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정훈]한국의 司法이 답할 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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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사회부장
김정훈 사회부장
세월호 침몰 참사는 1970년 12월 15일 새벽 326명의 사망·실종자를 냈던 제주 서귀포∼부산 정기여객선 남영호 침몰 사고와 비교되곤 한다. 초과 승선에 화물 과적, 얼치기 선장에다 해경의 부실 구조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44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도 여객선 안전운항에 관한 한 대한민국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부산으로 향하던 남영호가 전남 여수 소리도 앞바다에서 전복되던 때 부산지검의 당직검사는 나중에 김영삼 정부 후반에 검찰총장까지 지낸 김기수 검사였다. 검사로 임관한 지 1년 6개월 정도 된 초임 검사였지만, 그날 당직을 서다 최초 수사지휘를 하게 되면서 수사 초기 주임검사를 맡게 됐다. 지금 세월호 참사 수사팀에는 목포와 인천, 부산에서 수십 명의 검사가 총동원돼 있으나 당시엔 수사 인력이 많지 않아 수사관까지 합쳐도 고작 10여 명이 수사를 맡았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몰려간 취재기자들이 40∼50명이나 돼서 언론 보도 내용을 보고 검찰 수사가 뒤쫓아 가는 형국이었다.

“44년이 지났어도 하나도 달라진 게 없죠. 서귀포항을 출항할 때부터 배가 만재흘수선(화물을 실을 수 있는 최대한도의 한계선)을 넘었으니까. 과적에다 과승까지…. 다만, 당시엔 선장이 승객들을 구조할 기회도 없었죠. 세 번의 파도를 맞고 순식간에 배가 뒤집어졌으니까. 그때는 구조선 같은 것도 없었지만 구조 활동 잘못한 게 없는지 부산해경청장도 조사하고 그랬어요.”

수사의 중심에 서 있었던 김 전 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첫마디부터 “답답할 뿐”이라고 말한다. 당시 선장은 연말 대목을 맞아 감귤 상자를 더 실어 보내려는 업자들에게 맞서다 선사 측의 압력에 꺾여 결국 기우뚱한 채로 배를 출항시켰다.

차가운 겨울 바다에서 생존자는 12명에 불과했다. 그 가운데 간신히 구조된 선장도 있었다. 그는 살인죄가 적용돼 재판에 넘겨졌다. “솔직히 살인죄 적용하는 것에 자신이 없었어요. 하지만 당시 부산지검장이 만재흘수선까지 잠길 정도로 과적을 해서 출항했으니 사고 날 것을 예상했던 것 아니냐고 하면서 살인죄를 적용하라고 지시했죠.”

법원은 “선장 스스로 그 배에 탔는데 살인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살인죄에는 무죄를 선고하고 예비적 청구인 업무상 과실치사죄만 유죄로 인정해 금고 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김 전 총장은 이번 세월호 참사는 분명 남영호 사건과 다르다고 강조한다. “선장을 비롯해 선원들이 배를 버리고 도주할 때 배 안에 남아 있는 승객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봐야 합니다. 살인죄를 적용해 기소하면 유죄가 날 가능성이 60∼70%는 된다고 생각해요.”

미필적 고의가 명백하기 때문에 살인죄가 충분히 성립한다는 얘기다. 김 전 총장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져 갔다.

“형법 총칙에 위급한 상황에 긴급 피난하는 것은 처벌하지 않도록 하고 있어요. 하지만 세월호의 상황은 그렇게까지 급박하지 않았잖아요. 선원들이 승객들을 구조할 시간이 충분히 있지 않았습니까. 이런 식으로 도망가면 살인행위다, 살인죄로 처벌받는다는 판례를 반드시 남겨야 합니다. 검찰은 반드시 살인죄를 적용하고 사형을 구형해서 유죄 판결을 받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는 선원들이 승객을 버리고 도망가지 못합니다.”

다음 주 16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꼭 한 달이 되는 날이다. 검찰이 선장 이준석 씨를 수사할 수 있는 구속 만기일도 이때까지다. 그 이전에 검찰은 선장 이 씨와 선원들을 모두 재판에 넘길 예정이다. 검찰이 살인죄 적용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하니, 그 이후는 법원의 몫이다. 44년 전이나 다를 것 없는 어처구니없는 참사 앞에 2014년 한국의 사법이 이제 답을 내놓을 때다.

김정훈 사회부장 jnghn@donga.com
#세월호 침몰#남영호 침몰#여객선 안전운항#살인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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