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메르켈의 원전 중단 결정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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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5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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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균 논설위원
박영균 논설위원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는 사고가 터지자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자국 내 7개의 원전 가동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독일 내 원전 17개 가운데 1980년 이전에 건설된 7기에 대해 3개월간 안전 점검을 한다는 것이다. 비록 3개월이지만 독일 전체 원전의 40%가 전기 생산을 포기한 것이다.

메르켈의 결정은 어느 나라보다 신속한 것이다. 그러나 다분히 정치적인 결정이었다. 27일 독일 서남부에서 치러지는 지방선거에서 강세를 보이는 녹색당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였다. 야당인 녹색당이 일본 원전 사고를 들고 나와 공격할 것에 대비해 선수를 친 것이다.

물리학 박사 총리의 정치적 결정

메르켈 총리는 물리학 박사다. 1970년대 동독지역에 있는 라이프치히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1986년 탄화수소의 반응속도 상수 계산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독일이 통일할 때까지 10여 년간 베를린 과학 아카데미의 물리화학연구소에서 양자화학 분야의 연구원으로 일했다. 물리학자로서 원자력에 대해서도 상당히 전문적인 식견을 갖고 있을 것이다. 통독 이후 보수당인 기독교민주당에 입당해 하원의원을 거쳐 1991년 여성청소년부 장관에 이어 환경부 장관을 지냈다. 보수당을 지지하는 독일 국민들은 물리학 박사 출신인 메르켈의 원전 정책에 상당한 신뢰를 보냈을 것이다.

독일은 과거 사회민주당 정부가 자국 내 17개 원전을 2021년까지 완전히 폐쇄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그러나 기민당을 중심으로 집권한 현재의 보수 연정은 원전 가동 기간을 평균 12년씩 연장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메르켈이 동일본 대지진 이후 어떤 원전 정책을 취할지가 관심사였다.

메르켈 총리의 신속한 결정은 국제적인 파급 효과도 컸다. 미국은 원전 건설 용지에 대해 재검토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불가리아는 원전 건설 계획 자체를 유보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원전 최대 강국인 프랑스는 아직 공식적인 언급이 없다. 전체 전력의 75%가량을 원전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로서 신속한 결정은 어려웠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메르켈의 신속한 조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일본 대지진으로 독일은 원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하고 있고 중국조차 신규 원전 건설을 잠정 중단한다고 하며 일본도 재검토를 시사했다”면서 우리 정부에 원전에 대한 원점 재검토를 촉구했다. 독일처럼 오래된 발전소만이라도 가동을 중단하라는 주장이다. 우파인 기민당 소속인 메르켈의 조치가 원전 정책에 관한 한 민주당의 전범(典範)이 된 것 같다.

정치인의 섣부른 원전 정책 발언

정작 메르켈 총리는 원전 가동 중단 조치 때문에 곤혹스러운 처지이다. 보수파를 지지했던 많은 국민은 메르켈 총리의 진정성에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지금까지 원전 건설을 찬성했던 것은 뭐냐는 것이다. 보수파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의심하는 소리도 나온다. 실용주의적 정치적 결정을 자주 하다 보니 진짜 보수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다.

특히 27일 선거가 치러지는 서남부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는 보수 성향의 부자 주민이 많다. 이들은 원전 옹호론자였던 메르켈이 갑자기 원전 반대로 전환한 데 대해 비판적이다. 여론조사 결과 보수 연합이 녹색당을 필두로 한 야당 연합에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 연합이 60년 가까이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보수 여당의 텃밭에서 메르켈이 진다면 정치적인 타격이 클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테플론 메르켈’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원만한 결정을 해왔다. 그랬던 그가 이번 원전 가동 중단 발표로 정치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원전 정책에 대한 정치인의 섣부른 발언이 정치인에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27일 선거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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