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전에 이것만은…/고산]美 실리콘밸리처럼 활발한 창업문화 만들고 싶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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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과연 내게 다시 한 번 우주비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올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잘 알고 있지만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지난 이야기를 조금 꺼내볼까 한다.

2006년 우주인 선발 당시 나는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인공지능 관련 연구를 하고 있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수학과 인지과학을 각각 전공한 내게는 그 어떤 사회 현상이나 문제보다 인간 내면의 탐구가 훨씬 가치 있게 느껴졌고, 당연히 평생 그런 연구를 하면서 살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인터넷의 광고 하나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을 찾습니다.’ 이 문구를 보고 가슴 두근거리던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순수한 설렘이었다. 우주인에 뽑힐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나도 우주를 향한 그 멋진 도전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도전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만 같았다. 바로 그날 지원서를 냈고 몇 개월의 선발기간을 거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내가 최종 우주인 후보에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연구원 경력이 ‘과학 우주인’이라는 콘셉트에 잘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대 복싱부 시절 출전했던 전국아마추어복싱대회에서의 동메달 수상, 문리대 산악회의 멤버로 7500m 높이의 고산을 등반했던 경력 등 다양한 활동이 강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주인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좋아서 했던 도전들이 우주인이라는 더 큰 도전을 하는 데 하나도 빠짐없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했다. 마치 모든 것이 운명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쨌든 하고 싶은 일은 그때그때 시도하는 성향 덕분에 나의 버킷리스트는 언제나 거의 비어 있었다. 그런데 요즘 꼭 해보고 싶은 일이 하나 생겼다. 한국 사회에 미국 실리콘밸리와 같이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창업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러시아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학기술정책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겠노라고 결심했을 때도, 정책 공부를 더 하기 위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로 유학을 떠났을 때도, 늘 마음 한구석에는 풀리지 않는 화두가 하나 있었다. 뜻을 품고 이공계에 진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공계를 떠나 소위 안정적인 전공으로 옮겨가던 친구들의 모습이었다.

현재 많은 청년들이 이공계에서는 밝은 미래를 그리기 힘들어한다. 작은 국토에 자원도 없고 가진 것이라곤 기술력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찌 되겠는가. 하지만 이런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청년 개개인의 몫은 아니다. 사회 전체가 청년들의 숨통을 틔워 줄 수 있는 탈출구를 마련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타이드인스티튜트(TIDE Institute)라는 공익법인을 만들어 기술기반 창업 진흥 활동에 힘을 쏟게 된 것도 기술창업이라는 주제가 이공계 청년들에게 탈출구를 제시해 줄 수 있겠다는 확신 때문이다. 우리 세대의 고민을 해결해 보려는 시도가 얼마나 큰 성과를 가져올지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분명 유의미한 가치를 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에 최선을 다해 뛰어 볼 생각이다.

이제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과연 내게 다시 한 번 우주비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올까. 대답은 물론 ‘YES’이지만 더 이상 우주비행이 나의 버킷리스트 1번은 아니다. 미국의 버진 갤럭틱이라는 회사는 2004년 최초의 민간 우주선을 만들어냈고 지금은 우주관광을 준비하고 있다. 벌써 430명 정도가 예약을 해 놓은 상태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누군가가 민간 우주선을 만든다고 했다면 조롱감이 됐겠지만 미국에서는 적극적인 지지 속에 꿈을 현실로 이루어냈다. 지금 나의 버킷리스트 1번에 있는, 내가 우리나라에 만들고 싶은 창업문화가 바로 이런 것이다. 어떤 도전도 용납되고 무엇이든 이루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열정이 충만한 사회. 이런 사회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혹시 누가 아는가.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우주선에 탑승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될지.

고산 타이드인스티튜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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