린 새로운 도전이다. 짧은 시간에 실무를 숙달시켜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업의식을 갖추게 하는 접근법도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밑바닥에서 잡초처럼 살아남는 훈련을 거쳐야 기자에게 요구되는 끈기와 투지를 키울 수 있다는 오랜 통념을 새로 정립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더 스마트해지는 수밖에.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주52시간#수습#워라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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