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상근]육하원칙대로 못쓴 이유

동아일보 입력 2011-11-04 03:00수정 2011-11-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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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근 교육복지부 차장
그는 아파트 3층 복도에서 반듯이 누운 상태로 발견됐다. 지갑과 여권과 현금은 옷 안에 남아 있었다. 검시 결과 원통형 물체로 머리를 8차례 가격당하고 예리한 물체로 우측 옆구리 부분을 찔렸다.

사망 원인은 두개골 파열로 인한 뇌막 및 뇌실 내 혈액 유입과 뇌 압축이었다. 시신에서 나온 독극물은 남파간첩 김동식이 소지했던 독극물과 같은 성분이라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추가 부검에서 판명됐다.

北마약밀매 쫓던 故최덕근 영사


전직 대공요원 A 씨는 국가정보원 창설 50주년을 앞두고 5월 말, 기자와 만났을 때 “처참하게 살해됐다. 당시 모습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말했다. 최덕근 주블라디보스토크 영사의 얘기였다. 1996년 10월 1일 오후 8시 45분경 괴한의 습격을 받아 숨진.

블라디보스토크는 총영사관, 경제대표부, 고려민항 등 북한의 여러 기관이 상주하는 도시다. 이곳과 주변 지역에는 당시 1만2000명의 북한 벌목, 건설, 농업 노동자가 진출했다. 북한 공작원과 공관원들은 대남공작활동과 외화벌이를 구실로 마약 거래, 위조지폐 유통, 무기 밀거래에 관여하고 있었다. 북한 외화벌이 요원들의 마약 밀매 실태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세계에 알리기 직전에 최 영사는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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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당국은 범인을 잡지 못했다. 진상을 밝히는 데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줬다. 한국 정부가 재수사를 촉구하며 공소시효(15년)의 연장을 요청했지만 최근까지 답변을 듣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최 영사의 활발하고 공세적인 대북 정보활동이 북한을 자극했다. 결국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결과를 불러왔다”고 내부 문서에서 밝혔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 앞의 ‘보국탑’에는 순직자 48명의 명단이 보이는데, 최 영사는 이름이 공개된 유일한 사례다. 옷, 만년필, 여권, 수첩, 총기…. 국정원은 그의 유품을 원내 ‘안보전시관’에 옮겨 놓았다. 안보전선의 현실을 통해 직원들에게는 긴장감을, 방문객에게는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다.

A 씨는 다른 전직요원 5명과 함께 기자를 만났다. 국정원의 어제와 오늘을 얘기하는 자리에서 그는 나이가 가장 적었지만, 가장 신중했다. 민감한 사안을 질문하면 입을 열지 않았다. 최 영사를 거론할 때는 달랐다. 주먹을 불끈 쥐고 얼굴을 붉히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언급을 계기로 기자는 최 영사 가족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부인은 건강이 좋지 않다, 특히 남편이 세상을 떠난 10월이 다가오면 심한 고통을 느낀다고 국정원의 전현직 요원들은 전했다. 여기까지는 기자가 칼럼에 넣기로 마음먹었다.

15년 지나도 밝힐 수 없는 진실

최 영사에게는 아들이 있다. 어떻게 지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됐다. 그는 자기 이야기가 언론에 나오지 않도록 간곡히 부탁한다고 제3자를 통해 전해왔다. 여기서부터는 칼럼에 넣지 않기로 결정했다.

기자는 육하원칙대로 기사를 쓰도록 교육받고 훈련받았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이 여섯 가지가 내용을 정확하고 친절하게 만든다고 선배들에게 들었고, 후배들에게 강조했다. 하지만 공익을 위해, 취재원을 위해 드러내지 않아야 할 부분도 있다고 본다. 고민을 들은 선후배 몇몇이 같은 생각이라고 조언했다.

독자를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듯하다. 죄송한 마음에서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가야겠다. 최 영사의 아들은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다고. 아버지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라고.

송상근 교육복지부 차장 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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