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철희]평양으로의 초대장

  • 동아일보

이철희 정치부 차장
이철희 정치부 차장
“우리는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망치를 든 관리인이 레일에 올라가 헐거워진 나사를 일일이 두드려 박아 넣을 때까지. 우리가 타기 전엔 공포에 질린 주민 몇 명이 밀가루부대처럼 실렸다. 운행 테스트였다. 롤러코스터가 꼭대기에 닿자 김씨 일가에 마지막 충성을 맹세하는 소리가 들렸고 롤러코스터는 쌩∼ 하고 출발했다. 그들은 무사히 돌아왔고, 우리 차례가 됐다.”

영국의 프리랜서 기자 알렉스 호번이 지난해 여름 평양 외곽의 만경대유희원에서 겪은 ‘세계에서 가장 형편없고 음울한 테마파크’ 체험기 중 한 대목이다. 그가 블로그에 함께 소개한 사진들은 온통 녹슬고 낡은 시설들이었다. 특히 금세라도 허물어질 듯한 공중회전관성열차(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은 완전히 공포 그 자체였다고 한다.

지난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이곳을 찾아 ‘관리일꾼들을 격하신 어조로 엄하게 지적하시였다’고 북한 매체들이 전했다. 김정은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만경대유희원을 둘러보며 부실한 관리실태를 지적했고, 인민복 단추를 풀어 제친 채 보도블록 사이의 잡초까지 직접 뽑으며 “이렇게 한심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꾸짖었다.

실제로 만경대유희원의 놀이기구는 도입된 지 이미 30년 된, 진작 고철처리장으로 보냈어야 할 시설이다. 김정은은 “유희장 운영을 중지하고 인민군대의 건설력량을 파견하여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변모시키라”고 지시했다. 더는 주민들이 소모품처럼 죽음 직전의 롤러코스터 시험운행에 내몰릴 일은 없을 테니 그나마 다행이다.

평양의 놀이공원이 모두 이 정도는 아니다. 모란봉 기슭의 개선청년공원은 지난해 개건(리모델링)과 함께 자이로드롭(급강하탑) 등 제법 최신식 놀이기구를 대거 들여왔다. 올해 1월 북한 방송들은 김정은이 말과 탱크를 타는 장면과 함께 이곳의 자이로드롭 의자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는 장면을 내보내기도 했다.

기괴한 체험을 찾아다니는 별난 여행객에게 북한만큼이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나라가 있을까 싶다.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독재국가를 엿보기 위해 지난해에만 해외 여행객 10만 명가량이 북한을 찾았다고 한다. 특히 주민과 학생 10만여 명을 동원해 카드섹션과 곡예, 춤판을 펼쳐놓는 거대한 군중 쇼 아리랑공연은 경이롭기 그지없는 눈요깃거리일 것이다.

북한엔 이런 괴상한 관광상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평양은 궁핍한 북한의 현실을 감추려는 쇼윈도용 ‘혁명의 수도’지만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상적인 사회주의 도시’에 가장 가까운 모델로 평가받던 곳이다. 거대한 건축물과 광장, 넉넉한 녹지공간을 갖추고 있고 충분한 발전 잠재성도 지닌 도시다.(임동우의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북한은 최근 ‘국토관리 총동원운동’을 벌이고 있다. 김정은은 그 최우선 사업으로 평양을 새단장해 ‘웅장화려하고 풍치수려한 세계적 도시’로 만들 것을 주문했다. “멋진 불장식(네온사인)으로 야경을 황홀하고 희한하게 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런 움직임은 외화벌이를 위해 관광객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놀이공원에 대한 김정은의 열정’이라는 기사에서 “평양의 오락시설 국제화는 북한의 문호 개방과 궤를 같이하는 정책 변화 중 하나”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평양이 ‘할 것(Dos)’보다 ‘하지 말 것(Don'ts)’이 훨씬 많은 으스스한 여행지로 남아 있는 한 과연 얼마나 많은 외국인이 이런 북한의 손짓에 응할지 의문이다.

이철희 정치부 차장 klimt@donga.com
#광화문에서#북한#북한 관광#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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